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기의 용도는 골수를 빼내는 용도와 딱따구리 점뺀 흉터침치료

in kr •  5 years ago 

우리는 이렇게 가정한다. ‘뇌가 크고 도구를 사용하며 학습능력이 뛰어나고 복잡한 사회적 구조를 갖추면 크게 유리할 것이다.’ 인간은 분명 이런 특징 덕분에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동물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간은 2백만 년 동안 이런 특징을 지녔음에도 계속 연약한 주변부 존재일 뿐이었다. 1백만 년 전 인간은 뇌가 크고 날카로운 돌도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포식자를 끊임없이 두려워하며 살았고, 큰 사냥감을 잡는 일은 드물었다. 주로 식물을 채취하고 벌레를 주워 담고 작은 동물에게 몰래 접근하며, 다른 힘센 육식동물이 남긴 썩은 고기를 먹었다. 초기 석기의 가장 흔한 용도는 뼈를 쪼개 골수를 빼내는 일이었다. 인간의 원래 생태적 지위가 그것이었다고 믿는 연구자들도 일부 있다. 딱따구리가 나무 속에서 벌레를 꺼내는데 특화했듯이 최초의 인류는 뼈에서 골수를 꺼내는 데 특화했다는 것이다.
딱다구리.jpg
왜 하필 골수였을까? 예컨대 한 무리의 사자가 기린을 쓰러뜨린 뒤 뜯어먹고 있는 것을 당신이 보았다고 하자. 당신은 이들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린다. 하지만 차례는 아직 멀었다. 사자가 남긴 것은 하이에나와 자칼의 몫이다. 당신은 감히 거기 끼어들지 못한다. 당신과 당신의 무리는 이들의 식사가 끝난 다음에야 좌우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다가가서 남아 있는 잔해 중에 먹을 수 있는 조직을 찾아 열심히 먹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와 심리를 이해하는 열쇠다. 먹이사슬에서 호모 족이 차지하는 위치는 극히 최근까지도 확고하게 중간이었다.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은 자기보다 작은 동물을 사냥하고 식물을 채취해왔으며 지속적으로 대형 포식자에게 사냥을 당해왔다. 인간의 몇몇 종들이 대형 사냥감을 정기적으로 사냥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40만 년 전부터였고, 인간이 먹이사슬의 정점으로 뛰어오른 것은 불과 1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면서부터였다.
중간에서 꼭대기로 단숨에 도약한 것은 엄청난 결과를 낳았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던 다른 동물, 예컨대 사자나 상어는 수백만 년에 걸쳐 서서히 그 지위에 올랐다. 그래서 생태계는 사자나 상어가 지나친 파괴를 일으키지 않도록 견제와 균형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 사자의 포식 능력이 커지자 가젤은 더 빨리 달리는 쪽으로 진화했고, 하이에나는 협동을 더 잘하도록 진화했으며, 코뿔소는 더욱 사나워지도록 진화했다.
이에 비해 인간은 너무나 빨리 정점에 올랐기 때문에, 생태계가 그에 맞춰 적응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인간 자신도 적응에 실패했다.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는 대부분 당당한 존재들이다. 수백만년간 지배해온 결과 자신감으로 가득해진 것이다. 반면에 사피엔스는 중남미 후직국의 독재자에 가깝다. 인간은 최근까지도 사바나의 패배자로 지냈기 때문에, 자신의 지위에 대한 공포와 걱정으로 가득 차 있고 그 때문에 두 배로 잔인하고 위험해졌다. 치명적인 전쟁에서 생태계 파괴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참사 중 많은 수가 이처럼 너무 빠른 도약에서 유래했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조현욱 옮김, 이태수 감수, 김영사, 페이지 29-31

