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하고 복직을 했다. 두달이 쏜살같이 흘러간다. 그래서 부지런했냐라는 물음에는 그래도 잘 버텼다고 중얼거리는 수밖에.
이사한 집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여전히 내 집은 아니지만..)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 동네도, 그래서 선택장애에 걸릴 필요 없이 하나씩 밖에 없는 주변상권도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이 환경이 내면도 조금이나마 변하게 해주기를 은근히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가능성이 1%도 없는 착각은 아니었다.
난 매번 청소와 정리정돈, 음식 만들어 먹기에 실패했는데 이사 후 성공한 것이다!
그래..내가 지난 십년간의 살림에 실패한 이유는 열악한 원룸이기 때문이었어.
아니면.. 주부도 십년은 실패해야 감이 오는걸까.
엄마들도 어릴적에는 많이 힘들었던 거였어.
우리가 유아기에 무슨 끔찍한 음식을 먹었는지, 집안이 얼마나 개판이었는지 사실 기억도 나지 않잖아.
엄마도 쓰레기더미 집안에서 상하기 직전의 분유를 먹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잦은 걸레질과 설거지에 손이 마른다.
이게 말로만 듣던 주부습진일까.
서둘러 다이소에 들러 고무장갑을 샀다. 뚜레주르에 들러 바게트와 우유도 샀다.
야채가게에 들러 감자와 고구마, 파와 양파를, 정육점에 들러 볶음용 고기를 샀다. 마켓에 들러 과자 한봉지와 과일도 조금 사서 집에 왔다.
잠시 숨을 돌리고제육볶음을 만들고 계란후라이 하나 만들고 김을 꺼내 저녁을 먹었다. 설거지가 생겼다.
설거지를 하고 담배를 피니 커피가 마시고 싶다.
우유를 데우고 물을 올렸다. 커피를 마시니 또 설거지가 생겼다. 아침에 밥을 할 자신은 없었다.
내일을 위한 밥을 다시 올리고 밑반찬을 하나 만들고 냉장실에 넣었다. 설거지가 생겼다.
금방 출출해져 감자와 고구마를 삶고 소금을 살짝 치고 먹었다. 설거지가 생겼다.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켜니 눈이 가물가물하다. 오랜만에 업무를 하니 책도 좀 봐야하고, 예정대로 소설도 써야하는데 ...스팀잇에 꾸준히 글 쓴다고 하지 않았나? 그냥 자자.
내일 아침은 바게트에 커피를 마시고 저녁에는 냉장실에 밥과 반찬을 먹으면 된다. 출출하면 과자와 과일을 먹으면 된다. 적어도 내일은 가사노동에서 해방된다. 설거지는 해야한다.
그래. 난 변하지 않았다. 꼭 글을 쓰지 않아서는 아니었다.
아마 변한게 있다면 내가 무너짐에 조금씩 익숙해진다는 사실밖에 없었다.
그리고 밖에서 술과 여자를 찾다가, 이제는 청소와 설거지와 음식만들기라는 메커니즘에서 안정을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제육볶음을 만들면서, 김밥천국에서 먹던 중국산 고춧가루와 어머니가 주신 국산 고춧가루의 차이가 느껴져서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고춧가루에서 위안이 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차가운 출근길에 내가 온실속에 있었음을 다시 느낀다.
지난 시간동안, 소중한 월급이 나오는 그 온실이 매트리스가 아닐까 의심했던 내 자신을 호되게 책망하며 현실로 빠르게 돌아오고 있다.
나는 소진되어 간다. 백수로 지내든 회사에 다니든. 외부의 변화와 무관하다고 믿으면서도 확신은 없다.
알 수없는 이유로 무너져가지만 어느정도 내성도 함께 생겼다.
현실도 정신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가끔씩 느낀다.
그러고 보니 나이먹음이 가끔씩 반가운 건 , 성욕이 다시 올라오는 시간이 조금씩 길어진다는 사실과 내가 점점 아재
들처럼 뻔뻔해진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부터였다.
( 우울해 해야되는 일인가. )
좁은 새장에 갖혀있는 새를 생각했다.
새는 정말 밖으로 나가고 싶어했을까.
어쩌면 새는, 먹이를 열심히 받아먹으며새장 속에서 삶에 강렬한 의지를 갖고 살아갔던 건 아니었을까.
안이냐 밖이냐는 중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는데.
이케아는 진리였다는 사실도 한동안 변하지 않을 것 같다. 왜 난 이제야 이케아를 간거지.
솔직함이 느껴지는 글이군요...특별한 것 보단 일상속에서 행복을 찾는 것..전 그게 인생의 거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ㅎㅎ 그나저나 제 꿈이 독립하고 이케아에서 이것저것 사서 인테리어하는 건데...곧 따라가겠습니다!
약소하지만 업보팅&팔로우 하고 갑니다 ㅎㅎ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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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저도 조금씩 일상적인 만족을 찾는가봐요. 뭐가 꼭 맞다기보다는 개인마다 다르긴 하겠지요.ㅎㅎ 독립하고 스팀에 꼭 올려주세요.저도 팔로잉하고 놀러갈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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