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유통기한이 없다는 걸 깨닫게 해주는 영화. - 중경삼림 Chungking Express

in kr •  7 years ago  (edited)
  •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홍콩에 다시 가고 싶게 만드는 영화.

자꾸, 장면들이 떠오르는 영화.

친구들과 홍콩 여행을 갔을 때,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청킹맨션 'chungking mansion' 에서 하룻밤 잤었다.
일단, 건물이 너무 낡고, 무엇보다 건물에 있는 온갖 외국인 노동자들이 '아가씨, 아가씨'하면서 말을 거는게 무서워서 하루 빨리 이 건물을 탈출하자고 했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홍콩에 갔었더라면, 어쩌면 나는 그 분위기를 즐길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홍콩 여행을 하면서 '아날로그 파리, 아날로그 제주'가 있는 것 처럼 홍콩도 아날로크 필터가 있다면 뭔가 '푸르딩딩' 할 것 같다고 느꼈었는데 이 영화 전체적인 색감이 딱 그렇다. 뭔가 파-래.

영화를 보고나니까 진짜 홍콩 너무너무 가고싶다. 엄청 어수선하고, 낡고, 시끌시끌한 침사추이 뒷골목!

"시간과 공간"

영화에는 두가지 에피소드가 나온다.
사복경찰 223(금성무)가 나오는 에피소드 하나,
정복경찰 663(양조위)가 나오는 또 다른 에피소드 하나.

첫 번째 에피소드 키워드는 시간, 다음 에피소드는 공간이 되겠다.

(두 에피의 공통점은 두 남자 주인공 모두 너-무 잘생겼다는 것. 금성무 젊은 시절은 진짜 지구 부순다. 보는 내내 감탄함.)

나는 처음에 금성무 에피소드를 대강 듣고, 사진도 찾아보고 나서 영화를 본 것이라서 이 에피소드가 메인일 줄 알았는데 아니어서 아쉬웠다. 663 에피소드의 러닝타임이 절대적으로 길다.

Episode 1 - 시간

<출처 - 네이버 영화>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있다면 유통기한이 끝나지 않기를, 만일 유통기한을 꼭 적어야 한다면 만 년 후로 적어야겠다."

사복경찰 223(이름은 따로 나오지 않는다.)은 만우절 날 이별을 통보받는다.
이별을 통보받은 사람이 늘 그렇듯이, 223은 메이에게 전화하고, 매달리며 기다린다.

<출처 - 네이버 영화. 파랑파랑한 색감. 금성무 진짜 잘생겼다.>

223의 예전 여자친구 이름은 메이!
5월 MAY와 이름이 같다.
그는 메이가 좋아하던 파인애플 통조림을 사들이면서 5월 1일까지 그녀에게 연락이 오지 않으면 그녀를 잊겠다고 결심한다.
5월 1일은 헤어진 지 한 달이 되는 날인 동시에 본인의 생일이다.
결국 그녀에게 연락은 안오고 223은 사들인 파인애플 통조림을 모-두 먹으면서 그녀를 잊는다. 이별이다.

<출처-네이버영화>

메이는 한 달 전 그와 헤어졌겠지만, 223은 이제야 진짜 이별을 했다.
진짜 공감돼서 노트북 붙잡고 거의 눈물 흘리기 직전까지 갔다.. ㅋㅋㅋㅋㅋ

나랑 비슷하다. 그래서 뭔가 웃기고, 보면서 내내 약간 우울했다.
나도 이런 적이 있었다. 일방적으로 연락이 안되고, 혼자 기다리다가 혼자 기한을 정한다.
'이 때까지 연락 안오면 진짜 끝이야.'

나랑 223이랑 다른 점은 223은 자신이 정한 기한을 정확하게 지킨다는 것.
나는 내가 정한 기한을 기다리고, 연락이 안오면 한 번 더 정하고,
다시 한 번 정하고. 그랬었는데. 223은 나보단 좀 쿨한 것 같다.
5년 만난 여자를 한 달 기다리고, 정리하고,
또 새롭게 바에서 만난 여자를 평생 기억하고자 하고.