필자는 구석기는 있어도 구석기 시대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선사 시대 인간이 현대 인간보다 지능이나 능력이 전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대인은 스마트폰이나 문명에 의존하기 때문에 선조보다 못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피라미드나 잉카 석벽등을 보면 현대인들도 만들기 매우 어려운 공학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그들이 석기 시대 사람이라고 미개한 존재이고 현대 인류가 더 지혜롭다고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아래의 내용을 보자.
후지무라 신이치(일본어: 藤村新一, 1950년 5월 4일 미야기현 ~ )는 고고학 유물을 조작한 것으로 유명한 일본의 아마추어 고고학자이다.
후지무라 신이치는 자신이 미리 만든 유물을 발굴 예정 장소에 몰래 묻고 나중에 공식 발굴 작업을 통해서 찾아내는 방식을 사용했다. 후지무라의 유물 조작 사건은 일본 고고학계를 발칵 뒤집었으며 교과서에 실린 그의 업적을 변경하는 등 큰 홍역을 치러야 했다.
1972년에 후지무라는 고교 졸업 후 고고학을 독학하고 유물을 찾으러 다니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화학회사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1981년 미야기(宮城) 현 사사라기(座散亂木) 유적지에서 4만 년 전 유물을 발굴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3만 년 전의 유물이 없던 일본 고고학계에서는 그의 발견에 크게 고무되었고 결국 그는 일본에 최초 인류가 60만 년 전에 출현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할 수 있는 유적을 여럿 발굴했다. 그가 발굴하기만 하면 엄청난 유물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에 “신(神)의 손”이라고 칭송받기도 했다. 특히 후지무라가 일본에서 전기 구석기 시대의 유물을 발굴하면서 일본인의 기원에 대한 기존 학설보다 더 오래전부터 일본에 구석기 문화가 존재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로 사용되었다. 나중에는 이런 업적을 인정받아 도호쿠(東北) 구석기문화연구소 부이사장의 직책까지 맡았다.
하지만 후지무라 신이치의 유물 발굴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마이니치 신문의 한 간부는 후지무라 신이치의 부정을 제보하는 전자우편을 받았다. 사실 확인 결과 충분히 근거가 있다는 결론을 내리고 2000년 8월부터 본격적인 조사를 시작했다. 조작하는 과정을 정확히 기록하기 위해 일반 사진기 대신 동영상 카메라로 녹화하기로 했고 먼 거리에서 숨어서 촬영하는 방식을 택했다. 2000년 9월 5일 미야기(宮城) 현 가미타카모리(上高森) 유적지에서 선명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만든 유물을 몰래 묻는 현장을 촬영하면서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고 결국 10월 22일 아침에 정확한 현장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본인이 부인할 것을 우려하여 11월 4일 센다이 시의 한 호텔에서 인터뷰를 가져서 본인에게 직접 확인하기로 했다. 영문도 모른 채 인터뷰 장소에 나온 후지무라는 약 40분간 자기 자랑을 늘어놓았는데 이를 듣고만 있던 취재팀장이 “보여드리고 싶은 영상이 있다”라면서 후지무라가 몰래 유물을 파뭍는 모습을 VCR로 틀었다. 후지무라는 10분간 아무 말이 없다가 “전부 조작한 것은 아니다.(그러니까 조작은 했다.) 마(魔)가 낀 것 같다.”라면서 조작을 인정했다.
이 사건으로 후지무라가 발굴한 유물에 대한 정밀 조사가 벌어져 가짜로 판명된 유물들은 국가 사적 지정이 취소되었고 교과서에 언급된 내용도 당연히 삭제되었으며 후지무라 본인도 고고학계에서 추방되었다. 그의 책을 출판한 고단샤에서도 도서 환수 조치, 와시오 켄야당시 편집이사의 자진 사퇴로 책임을 지는 등 후지무라의 유물 발굴 조작 사건은 일본 출판계에도 타격을 주었다.
사실 후지무라 교수의 발굴은 초기부터 많은 의혹을 받아왔다. 방금 파낸 유물에 마른 흙이 묻어 있다든지 뗀석기를 만든 수법이 수십만 년 전의 것이 아니라든지 3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석기들의 아귀가 정확하게 들어맞는다는 등 이상한 점이 많아서 여러 차례 지적이 있었으나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고 언론에는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일부 일본인들은 후지무라의 발굴 결과에 열광해 왔으나 결국 모두 조작극이었음이 판명되었다.

