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명산이 블록체인을 '신뢰공학의 탄생'이라고 부른 것은 적절하다. 블록체인은 제3자를 통해 신뢰가 보증되어야 하는 모든 거래 혹은 상호작용에 사용될 수 있는 기술이다. 동네 계모임에서 투표에 필요한 본인인증까지, 신뢰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에든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될 수 있다. 그것도 변호사나 공무원같은 권위를 통하지 않고서 말이다.
중앙집권화된 기존의 신뢰체계들은 대부분 거래 내역을 숨기는 식으로 안전을 확보했다. 하지만 블록체인은 그 상식을 깬다. 블록체인이 제공하는 신뢰는, 나의 거래 내역을 네트워크의 모두에게 공개함으로서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다. 더 많이 공개될 수록, 더 안전하다. 과학자로 언제나 논문의 심사과정에서 벌어지는 심사자의 익명성이 불공평하게 느껴졌었는데, 블록체인은 그 의문을 말금하게 해소해주었다. 디지털 기술과 인센티브만 주어진다면, 공개가 가장 건강하게 신뢰를 획득하는 방식이다.
블록체인이 금융과 관련해서만 다루어지는건 다 비트코인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투기열풍의 기저엔, 다양한 욕망과 사회적 기원이 있겠지만, 사실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이 문명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건, 신뢰가 중앙집권화의 방식이 아니어도 주어질 수 있다는 것, 즉 가장 중앙집권화된 권력, 정부의 운영방식이 완전히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선거제도 자체에 혁명적인 변화가 당장 가능하다. 조작과 위변조가 불가능한 투표 시스템은 이미 가능하다. 미국 텍사스 주의 자유당이 대선 후보 선정에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온라인 투표를 도입한 것을 필두로, 유타주의 공화당, 스페인의 포데모스, 우크라이나 정부 등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투표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정당정치가 종말을 맞이할 수 있다. 정당의 존재이유를 잘 살펴보자. 정당은 어떤 이념의 스펙트럼을 공유하는 민중 일부의 신뢰를 받을 때만 기능한다. 정당은 대의제에서 일종의 제3자 신뢰기관으로 기능하며, 중앙집권화된 형태로 정치적 신뢰를 제공하는 서비스업체라고도 볼 수 있다. 우리는 정당을 통해 정치를 거래한다. 하지만 블록체인은 정당을 통하지 않고서도 조작과 위변조가 불가능한 정치적 신뢰의 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직접민주주의의 확대는 필연적이다. 대의제가 도입된 이후, 인류의 역사는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정치에 도입해온 역사이기도 하다. 시민단체의 역할이 확대되고, 지방분권화가 이루어지는 역사는 대부분의 민주주의 국가가 겪는 필연적인 과정이다. 블록체인은 그 과정을 가속할 수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모든 권력이 국민의 대표가 아니라, 국민으로부터 나올 수 있음에도 그 변화를 거부하는 집단이 있다면, 그 집단이야말로 민주주의의 적일 것이다. 블록체인은 정당을 무력화하고, 직접민주주의를 확대하며, 나아가 국가와 정부라는 권력의 힘을 축소한다. 세상은 작은 마을 공동체로 구획되고,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사회형태다. 블록체인을 '디지털에 스며든 아나키즘'이라고 불렀던 이유는 바로 그 때문이다.
참고할 만한 글들
- 투·개표 논란 블록체인으로 묶어볼까 시사인 2016
- 블록체인 투표 시스템이 선거 보안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와글 브런치
- 블록체인 정치 더 아크로 게시판
- 디지털 거버넌스를 위한 개헌 이민화 칼럼
- 비트코인이 던진 작은 돌, 블록체인 혁명을 일으키다 성대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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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김경형이어요. 스티밋 오늘 시작했습니다. 어디에 쓰면 좋을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요. ^^ 주욱 읽었습니다. 보석같은 포스팅들입니다. 우재님 포스팅 읽는 것 만으로도 할 가치가 있어보인다는..^^* 건강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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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계셨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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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 아직은요.ㅎㅎ 얼마전 아버지 돌아가시고 많은 상념에 젖었습니다. 말로 풀어내기는 어렵고요. 좀 더 힘내어 살아야겠다는 다짐 정도? 저만치 앞에서 걸어가던 아버지의 등이 사라지고 길이 휑하니 빈 거 같습니다. 나쁜 건 아니에요. ㅎㅎ.. 스팀잇을 어케 활용해볼까 아직 고민 중인데.. 내가 준비 중인 이야기들을 조금씩 풀어 올려볼까 하네요. 암튼 여기서 볼 수 있어 좋네요. 늘 건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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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또한 블록체인이 바꿀 사회가 너무 기대됩니다 @홍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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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 보고 싶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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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변화가 있을 수 있겠군요. 스위스와 같은 선진국일수록 여러가지 정책 사안에 대해 국민들의 직접 투표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죠. 우리나라 정치도 어서 선진화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신뢰의 자본이 많이 축적되지 않아 지출되는 비용들이 너무많은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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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치에도 이 시스템을 적용할 수 있군요.. 다음에 또 놀러오겠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가즈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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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분야에 도입하면 정말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얽혀있는 이권이 많아 당장 시행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금융권 이외에 블록체인의 긍정적인 도입이 많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네요. 좋은 글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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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블록체인은 정당을 통하지 않고서도 조작과 위변조가 불가능한 정치적 신뢰의 체계를 만들어낼 수 있다."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_-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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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제 정치는 모든 사안마다 시민들의 직접 투표를 통해 정책적 결정을 하기 어려운 상황을 위해 만들어진 제도죠. 정당은 어떠한 이념과 정책으로 정치를 하는 정당이 나에게 맞는지 투표로 신뢰를 보내고 그 대의 정치를 실행하는 정치집단이고요. 우리나라 헌법에서 제일 먼저 나오는 정치집단이 정당인 것도 정당 민주주의의 중요성이 나타났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블록체인의 신뢰성을 기반으로 온라인 직접 투표가 가능해지면 정당이라는 집단 자체가 존재 가치가 없어지겠죠. 그런 의미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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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이라 보팅/팔로잉후 조금은 생각의 결이 다른 부분이 있어 댓글 남깁니다. 헤테로시스 님께서 말씀하신 전망이 실현되더라도 국가권력이나 정당정치는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강화될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통제의 강화, 관료제적 강화가 아니라 민주적 강화겠죠. 정치학에서 정당은 정치적 견해와 이념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정치 권력을 획득하기 위해 모인 집단으로 정의됩니다. 일반적으로 정치는 희소가치의 합리적, 권위적(여기서 권위적이란 '구성원들의 자발적 동의에 기초한' 이라는 뜻입니다) 배분활동이라 정의되고, 국가는 그러한 정치가 실현되는 공동체의 단위로 정의되죠. 그런 면에서, 말씀하신 전망은 정치, 국가, 정당의 소멸이라기보다는 정치, 국가, 정당이 갖는 본연의 의미 회복으로 이어질 전망이 크다고 보는 것입니다. 아울러 간접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를 대립적인 것으로 보거나, 간접민주주의를 직접민주주의의 불가피한 대체물로 생각하는 통념이 있는데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댓글이라 더 긴 이야기는 적절치 않을 듯하여 당장 스팀잇도 ‘증인’이라는 대의제를 채택하고 있다는 정도로만 말씀드리고 다음 기회를 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통찰을 주는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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