<출처 - 네이버 영화. 아 너무 잘생겼다. 말하기 입아프다.>

메이를 잊기로 한 223은 무작정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고 한다.
ㅋㅋㅋㅋ 이것도 나랑 너무 비슷하다. ㅋㅋㅋㅋㅋㅋㅋ
그는 바에 처음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기로 결심한다,

그 때 들어온 여자(임청하).
금발 가발을 쓰고, 레인코트를 입고, 선글라스를 낀 이 여자는 마약 밀매 중개인이다.

둘은 하룻밤을 보내는데 정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 때 감자튀김을 씹으면서 여자를 바라보는 금성무 눈빛은 진짜 ㅠㅠ
순수함이 막 뚝뚝 묻어남 .. 영화 색감이 파래서 그 장면이 더 청량하고, 예쁘고 그렇다.
마지막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자는 깨끗한 구두가 어울린다며
구두를 벗겨서 닦아주고 떠나는데 ㅠㅠ 이 남자 진짜 ..ㅠㅠㅠ
메이는 미친거야!!! 이런 남자를 놓치다니 ㅠㅠㅠㅠㅠㅠ

그 다음 날, 여자는 223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그걸 전해 들은 223은 그녀를 절대 잊지 못할 거라며 독백한다.

"난 그녀를 잊지 못할 것이다. 기억이 통조림에 들어있다면 유통기한이 끝나지 않기를, 만일 유통기한을 꼭 적어야 한다면 만 년 후로 적어야겠다."

해피엔딩도 아니고, 둘이 달달한 장면 하나 없었는데 나는 이 에피소드가 너-무 좋다.
진짜 두고 두고 생각날 것 같다.
변하지 않는 사랑은 없고, 사랑의 유통기한은 분명 있지만.
우리는 모두 유통기한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사랑을 하니까.

그리고 처음 에피소드가 다음 에피소드보다 더 좋은 이유는
약간 더 홍콩이 잘 느껴진달까.
청킹맨션의 좁고 어수선한 복도, 이 때 약간 불안한 듯한 느낌들. 다양한 국적의 온갖 외국인들.
그리고 왕가위 감독의 어지러운 영상 기법. 특히 여자가 사람들을 찾아서 죽이고 도망칠 때
심장 두구두구하게 만드는 카메라 워킹이 너어어어어무 좋다.
뭔가 진짜 홍콩이 마구마구 느껴져!!!!


양조위가 나오는 에피 2

Episode 2 - 공간

<출처-네이버영화>

처음 에피소드와 달리, 이번 에피소드는 더 밝고 해피엔딩이다.
정복경찰 663 (양조위)는 chungking express 에서 매일 여자친구가 좋아하는 샐러드를 사간다.
그 과정에서 페이는 663을 좋아하게 된다.

<출처-네이버영화>

여자친구 직업은 스튜어디스.
중간에 잠깐 전 여자친구와 집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장면이 이 영화 통틀어서 제일 달달한 장면이 아닐까 싶다.
집이라는 공간은 그녀와의 특별한 공간이었다.

그러나, 곧 애인은 663에게 이별을 고하고
Chungking express 점원 페이(왕페이)에게 편지와 열쇠를 663에게 대신
전해줄 것을 부탁한다.

이별을 통보받은 663은 물에 젖은 수건을 보면서 울지말라고 위로하고,
인형에게 말을 걸고, 비누를 붙잡고 하소연하고 .. ㅋㅋㅋㅋ 귀엽다.


