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댁에서는 절대 쓸 수 없는 부도수표 "남편 찬스"

in kr •  7 years ago  (edited)

열흘이라는 긴 연휴가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이번 연휴엔 가장 빨리 등원하고 가장 늦게 하원하는 우리 두 아이와, 엄마아빠없이 조부모 손에 키워지고 있는 막내까지 오랜만에 우리 다섯식구가 긴 시간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설레고 기다려졌다. 그럼에도 별로 한 것도 없이 휴일은 빨리도 지나갔다.

6년전 겨울 어느 날. 하와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시댁으로 향했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면 통상 친정에 먼저 가는 것이 순서지만 설을 코앞에 두고 있었기에 교통체증 등을 고려해 시댁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장손이셨기 때문에 엄마를 도울 수 있을만큼 자란 국민학교 이후로는 명절이면 하루 종일 송편을 만들고, 전을 부쳤다. 그렇기에 시댁에서 설을 보내는 것은 친정에서 하는 일들의 연속일뿐이었다. 다만 시집 온지 2주도 되지 않은 때라 만나는 어느 누구 하나 편한 사람이 없었고, 행동 하나하나가 여간 신경 쓰이는 나름 새색시 신고식이었다.

아이 둘이 되기까지 3년동안 명절이면 허리 구부릴 시간도 없이 큰집 큰며느리로서 역할을 다했다. 그에 비하면 이번 명절은 세 아이들 덕에 아이들만 보면서 지냈으니 편하다 할만 하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몸이 찌푸둥하면서 피곤한 명절 증후군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아마도 시댁에서는 절대 사용불가한 남편 찬스때문이리라. 신랑은 아이들이라고 하면 사죽을 못 쓴다. 본인이 애들을 보다가 다치면 아무 소리도 안 하면서, 내가 애들을 보다가 자칫 애들이 살짝 부딪히거나 다치기라도 할라치면 난리가 난다. 그런 탓에 신랑은 퇴근하면 온 신경을 아이들에게 다 쏟으며 설겆이, 빨래, 청소같은 집안일을 잘 도와준다. 쓰레기 분리수거는 100% 꼼꼼한 신랑 몫이다.

그런 신랑이 시댁에만 가면 180도 돌변한다. 밥먹은 그릇도 설겆이 통에 넣기만하고 씻을 생각을 안 한다. 잠도 늘어지게 자고 애들 목욕까지 내 몫이 된다. 내가 해달라고 굳이 말하지 않으면 스스로 알아서 도와 주는 건 없다. 간혹 빨래라도 널어달라 치면 온갖 생색은 다 낸다.

신랑이 하지 않으니, 시어머니도 시키시질 않으니 대놓고 시키는게 참으로 어렵다. 시댁가면 그 남의 편은 어머니라는 든든한 빽을 등에 엎고 팔자가 늘어지신다. 우리 어머님은 정말 편한 분이시고 시어머니 티 안내시고 잘 해주시니 남들 다 있다는 고부갈등건 전혀 없지만 시댁에서 남편찬스를 사용할 수 없다는 건 여간 불편한 일이다. 남편 찬스권이 백만장 있으면 무엇하겠냐. 시댁에서는 사용불가한데 말이다.

20171010_175248.jpg

아들을 둘 키우는 나도 나중에 그럴까싶다. 아들 사랑에 푹 빠져있는 지금 생각으로는 잘난 내 아들 부려먹는 며느리가 밉상이겠지 싶기도 하다.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
Sort Order:  

Cheer Up!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  7 years ago (edited)

아들은 안되는데 며느리는 되는건가요 ㅎㅎ
원래 함께 하던 육아가 시댁이라는 장소의 이유로 한 사람이 도맡아 해야하는 건 정말 불편한 진실이네요.
그렇다고 친정에선 사위만 하진 않을테니까요 ㅠㅠ

요새 인기인 "며느라기" 웹툰이 떠오르네요...ㅎㅎ

그런 웹툰도 인기가 있나보네요... 맞아요. 불리한건 우리집에 가도 사위라 엄마가 엄청 대접해 줘서 친정에 가도 신랑은 크게 불편해 하지 않아요. 며느리만 시댁가면 불편하지요. 그냥 뭐라 안하시고, 잘 해주시는데도 시댁은 시댁인가봐요.^^

신랑이 그렇게 하는 것은 시어머니가 속상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

저도 같은 생각으로 남편분 편을 들어 봅니다ㅎㅎ

남자들이 그렇게 생각이 깊은 동물인지... 사실 의심스러운 걸요...ㅋㅋㅋ 그냥 마음놓고 쉬고 싶어서가 아닐까요???^^

만회하기 위해 평소에 더 열심히 도우시나 봅니다. 어머니 앞에서는 아주 편하게 지내는 양 하는게 아들 나름의 효도가 아닐까요.

사실 이렇게 푸념 형식으로 쓰긴 했지만, 신랑이 가끔씩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뭐.. 효도를 하기 위한 나름의 속깊은 행동이라고는 전혀 생각이 안 들지만, 그래도 부정적인 영향보다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네요. ㅎㅎ

This is pretty wonderful really you did very well job.

