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거지 모녀와 동태매운탕

in kr •  7 years ago 

오래전... 둘째 아이를 임신했을때의 입덧은 장난이 아니었다.
냉장고 문만 열어도 우웩~!
칫솔질엔 꾸웩~!

하루에도 몇번씩 구역질이 났으니 뭘 먹을수가 없었고 몸도 천근만근 무거운것이, 하루하루가 고역이었다. 밥은 모래알 씹는것 같았고 우유는 뚜껑만 열어도 그자리에서 토했으니 말이다.

어느날, 이상하게 매운탕이 먹고싶어졌다. 얼큰한 매운탕 국물을 좀 마신다면 니글거리는 속이 좀 가라앉을것 같았기에.

당시 18개월이었던 딸아이, 감기에 걸렸는지 코를 질질 흘리는 애를 태우고 집에서 입던 옷차림 그대로 한인들이 많이 모여있는 동네 한국식당으로 갔다. 앉자마자 메뉴도 보지않고 시킨 동태매운탕...

좀 맵게 해달라고 부탁했었다.

fish stew.jpg

맛으로 먹는다기보다는 그냥 맵고 얼큰한 국물때문에 계속 떠먹었나보다.

난 매운음식을 먹으면 콧물이 난다. 넘 매우면 눈물까지 흘린다. 냅킨으로 훌쩍훌쩍거리는 코를 닦으며 눈가에 살짝 비치는 눈물까지 훔치며, 딸아이한테는 반찬으로 나온 계란말이와 콩나물을 조금씩 밥위에 올려주고, 훌쩍~훌쩍~ 난 매운탕 국물을 마시면서 입덧으로 니글거리는 속을 달래고 있었는데...

옆자리에서 혼자서 조용히 식사를 하시던 나이 지긋하신 중년의 남자가 나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하시는 말...

"아주머니~ 나이도 아직 젊으신것 같은데...
어떤 딱한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리 살기 힘들고 어려워도 저 어린 자식을 봐서라도 용기를 내셔야지요. 이것 얼마 안되지만 점심값에 보태세요..."

이러면서 20불짜리 지폐한장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휑~ 하니 나가버리는것이 아닌가? 냅킨으로 콧물을 닦고 있던 나는 벙~ 쪄서...

" 네~??? 아니, 저... 그게 아니고......"

fish stew-2.jpg

제대로 대꾸할 시간도 없이 아저씨는 식당밖으로 나가버렸다. 바로 따라나가서 돈을 돌려주려 일어섰지만 애기용 의자에 앉아있는 아이를 두고 나갔다가는 위험할것 같았기에 난 그냥 그자리에서 멍청히 테이블에 올려진 지폐만 쳐다보고 있을수밖에 없었다.

우연이었을까...?
이상하게도 20불짜리 지폐에 그려져있는 앤드류 잭슨 미국 초기 대통령 얼굴이 방금 나가버린 아저씨랑 어쩜 그리 닮아있던지... 그냥 썩소가 나왔다, 피식~!

fish stew-3.jpg

차안으로 돌아와서 거울을 보았다.

파마한지 오래된 부시시한 머리, 푸석한 피부, 너구리눈이 따로없는 다크서클, 너덜한 티셔츠에 무릎나온 추리닝 바지까지... 18개월 딸아이 머리는 그날따라 머리핀도 못꽂아주어서 쑥대머리에, 코는 닦아주어도 또 흘리고 있고.

내가 봐도 상거지 모녀가 따로 없었으니...
그래도 아직 이세상에는 어려워보이는 사람에게 온정을 베푸는 인류애(?)가 있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했지만 그날 이후로 난 한국식당에 갈때면 꼭 거울에 비친 내모습을 확인해보는 습관이 생겼다.

동태매운탕은 그이후로 한동안 먹지 않았는데...
냉동실에 뒹구는 동태랑 아무런 이해관계 없는 조기 몇마리로 매운탕을 끓이다가 떠오른 그옛날 동태매운탕 에피소드...

보글보글~ 끓이다 옛추억 떠오르듯 생각나기에 몇자 적어보았다. 히히히~ ^ ^

@hello-sunsh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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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글 잘읽었어요~^^
팔로우하고 갈께요 시간나면 맞팔 부탁드려요 시작한지 얼마 안되서 허접하지만 기대해주세요 :)

맛있는 사진과 멋진글 잘 보고 갑니다 ^^

감사합니다.

그동안 그냥 지나쳤는데 아이디가 너무좋아요. 썬샤인만으로도 좋은데... 그래도 세상이 따뜻하네요. 그 분은 왜 돈때문에 운다고 생각했을까요? 혹시 그분도 동일한 경험을가지고 있어서는 아닐까 생각이 드네요. 전 입덧이 없어서 이런 경험은 없는데 평생을 기억될 에피소드가 될 것 같아요.

지금도 생선매운탕만 보면 그때 생각이 나서 피식 웃어요. 그때 제 행색이 남루하니 그런 생각을 하셨나봐요. ^^

동태매운탕 에피소드 재밌어요 ㅋㅋ 당시에는 당황스럽고, 입덧 때문에 힘드셨겠지만요ㅠ
저도 매운 걸 먹을 때 콧물이 많이 나는데, 저랑 비슷하시네요!ㅋㅋ 매운 걸 원래 잘 못 먹어서 많이 매운 음식은 잘 먹지 않지만, 왠지 많이 매운 걸 먹으면 저도 눈물날 것 같아요 ㅋㅋ

저도 매운걸 좋아는 하지만 잘 먹지는 못해요. 눈물 콧물 다 빠진다는... ㅠㅠ

그래도 지나치지 않고 신경써주는 사람의 마음도 참 따뜻하네요 ㅎㅎ
갑자기 제 옷매무새도 다시 보게 되네요

그치요? 처음엔 이게 뭐지... 했다가 그분 마음씨가 참 고맙더군요. 저도 한국식당갈때는 늘 제모습 두번 확인해요

아이고 첫째 아이를 포대기에 업고 드셨으면 더 찡했을것 같아요. ^^

그러게말이에요. ^^

많이 황당하셨겠지만 점심값은 버셨네요 ㅎㅎ

네, 고맙게도 매운탕값을 내어주셨네요. 지금 생각해도 황당한 사건이었어요.

헬로 선샤인님의 글을 보니 저도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있네요. 한밤중에 친구를 기다린다고 영업이 끝난 Santa fe 에비뉴의 El Ateneo 서점 앞에 쭈구리고 앉아있는데, 노신사 한분이 돈을 쥐어주시더라고요. 놀라서 아니라고 거절했는데, 한참을 가시더니 다시 돌아오셔서 기어코 주고 가셨어요. 10페소... 지금으로 치면 30페소.. 2불정도 되겠네요 ㅎㅎㅎ선샤인님의 글은 사진과 레시피도 좋지만 음식에 담긴 스토리가 참 좋습니다 :-)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정이 많지요? 한국사람들 정서랑 비슷한게 많더군요. 지금 페소 가치가 어떤지는 모르지만 제가 처음 갔을때 1 달러가 4페소였는데 2년후 떠날때 15페소였으니 나라 경제가 정말 말이 아니었어요. 지금은 좀 좋아졌나요?

꿀맛 동태매운탕이 불러온 이득! 재밌네요. ^^

그렇게 되었어요. 그분 덕분에 매운탕 공짜로 먹게 되었답니다.

이벤트 당첨 축하드립니다! 보팅드리구 가고, 앞으로도 많은 교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