<출처 - 네이버 영화>

페이는 열쇠를 돌려주는 대신, 그 열쇠를 가지고 매일 663의 집에 몰래 들어가서 옛 애인의 흔적들을 없앤다.
텍스트로 읽으니까 되게 무서운데, 영화를 보면 페이가 사랑스러워서
용서가 된다. ㅋㅋㅋㅋ 사실상 주거침입죄 .. ㅋㅋ


<출처 - 네이버 영화>

슬리퍼 색을 바꾸고, 인형을 바꾸고, 옷도 바꿔놓고.
정말 사소한 것들 부터 온통 바꿔놓는다. ㅋㅋ 써 놓으니까 좀 무섭네..
암튼 663이 무의식적으로 이별 할 수 있게, 전 애인을 잊을 수 있도록 하나 하나 바꾼다.
그리고 이 집에서 자신도 힐링받고! 진짜 보는 내내 내가 들킬까봐 조마조마 ..
하루는 그녀가 수돗물을 잠그지 않고 나가서 집이 물바다가 된다.

663은 그걸 치우면서
"이 집은 점점 감정을 가진다. 강한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이 울 줄은 몰랐다."고 독백한다.
이런 장면들을 보면서 페이가 몰래 들락날락한 것을 알았을 때 어떻게 될까 조마조마했다.

<출처 - 네이버 영화>

페이가 집에서 나가다가 결국 딱 걸린 날.
663은 그녀를 위해 다리를 주물러준다.
스튜어디스였던 예전 여자친구에게 늘 해줬었는데
그녀와 헤어지고 나서 처음으로 다른 여자를 위해 다리를 주무른다.

<출처 - 네이버 영화>

이 때, 페이가 좋아하던 California Dreaming을 함께 들으면서 낮잠을 잔다.
달달한 장면.
어제 오늘, 계속 듣고 있는 노래.

이후, 633은 페이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
내일 여덟시에 캘리포니아에서 만나자고. 페이는 여덟시가 붐빌까봐 일찍 약속장소에 오는데,
그 날 비가 왔다. 진짜 캘리포니아는 날씨가 맑은지 궁금했던 페이는 캘리포니아로 떠난다.
그러면서 633에게 쪽지를 보내는데, 함께 떠나자는 예약표였다.
633은 이별의 편지라고 생각하고 빗물속에 버리고, 다시 말려서 읽어보려하지만
이미 지워져버리고 .

일년 후,
663과 페이는 다시 만난다.
페이 - "어딜 가고 싶죠?"

"아무데나,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

마지막 장면에서 양조위 눈빛이 진짜......
진짜 진짜 페이를 사랑하는 것 같은 눈빛.

사람들은 정말 각자의 방식으로 이별하고, 잊고, 새롭게 사랑한다.
이별에 있어서,
223은 통조림을 모으고, 먹고, 새로운 사랑을 찾고
633은 물건에게 말을 걸고. 또 633에겐 몰래 이별을 돕는 페이가 있었다.
223과 633 그리고 우리 모두의 공통점은
이별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뭔가 버려야 한다.

시간이 지나고 이 영화를 보면 내가 또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
영화를 보고 하고 싶은 말이 너무너무 많은데, 내가 말을 잘 못해서.
표현을 이 정도 밖에 할 수 없어서 속상하다.

네이버 평점과 리뷰들, 그리고 명대사들을 읽는데
놓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꼭 다시 봐야지.
정말 정말 좋은 영화.
그리고 난 홍콩을 다시 가야겠다. 꼭.


네이버 리뷰를 보며 제일 마음에 드는 한 줄평.
'오늘 이 영화를 본 난, 영화에는 유통기한이 없다는걸 깨달았다.'
너무 적절하다.

나도 처음으로 네이버 영화에 한 줄평을 썼다.

