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na's Parenting Diary Vol.21]부모의 양육 태도 #2

in kr •  7 years ago  (edited)

아이의 탄생 순위에 따라 부모가 신경 쓸 문제

맏이에 비해 둘째 아이는 전혀 다른 입장에 있다. 그 자리는 다른 아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둘째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혼자만 주목받지 못하는 대신 맏이보다 덜 협동해도 되는 상황에 놓인다. 둘째 아이는 맏이가 그에게 도전하거나 밀어내지만 않는다 해도 매우 좋은 상황이라 할 수 있겠다. 둘째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와는 다른 어떤 점이다.둘째는 자기 나이보다 훨씬 조숙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고 한다. 연령이나 발달 정도에 있어서 맏이가 항상 앞서게 되므로 분발해서 따라가야 한다는 부담을 가지게 된다. 전형적인 둘째는 곧 알아볼 수 있다. 그는 마치 경주라도 하듯이, 늘 누군가 자기 앞에서 두세 발 정도 앞서 가고 있기 때문에 성급하게 쫓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행동한다고 한다. 그는 항상 활기에 넘쳐 있다. 그는 끊임없이 맏이를 추월하고 정복하기 위해 자신을 훈련해 간다.


(구글이미지)

성서에는 수많은 휼륭한 사례들이 나타나 있는데 야곱의 이야기에는 전형적인 둘째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듯이, 야곱은 맏이인 에서의 지위를 빼앗기 위해 싸우면서 형보다 우수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다. 둘째는 자신이 둘째라는 느낌에 초조해 하고 다른 사람을 따라잡아 추월하려고 애를 쓴다. 그 노력은 성공하기도 한다. 둘째는 흔히 맏이보다 재능이 있고 더 큰 성공을 한다. 이러한 발달에 유전적인 요소가 관계한다고 볼 수는 없다. 만약 둘째가 맏이보다 더 빨리 발달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노력의 결과이다. 맏이들은 성장해서 독립 할 때까지 가끔 자신이 선도자라 는 사실을 이용한다. 결국 둘째는 자신보다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다고 생각되는 사람과 비교하여 그 상대를 앞서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은 겉으로 드러나는 생활 속에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러한 모습은 인격의 모든 표현에서 발견할 수 있고 또한 둘째의 꿈속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예컨대 맏이는 떨어지는 꿈을 많이 꾼다. 분명 정상에 위치하고는 있으나 이 우월성을 언제까지 유지할 수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하여 둘째는 흔히 경주에 참가하는 꿈을 꾼다. 그는 전차 뒤를 쫓아가거나 자동차 경기를 하는 꿈을 꾼다. 우리는 때대로 이와 같이 꿈속에서 서두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어떤 사람이 둘째라는 사실을 추측해 낼 수 있겠다. 물론 이 사례가 고정된 법칙은 아니다. 맏이와 같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실제의 맏이뿐만은 아니다. 실제로 중요한 것은 상황에 있어서 단순히 탄생의 순서가 아님이 분명하다.

대가족에 있어서는 훨씬 나중의 아이가 맏이의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가령 두 명의 아이가 계속 태어나고 그보다 훨씬 나중에 셋째가 태어나고 그 뒤에 또 두 명의 아이가 태어나는 일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의 셋째는 맏이의 모든 특징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와 같은 이치는 둘째아이 특성에도 적용된다. 전형적인 둘째 타입이 4,5명의 아이가 태어난 후에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한다. 터울이 가까운 두 명의 아이가 함께 성장하여 다른 아아와 떨어져 있는 경우에는, 이러한 두 명의 아이에게 맏이와 둘째의 여러 특징이 보이게 된다.

때로는 맏이가 경주에서 지는 일이 있다. 그렇게 되면 맏이 쪽이 문제가 됨을 알 수 있다. 어느 때에는 맏이가 자신의 지위를 지키고 동생을 밀어낸다. 그렇게 되면 이번에는 둘째가 문제를 일으킨다. 맏이가 남자이고 둘째가 여자인 경우는 맏이에게 있어서 매우 어려운 입장이다. 이유는 맏이가 여자에게 질 위기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그 일은 아마 맏이에게 중대한 불명예를 느끼게 할 것이다.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사이의 긴장은 형제간이나 자매간의 긴장보다 훨씬 크다.

이 투쟁에 있어서 여자 쪽이 편애되고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이유는 여자가 열여섯 살이 되기까지 신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남자보다 빨리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경우 남자아이는 싸움을 포기하는 무력한 자가 되어 기가 꺾여 버린다. 그는 이기기 위한 속임수나 야비한 방법을 찾으며 자랑하기도 하고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그와 같은 경우에는 거의 틀림없이 여자 쪽이 이기게 된다. 남자아이는 모든 상황에서 다른 길을 모색하게 되고 여자아이는 여러 문제를 놀라울 정도로 현명하게 해결해 나가는 모습을 보인다.