안녕하세요 happyworkingmom님, 이해가 되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ㅎㅎ
사실 장가간 아들이 오랜만에 집에 가서 집안일 하면 부모님들도 오해할 수
이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매일 집안일만 하는 걸로요 ㅋㅋㅋㅋ
시댁에서는 사용권을 잠시 접어둬도 괜찮을 듯 하네요~~ ㅎㅎ

세월이 조금 더 지나면 변하지 않을까요~
상도 가져다 주지않았는데 몇년전부터 조금 움직이더군요^^

어머님 시각으로는 아들이 잘 살고있구나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ㅎㅎ
제가 한번은 본가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니가 이걸 왜 하냐며 은연중에 속내를 비치신 적이 있더라구요. 순간 저나 어머니나 같이 와이프 눈치를 살폈답니다. ㅋㅋ
평상시 남편분이 가사일을 잘 해주시는만큼 가끔은 눈감아주셔도 괜찮지 않을까 싶네요. ^^

시어머님도 남편분의 어머니이시니 어쩔 수 없나봅니다^^ 참 사람 마음이 그렇죠ㅋㅋ 아이친구 할머니 말씀이 사위가 딸 생선가시 발라주면 참 좋은데 아들이 며느라 발라주면 그렇게 꼴보기가 싫다고 하시더라구요~ 집에서는 남편찬스 팍팍 쓰실 수 있으니 다행입니다^_^

그린그린님 남편분은 잘 하시나봐요. 맞장구가 아니라 아이친구 할머님 말씀을 해 주시니....^^ 부럽습니다. 그나마 집에서 잘 해주니 다행이죠. 그리고 가끔은 남편이 시댁에서 아무것도 안 해줘서 고마울 때도 있답니다. 너무 잘하면 그 화살이 저한테로 돌아올 수도 있는데, 너무 못하니 시아버님이 잘 해주세요..ㅎㅎㅎ

세상은 많이 변했지만 사람은 아직 많이 변하지 않은 탓이죠. ㅠㅠ

시댁에서만 돌변하는 남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읽다보니 우리형이 그러고 있네요...
아 왠지 남일같지가 않네요 ㅋㅋㅋㅋㅋㅋ

ㅋㅋㅋ 그렇담 기린아님도 충분히 가능성이 있으시네요..

어후..왜 그러세요...
아직 장가도 안간 사람한테...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그러다가 이번에는 집에 있는 것 같이 본가에서도 해 봤습니다.

뭐......

제가 움직이는 것이 모두의 평화를 위해 더 좋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들이 집에 있는 것처럼 해도 아무 말 없으시는 어머니... 진정 대단하시네요.. 사실 남편이 시댁에 가서 잘 안 도와주면 힘들긴 한데요. 가끔 고맙기도 해요. 제가 힘든 모습을 보시면 어머님이 저를 더 안쓰럽게 생각하시고 더 잘 해 주실때도 있거든요...^^

집안일은 돕는게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인데 ㅜ 세상이 발전하려면 아직 멀었나 보네요.

집에서는 잘 도와주는데, 시댁만 가면 안하는게 문제이긴 한데.. 가끔 그게 나을때도 있답니다. 신랑이 진짜 이건 아니다 싶은 행동을 하면 시어머니가 제 편이 되어 주시거든요..ㅎㅎ

입장이라는 것이 그런것이지요.
저도 아내에게 당부합니다.
아니 아내가 먼저 말합니다.
"너희는 원하는 대로 해라~"라구요^^
가족의 범위는 양가가 모두 포함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할 방법을 찾으세요^^

아내분이 정말 현명하신 것 같아요. 요즘 젊은이들은 저 때랑도 많이 달라서, 제 아들이 장가 가서 며느리 들어왔을 때도 그렇게 하면 그땐 그런것 가지고도 고부갈등 조장자가 될 것 같아요. 그 때 그 때 상황에 따라 맞춰가는 것이, 다같이 노력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겠죠. 오늘도 좋은 말씀 감사드려요.

몹시 공감되는 글 잘 보고 갑니다. ^^
남편 입장에서 조심히 말씀드리면, 아마도 양쪽의 눈치를 보는 과정에서 그나마 나은 판단이라고 생각하신 것일 수 있을거 같습니다. ^^;; 지송요...ㅠㅠ

시댁에 가면 편안함에 늘어지고 쉬고 싶은 마음은 가득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제가 저희 부모님을 보고 자라면서 느낀 것은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와이프한테 잘해주면 어머니는 질투를 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시간이 날때마다 미리미리 어머님을 도와드립니다. 나중에 혹 제가 시댁에 와서 일하는 와이프를 도와주어도 질투하시지 않게 말이죠 ^^

시댁에서는 절대 쓸 수 없는 부도수표 "남편 찬스" 라는 제목이 너무 와닿습니다 ㅎㅎ 제가 결혼해서는 아내가 그렇게 느끼지 않도록 본가에 가서도 잘해야겠습니다

남편 찬스
아주 적절하고 실감나는 표현입니다.
분명 내 남편인데 어머니 앞에서는 아직 아들일뿐입니다.
그러니 함께 사는 사람들은 어떻겠어요.
매일 남편 찬스 몇 장씩 버리면서 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