'살면서 20번은 더 볼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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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취향은 양조위가 나오는 두번째 에피소드에요! 🙆🏻‍♀️
페이가 사랑스러워서, 하는 범법행위 (?)들도 용서가 되네요. 좋은 영화 또 소개시켜주세요! 이 글 보니 청킹맨션과 캘리포니아 드리밍이 땡겨요

으아 정말 인정이요! 페이라서 용서되는 행동들. 제가 첫 에피소드가 맘에 드는 건 뭔가 금성무에게 드는 강한 감정이입 덕분인 것 같아요. 찌질하던 그때가 생각난달까요!ㅋㅋㅋ

크크 전 반대로 좋아하는 남자집에 몰래 들어가는 페이이 행동이 저 대신 해준 거 같아 감정이입이 되었나봐요
영화는 역시 감정이입인가바요 같은 영화봐도 다르게 느끼다니 재밌어요 ㅎ0ㅎ

맞아요! 영화의 좋은 점이 이런거 아닐까요. 느끼는 게 다 다르니까요. :)

영화를 통해 깊은 사색을 하고 감정을 느낀다는 건 멋진 것 같아요. 화면 색감도 예뻐요 :)❤️

흐 ㅠㅠ미나님... 감사합니다!!!

하...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이고 열번도 넘게 봤던 영화에요!!
간만에 또 좋아하는 장면을 복습해야겠네요 :)

으아.. 이 영화를 좋아하시는 분을 만나 기뻐요!!

다른 이유이지만 저도 앞 편인 하지무가 나오는 편을 좋아합니다 :)
그때의 금성무가 너무 잘생긴 탓도 없지 않겠지만요

끄앍!!' 통했어요!!ㅋㅋㅋㅋㅋㅋ뒤에 덧붙이신 말에 풀봇을 날립니다!

앜ㅋㅋ 감사합니다 XD

진짜 저도 작년에 보고 나서야 왜 끊임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지 알게 되었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정말 계속 볼 영화!!!!!!

동의합니다! :) 사람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데에는 이유가 다 있죠!

늘 좋은 포스팅에 감사드립니다
짱짱맨 가즈아!

늘 감사합니다 :) 가즈아!

초등학생 시절 나온 영화인데, 당시 비디오로 봤었는지 TV를 통해 봤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저희집 TV화면으로 보던 기억이 있습니다.

어린나이에 무슨내용인지 알 수도 없고 재미도 없었다고 생각했네요.

그리고 20대 초반에 어쩌다 다시 볼 기회가 있었는데, 워낙 유명한 영화니 그냥 스토리만 찍으며 봤었던 기억이 있네요.

그리고 몇년전 EBS 세계의 명화라는 토요일 프로그램에서 우연찮게 보게 되었는데, 그제서야 왜 이 영화가 명작인지 조금은 알게 되더군요.

너무 어른의 영화, 감정의 영화라 어린 나이엔 몰랐었던 것 같습니다.

맞아요. 저도 지금 느낀 감정과 또 몇년 뒤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느끼는 감정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2년 전, 우연히 홍콩에 가게 되었는데 여행이 결정되고 딱 떠오르는 것이 "중경삼림" 영화였어요.

홍콩에서는 영화 속 장면들을 실제로 방문했을 때는
영화에서 봤던 장면들과 OST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가고~
진짜... 이 영화 명작입니다.

오랜만에 다시 홍콩 가고 싶어지는 글입니다. ^^

흐.. 진짜 명작이죠ㅠㅠㅠ저도 오전 내내 캘리포니아 드림 듣고 있네요! Ost들도 다 정말 명곡 ㅠㅠ저두 홍콩 다시 가고 싶어요!

그러게요.
얼마 전, 에어서울 사이다 특가로 홍콩을 예매할걸 그랬나봐요. ^^

ㅠㅠㅠ 기한을 정해놓고 그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끝이라고 하는거..마음ㅇ 아프네요 ㅠㅠ진짜
이별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서로 준비된 이별을 할 수 있었으면 이라는 생각이...ㅠㅠㅠㅠㅠㅠ

그쵸! ㅋㅋㅋ ㅠㅠ맞아요.. 영화보면서 감정이입돼서 저도 같이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고전 영화예요. 그런 대단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