사실 이와 같은 여러 어려움은 장애가 생기기 전에 위험을 인식하여 수단을 강구한다면 피할 수 있는 일들이다. 나쁜 결과를 피하는 길은 평등하고 협동적인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가정이라는 울타리뿐이다. 다시 말해서 아이들이 라이벌 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고, 적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으며, 싸움으로 시간을 보낼 이유가 없는 가정에서는 앞서와 같은 나쁜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동생이 있는 아이들은 언젠가는 낮은 지위로 떨어질 위험이 있다.

하지만 막내는 더 이상 낮은 지위로 떨어질 일이 없다. 막내는 항상 가족의 귀염둥이고 아마 가장 사랑받는 존재일 것이다. 사랑을 받기만 한다면 무조건 좋기만 할 것 같지만 사랑받는 아이로서 부딪치게 되는 여러 곤란한 상황도 있다. 막내는 항상 여러 모로 자극을 받고 경쟁의 기회를 많이 갖게 되므로 종종 평범하지 않게 발달하고, 다른 아이들보다 빨리 달리며, 마침내 그들을 모두 추월하는 경우가 있다. 인간의 역사 속에서 막내의 입장은 변하지 않는다. 인류 최고의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막내가 어떤 식으로 형제들을 이겼는가 하는 내용이 나온다.

성서를 보면 정복자는 항상 막내이다. 요셉은 막내로 자랐다. 베냐민은 요셉보다 17년 후에 태어났으니 요셉의 발달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다. 요셉의 인생 방식은 전형적인 막내의 인생 방식이다. 그는 언제라도,꿈속에서까지 자신의 우월을 주장하고 있다. 다른 사람은 모두 그의 앞에서 머리를 숙이지 않으면 안 된다. 다른 사람은 모두 그의 앞에서는 존재가 희미해진다. 요셉의 형들은 동생의 꿈을 매우 잘 이해한다. 그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듯하다. 요셉이 자신의 꿈속에서 불러일으켰던 감정을 형들 또한 느꼈다. 형들은 요셉을 무서워하여 배제하고 싶어 했다. 그렇지만 요셉은 최후의 사람이었기 때문에 최초의 자가 되었다. 나중에 그는 전 가족의 큰 기둥이 되었던 것이다.

막내는 종종 전 가족을 지탱할 기둥이 되는데, 그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를 통해 그러한 예는 계속 있어 왔고 막내의 힘에 관한 이야기도 많이 있다. 실제로 막내는 매우 유리한 상황에 있다. 막내들은 부모와 형제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야심을 키워 가는 동시에 배후에서 그들을 공격하기도 하고 주의를 집중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지적한 대로 문제아 중에 두 번째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이들이 또한 막내이다. 그 이유는 일반적으로 가족 전체가 막내를 어떤 방법으로 사랑하는가에 달려 있다. 지나치게 사랑받는 아이는 결코 자립하지 못한다. 그 아이는 자신의 노력에 의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용기를 잃어버린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 중에서 가장 야심적인 아이는 게으른 아이다. 게으름은 낙담과 결부된 야심의 표시이다. 야심이 지나치게 높으면 그것을 실현할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간혹 막내는 자신이 야심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데, 그 이유는 모든 일에서 뛰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이처럼 뛰어나고 싶어 하는 욕구는 한편으로 막내가 가진 열등감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막내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그보다 나이가 많고 힘도 세며, 경험이 휠씬 풍부하기 때문이다.

한편 외동이는 독특한 문제를 안고 있다. 아이는 경쟁심을 갖고는 있지만 그 감정은 형제나 자매를 향한 것이 아니다. 외둥이의 경쟁심은 아버지를 향한다. 그는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는데, 어머니는 아이를 잃을까 두려워하여 항상 자신의 곁에 두고 싶어 한다. 아이는 소위 '모친콤플렉스'를 몸에 익히게 되고 어머니의 앞치마 끈에 매달려 아버지를 배제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다. 맏이는 종종 외동과 닮아 있다. 맏이는 아버지를 정복하기를 원하며 자기보다 연상의 사람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 또한 부모가 협동하여 아이로 하여금 어머니와 아버지 양쪽 모두에게 관심을 갖도록 교육한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문제다. 문제는 대개 아버지가 자녀보다도 어머니 쪽에 마음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이다. 외동이는 종종 자신의 뒤에 남동생이나 여동생이 생기지는 않을까 하고 매우 두려워한다. 가족이나 친지들은 가끔 아이들에게 '남동생이나 여동생이 있어야 한다'라고 말하는데 외동이들은 그러한 예측을 무척 싫어한다. 외동이는 항상 주목의 대상으로 있고 싶어 하고, 아이는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귄리라고 느끼며, 만일 자신의 입장이 위협받게되면 그것은 매우 큰 부정이라고 느낀다.

이런 아이가 나중에 주목의 대상에서 벗어나게 되면 실제로 많은 곤란을 느낀다. 그 아이의 발달에 있어서 또 하나 위험한 점은 부정적인 환경속에 태어나는 경우이다. 더 많은 아이를 기대할 수 있는 가정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하나밖에 안 갖는 경우가 있다. 이런 가정의 부모는 두려움으로 상당히 비관적이다. 그들은 한 명 이상의 아이를 가졌을 때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느낀다. 집안의 분위기는 불안으로 가득 차 있고 아이는 매우 괴로워한다. 만일 아이들의 터울이 너무 길 경우에는 아이들이 각각 외동의 특징을 몇 가지씩 갖게 된다. 그러한 상황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다음 아이를 갖는다면 3년 정도 터울이 가장 좋은 간격이라 생각한다. 아이가 세살 정도 되면 동생이 태어나도 협동할 수 있는 나이가 되고, 아이는 가족 중에 한 명 이상의 아이가 있는 상황을 이해할 만큼의 지력을 갖는다.