그럼 일본인들만 조작한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모든 나라가 조국의 역사를 찬양하기 위해 고유의 역사기간을 늘리기 위해 석기 시대를 만들어 조작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본다.
미국의 권위있는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기관인 지오크론(Geochron)의 측정결과 이 소로리 볍씨의 연대가 1만5천년 전후로 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벼의 원산지는 동남아로 Oryza rufipogon은 아시아 재배벼의 조상종으로 동남아시아 지방에서 유래했다.
http://www.creation.or.kr/library/itemview.asp?no=536
탄소 측정 자체도 허구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화론과 비슷한 신화인 성경 창조론이 과학적인 사실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우리가 역사적으로 배운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 철기 시대는 진화론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주변에 돌이 있으면 돌을 쓰는 것이고, 또 구리나 철이 생산된다면 그것을 녹여서 무기를 만드는 것이다. 이집트에 철광산이 없는데 피라미드도 철로 지어야 하는 것일까? 석기시대는 문제가 있는데 조선 실학이 근대화란 미명을 가진 서양역사에 꿰어 맞추기 위해 태어났듯이 말이다. 정약용, 박지원, 박제가등이 자신들이 실학자라고 말한적이 있는가? 정약용이 유학인 논어고금주를 썼는데 그들 분류대로라면 정약용은 실학자가 아니다.
또 특이한 점이 중국 춘추전국시대에 청동기에서 철기로 바뀌어 농업 생산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는 말도 안되는 뇌피셜이 있는데 그것에 대한 근거 자료나 사료가 없다. 청동기는 제사용 항아리등에 쓰인 것이고, 쟁기등을 청동기로 만들었다는 어떠한 책을 본적이 없다. 오히려 철이 녹는 점이 높아 녹이기가 더 힘들겠지만 청동기는 구리 + 주석등 합금이니 만들기 더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리고 석기시대, 청동기, 철기 시대등의 시기와 연대가 계속 바뀌기 때문에 가르치면 안된다. 수능시험에 검증되지 않는 연대를 내면 그 자체가 확고불변한 진리도 아닌데 무슨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지금 역사책의 석기시대 서술과 필자가 배웠던 시기가 완전히 달라졌으니 의미가 없다.
또 석기 시대를 연구한다고 인류에 무슨 보탬이 되는지 모르겠다. 서로가 자신의 나라가 가장 오래전에 벼농사를 하고 석기 철기등 문명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하여 배타성만 키워주는 편협함을 가르쳐주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무렵 미 행정부의 원자탄 개발을 촉구 했던 아인슈타인은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제3차 세계대전에는 어떤 무기가 사용될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제4차 세계대전은 몽둥이와 돌로 싸우게 될 것이다.”
만약 100년후에 핵전쟁으로 거의 망한 인류가 석기시대 무기로 전쟁하면 그것이 진화된 것인지 묻고 싶다.

아무튼 위의 내용중에 딱따구리 내용이 나온다. 딱따구리는 벌레를 파먹는데 나무에 파인 홈을 가져다 준다. 물론 이 행위 자체는 나무를 파먹는 벌레 제거하므로 유익한 것이지만 나무 자체는 아름다움을 빼앗긴다. 점을 뺀 흉터나 수두 흉터등이 생기는데 서양의학적으로 치료가 어렵다. 점뺀 흉터, 대상포진 흉터, 수두 흉터, 기타 파인 흉터를 www.imagediet.co.kr 자향미한의원의 흉터침으로 처치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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