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헤엄.

in kr •  8 years ago  (edited)

퇴근 후, 집에 들어오노라면 적막함이 폐부를 가득채워 결국 외로움에 질식하거나 익사할 것만 같다. 옆방의 작은 소음과 내가 걷는 소리, 웅웅거리는 컴퓨터의 소리가 나를 환영한다. 그러니 나는 이 적막함 속에서 헤엄칠줄 알아야한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분명 죽을 것이다. 헌데, 집을 나와 세상의 소리를 듣고 있노라면 무척이나 지치고 힘이드는 것이다. '차라리 익사하는 것이 낫지않을까' 같은 생각도 하곤했다.

나는 어느 곳에도 속하지 못한 이상한 중간자가 되어버렸다. 소음으로 가득찬 도시인 뭍과 적막으로 가득찬 외로운 바다 사이에서, 마치 갯벌에 서있는 어정쩡하고 질퍽한 상태인 것이다. 헤엄치지 못하니 턱밑까지 차오르는 바닷물을 즐기지 못하며, 뻘위에 서있으니 단단한 뭍에 올라선것은 아니다. 나는 그런 존재가 되어버렸다.

뉴턴의 고전물리학을 부셔버린 양자역학은 우리에게 더 이상 물리학도 완젼무결하게 측정할 수 없으며, 사실 일정부분 행운을 바라야한다며 넌지시 이야기한다. 양자역학의 어정쩡함을 설명하려 했던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코펜하겐 해석이 덫붙여져 당시에 정말 해괴한 논리를 폈다. 박스안을 열어보기 이전까지는 "삶과 죽음"이 공존하지만, 우리가 고양이의 생사를 확인할때 비로소 생과 사가 확정된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이것은 미시물리학이 거시물리학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지 설명하고자 한 예시였지만, 이제 코펜하겐 해석은 양자역학을 설명하는 표준모델이 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집도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그런 해괴한 공간일지 모른다. 그러니 나의 삶과 죽음은 누군가의 노크로 확정되는 것이다. 나는 이 집에서 내일도 무사히 나갈 수 있을까. 누군가의 노크, 행운을 빌며 문을 열어재끼는 누군가를 기다린다. 그것이 아니라면, 나는 이 바다에서 진정 헤엄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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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잡지가 많아서 이런류의 글을 자주 접했던거 같은데
인터넷문화 이후엔 거의 접해보질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군요

예전에 paper라는 잡지 많이봤는데 발행부수도 감소하고 격월지로 바뀐거 같더라고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