하지만 아이가 한 살 반 정도나 두 살이라면 그를 이해시킬 수가 없다. 아이는 아직 부모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또 여자아이뿐인 가정에서 남자아이가 한 명만 있는 경우에는 아들의 장래에 어려움이 많다. 그는 완전히 여성적인 환경 속에 있다. 어머니와 누나들의 심부름을 하게 된다. 그는 집에서 자신만 다른 사람이라고 느끼며 소외되어 자란다고 한다. 이는 특히 여자 형제들이 하나가 되어 그를 공격할 때 더욱 그렇다. 그녀들은 모두 그를 교육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거나 그가 자만할 자격이 없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싶어 한다. 여기에는 상당한 적대감이나 라이벌 의식이 존재한다. 만일 남자아이의 서열이 중간에 위치한다면 그는 최악의 입장에 처하게 된다. 왜냐하면 양쪽에서 공격받기 때문이다. 그가 맏이라면 매우 예리한 경쟁자인 여동생에 의해서 쫓길 위험성도 있겠다. 만일 그가 막내라면 귀엄둥이가 된다.

여자들 속에 있는 단 한명의 남자는 대개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타입이 되기 쉬우나, 그가 다른 아이들과 접할 수 있고 사회생활이 가능하다면 문제는 한결 쉽게 해결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여자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여자처럼 행동하게 될수도 있겠다. 여성적인 환경이란 양성이 합쳐진 환경과는 전혀 다르다. 가령 한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 취미를 기준으로 구분해 보자! 여자가 살고 있는 아파트는 아마 아담하고 단정하게 되어 있을 것이고 색깔도 주의 깊게 선정되어 구석구석까지 잘 조화를 이룰 것이다. 만일 남자들만 살고 있는 아파트가 있다면 좀 더 황령하고 소란스러우며 여자들의 아파트만큼 깨끗하지 않고 가구도 자주 손상될 것이다. 오직 여자들 틈에 홀로 끼어 자라난 남자아이는 여성적인 취미나 인생관을 가지고 자라기 쉽다. 그와 반대로 어떤 남자아이는 그러한 분위기에 대해서 강하게 저항하고 자신이 남성이라는 점에 매우 자만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그는 여성에게 지배되지 않기 위해서 항상 조심하게 된다. 그는 자신이 여성과는 다르다는 우월성을 주장해야만 한다고 느낀다. 거기에는 항상 긴장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아이의 발달은 극단으로 달리게 된다. 그는 매우 강한 자가 되든지 아니면 매우 약한 자가 될 것이다. 그런 상황은 치료를 필요로 한다. 물론 비슷한 방법으로 남자들 틈에 끼인 한 명의 여자아이는 매우 여성적이거나 아니면 매우 남성적인 기질을 갖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환경에서 자란 여자아이는 종종 일생을 불안정하고 무력하게 보내는 일도 있다고 한다.


알프레드 애들러가 말했듯이 아이들은 유아기에 존재했던 여러 인상이, 성장하면서도 계속 남아 있음은 물론 영원히 계속되리라는 점을 찦어 말했다. 특히 가족 내의 아이들의 위치는 인생 방식에서 지우기 어려운 인상을 남긴다고 한다. 모든 발달 장애는 가족내 형제간의 라이벌 의식과 협동의 결여에 의해 형성된다고 알프레드 애들러는 말한다. 주위의 사회생활을 둘러보고, 왜 라이벌 의식과 경쟁이 가장 분명한 국면을 이루고 있는가를 자문해 보면 우리가 사회에 있어서뿐만 아니라 실로 현실에서 경쟁을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이런 모습을 보면 어디에 있는 어떤 사람이든, 다른 이들을 제치고 우수한 자가 되려는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러한 경쟁과 목표를 갖게 된 이유는 바로 부모의 양육 태도에서 잠재되어 키워졌으며 유아기의 훈련과 교육에서 쌓여진 결과라고 말을 해도 과언은 아니겠다, 가족 전체 속에서 평등한 맴버의 한 사람으로 느낄 수 없었던 아이들의 유아기를 경쟁심에 따른 결과이라고 봐야 옳지 않은가... 이러한 심리적 장애들로부터 자식들을 보호하는 일은 부모들의 마음과 사랑을 아이들에게 골고루 분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아 조기교육, 가정교육 과정을 통해서만이 온전한 인간으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으니, 이 모든 기초는 부모의 양육 태도에서 만들어 지는 과정,나와 남편의 몫이 되겠다. 아이를 위한 육아가 아닌, 나를 위한 육아이기에 독서의 필요성이 매우 중요함을 느끼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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