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아 조금만 힘 좀 빼주겠니?

in kr •  7 years ago 

어머니 뭐하세요? 요리를 하시는 어머니에게 내가 물었다. “너 주려고 시방 동태 찌개 끓이고 있다.” 냉장고에서 갓 꺼낸 꽁꽁 얼어 있 등굽은 동태를 꺼내실 때 당신의 등은 동태보다 더 훨씬 굽어있었다.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흙으로 돌아 가려는 회기 본능 같은 것 인지도 모르겠다. 매콤한 향내음이 코끝에 닿을 무렵 “옛다 먹어라” 하시며 보글 보글 갓 끓인 동태찌게. 그릇안에 반쯤 푸욱 담긴 엄지손가락. 감각의 상실인가, 사랑의 정표인가. 어머니가 물으셨다. “직장은 잘 다니제?” “싫더라도 꼬박꼬박 잘댕겨야제 시방 실업자가 을마나 많은 데” 그렇다. 사방에 실업자다. 그런데 내가 오늘부터 그 대열에 섰다는 것을 어떻게 말해야 할런지. 말이 선 뜻 나오지 않는다.“니 몇 달전에 선본 샥시 있잔혀, 그 짝에서 얼렁 상견례 하자고 한다하는 디, 나도 싫치는 않코, 뭐 여자 낮짝 빨고 살것도 아니고…..” 어머니의 말소리가 귀찮다 못해 낮설다. 아마도 중국말을 처음 들었을 때의 마르코폴로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네.천천히 한 번 생각해 볼께요.” 형식적인 말을 내뱉고 재빨리 화제를 바꿨다. “어머니 근데 병원에 함께 가셔야죠?” 다리도 불편하시고, 종합검진 제가 예약해놨어요.” “됐다” 어머니는 심드렁하게 손사래 치시며 말하신다. “나이드니 몸이 하나둘씩 망가지는 게 세상 순리인거여, 고친다고 처녀때로 다시 돌아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살란다” “혜자 엄마 있쟌혀, 간암인가 뭐시기 걸려서 집안 다 거덜내고 황천길 갔잔혀 .난 기냥 이렇게 살란다” 어머니의 고집을 못 꺽는 다는 걸 안다. 아들로 태어나서 효도하는 길은 단지 아들이라서가 아니라 수많은 세월을 동고동락한 한 여인에 대한 예의 차원이 아닐까.
단지 어머니가 나보다 한 발 먼저 이땅에 오셨을 뿐.
“어머니, 저 가 볼께요.” 하고 현관을 나선다. 다음에 다시왔을 때도 같은 대화는 반복될것이다. 굽은등과 찌게속의 반쯤 담긴 엄지 손가락도. 다만 어머니에게 중력의 힘이 멈추어 지길 바랄 뿐.그리고 나는 어머니 앞에선 평생 같은 직장에 다니고 때가 되면 승진도 해야 한다. 그게 한 여인에 대한 배려니까.

총각때. 어머니께 방문할 때 들었던 감정을 회상해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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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사랑도 작성작님의 사랑도 느껴지는 글이네요^^
그리고 총각때라면..선 본 분이랑 결혼하신건가요?
갑자기 다음편이 몹시 궁금해지네요..ㅎㅎㅎㅎ

어머니의 사랑은 끝이 없죠... 다 알고 계셨는데 모른척 하시고 힘내라고 말씀하신 걸수도 있죠 ^^저도 혼자 바쁘게 살지만 늘 그립긴 하네요

헐.. 읽으면서 지금 직장에서 자유로워지셨다는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머니에게는 늘 잘 먹고 잘 자고 직장 잘 다니고 결혼도 하는게 배려라는 말이 공감갑니다만 저도 이런 저런 생각에 빠지게 하네요! :)

줘도줘도 부족한게 어머님 마음이 아닐까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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