요즘 어떻게 지내?

in kr •  6 years ago 

갈색배경 글쓰는해달.jpg


Question Diary.

2018년 9월 13일. 일교차가 제법 크다. 낮에는 제법 끈적끈적한데 밤에는 휘 부는 바람에 저도 모르게 닭살이 돋아 팔을 오므리게 된다. 평생을 달고 살아온 비염은 이미 일주일 전부터 코를 꽉 막아버렸다. 환절기. 비염 인들은 숨쉬기가 힘들다.

간밤에 통 잠을 못 자고 있었다. 모기가 앵앵거리다 한 번씩 툭 치고 가는데 어찌나 신경 쓰이던지. 잡을까 말까 고민하다 2시간이 흘러버렸다. 모기가 뜯든 말든 얼른 잠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저만치서 또 앵앵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멈췄다가 다시 또 앵앵. 가만 들어보니 앵앵 이 아니라 웅웅 이다. 스마트폰 진동이었다. 확인해보니 전 회사 동기다. 새벽 2시에 웬 전화지.

“어. 뭐야.”
“뭐하냐?”
“자려고 누웠지. 너는 뭐하냐? 이 시간에 전화를 다 하고.”

야근하고서 다른 동기랑 한잔했는데 지하철도 없고, 버스도 없고, 택시 타기는 부담되고. 고민하다가 같이 회사 근처 모텔에 들어갔다고 했다. 예전에 나까지 셋이 같이 갔던 곳이라 한다. 아 거기. 들어갈 땐 모르겠고 나올 때는 확실히 기억난다. 아는 곳이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
“요즘? 요즘은 그냥 글만 쓰는 것 같은데. 근데 좀 괜찮냐. 너 힘들다는 소식 간간이 들리더라.”

거의 9시 넘어서 퇴근한다는 푸념이 들려온다. 집에 도착하면 11시, 씻고 누우면 12시라 지친다고. 그래서 이번 하반기에 다른 회사 지원할 거라고 한다. 입사 지원이야 직장생활 힘들면 기분전환으로 한 번씩 하는 거라 이미 몇 번씩 해봤다. 그런데 주말에 마감되는 금융기업들 목록을 쭉 읊는 게 이번엔 진지한 듯하다.

“이직 얘기야 지나가듯 몇 번 했었는데, 이번엔 진심인가 보네. 잘 해봐라.”
“같이 쓰자. 진짜 좋은 회사들이다. 플랜 B도 하나쯤은 있어야지.”
“됐다. 가봐야 금방 나올 텐데. 열심히 해라.”

전화 끊고 바로 곯아떨어졌다. 그리고 아침부터 나가서 원고 쓴다고 바빴다. 그땐 생각이 안 났었는데 집에 와서 일기 쓰려니까 생각난다. 분명 산업은행, 예금결제원, 한국거래소였나. 몇 개 더 말했는데. 뭐 다른 A매치 목록이겠지. 그런데, 음. 플랜 B라.

회사 다닐 땐 내 시간이 없는 게 가장 힘들었다. 야근하거나 주말에 일하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열이 올라서 얼굴이 펄펄 끓곤 했다. 그리고 회사 나와서 가장 힘들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바라던 내 시간이 너무 많은 거였다. 이전에는 비록 쳇바퀴 돌리는 다람쥐처럼 살지만, 시간이 모자라도록 꽉꽉 채워서 쓴다는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퇴사 후 두 달쯤 푹 쉬고 나서, 다시 활동을 시작했을 때 어떻게 해도 시간이 낭비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 느낌이 싫어 오전 5시에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밤 11시에 들어와서 자정에 잠드는 생활도 한 달간 해봤지만, 여전히. 수년간 억압받던 삶을 살던 사람에게 자유는 일종의 폭력이었다. 자유가 그토록 바라던 것이었어도.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일을 한다는 게 어찌 보면 참 따분한 일이지만 그것만큼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일도 없다. 밖으로 나와 보니 알겠다. 별다른 계획 없으면, 아니 있다고 해도 고정적인 일을 하면서 하는 게 마음이 더 편할 거다. 지금이라면 그렇게 할 텐데. 그렇게 해도 충분히 할 거 했을 것 같은데. 후회하는 걸까. 플랜 B가 자꾸 생각나는 걸 보면. 아니면 직장생활의 기억이 미화된 걸까. 그것도 아니면 돈이 떨어진 걸까. 슬슬 돈 벌긴 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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