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가 왔다
이미 내게는 ‘읽힘’을 고대하는 두 권의 책이 있었으므로
난 잠시 고민에 빠졌다
무얼 먼저 읽어야 하나
선입선출법에 따르면 당연 「기사단장...」이 젤 나중이 맞을 터
허나 세상은 늘 그렇듯이 순리대로 움직이지 않는 법
순리를 거역할 궁리를 아래와 같이 꾀해본다
**아 래**
첫째. 읽어야할책
순서상으로는 「사람이 하늘과 땅을 품는다-훈민정음 해례본」(이하 파랑)이 단연 먼저다
지난 추운 겨울에 내게 왔으니 말이다
매우 추위가 매서웠던 날이라 추측만 할 뿐
그날 눈이 흩날리었는지
계절에 안어울리게 주책스런 비가 흩뿌려졌는지는 기억이 흐릿하다.
그럴 정도로 파랑은 벌써 세 번째 계절을 나와 함께 보내고 있다
이 습도 높은 여름에 이리저리 발에 채이며
아차하면 형형색색의 곰팡이라도 피워제켜
책장을 아예 컬러풀하게 장식할 기색이 또렷하다.
그러니 기사단장이 아니라 기사단장 할애비가 우리집을 침입한다해도
난 마땅히 파랑을 읽어야 하리라
순리상, 의리상.
허나 다시금 상기시키지만 세상은 꼭 순리적이지만은 않아
파랑에게 참으로 오래간만에 던진 눈길을 야박스레 거두운다.
넌 너무 두꺼워!
그 추운 날 새파래져 도착했을 때만 해도
함께 동봉되어 온 오타난 부분을 정리해 논 '정오표'에
' 한글의 노래' 악보의 잘못 인쇄 된 부분이 빠진 것을 발견,
이후 구글 신공을 통해 내가 제일 처음 발견한 것임을 확신한 후에는
얼른 완독해서 멋지게 리뷰를 작성하여 저자에게 메일을 보낼 참이었다
물론 내가 발견한 부분을 찐하게 강조하여
은근히 나의 꼼꼼함을 과시할 참이었다
허나 여전히 그 ‘참’에 머물며 책장 한 장 못 떼고 있는 신세로 전락.
이유는
일단 너무 두텁다는 거
그 두터움속에 작은글씨가 빽빽이도 박혀 있고
게다가 한자까지 많다
보기만해도 파랗게 질려버리는 책 파랑.
.
.
이쯤 되면 누군가 물으리라
근데 왜 샀오?
“살아있는 동안 꼭 알아야 할 최고의 지식임을 느낍니다. 강추합니다.”
이거요 리뷰에 이런 류의 글이 짝 적혀있는 걸 보고 덜컥 주문했지 뭐예요
에효 이넘의 팔랑눈.
둘째, 읽는책
이태준의 「문장강화」(이하 노랑)는
유시민 작가가 극찬을 했다고 해서 몇 달 전에 주문 했다
무려 70여년 전에 씌여진 책으로
우리나라 글쓰기책의 고전으로 불린다고 한다
현재 읽고 있던 중의 책이고,
책장 사이로 삐쭉 삐져나온 수도 고지서가 현재까지의 진도를 말해준다
글쓰기의 방법론에 관한 깊이 있는 해설과 풍부한 예문이
한데 어우러진 수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겠다
다만 예문이 이상, 정지용, 김기림 같은 1930-40년대 작가들의 작품인지라
언어에서 오는 시대적 이질감이 읽는 속도를
상당히 더디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더디던 빠르던 읽던 책이 있으면 마저 읽는 게 상식일 터
허나 세상은 꼭 상식적이지만은 않더라.
셋째, 읽을책
드디어 내게 강림하신
지금 대한민국 서점가를 들썩이게 만들고 있는
하루키의 7년만의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
들썩들썩 기운이 내게까지 전이되어
읽어야할책 읽는책 일제히 일순간에 올스탑시키고
어느새 지금 당장, 즉시, 곧, right now 읽을책으로 등극하였다.
-‘기사단장’의 메타포는 무엇일까
-왜 죽여야만 하는건지
-행여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나 또한 무언가 죽이려들며
눈초리 희번득 거리는 건 아닌지(긴장타시라)
-음악의 선율은 어떻게 이야기와 맞물려 공명의 오르가즘을 선사할 지
-무엇보다 노신사 하루키가 문어체로 건네는
‘말하자면, 이를테면’ 의 요지는 무엇의 현현일지
사뭇 눈길을 잡아끌며 귀 쫑긋하게 하더니
기어이 일상의 반쯤이 바싹 그에게 기울어져 있다.
때는 바야흐로 양기 성한 여름이다.
에어컨 없이 지내는 여름은
진득하게 단어 하나 곱씹어 읽는 정독마저 쉬이 허락치 않는다
냉장고는 10분 간격으로 개폐를 반복하며
강아지들은 길게 내뺀 혓바닥을 널름대며 연신 스팀을 푹푹 뿜어내고 있다
벌겋게 늘어진 널름널름이 자금만치 열 개가 넘으며
그 보다 몇억곱절은 족히 될듯한 털무리들이
끈적끈적 찐득이 되어 피부에 한번 달라붙으면 좀처럼 떨어지질 않는다
이쯤되면 ‘파랑과 노랑 완독’의 목표 달성은
진즉에 널름널름 물건너갔다고 봐야.
사람과의 인연이 그렇듯 책과의 인연도 그리 단순하지는 않으리라
그 먼거리를 이리저리 부대끼어
마침내 내앞에 오롯이 존재를 드러내어 하고자픈 말이 많을 터이고
그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기에 적합한
함초롬한 음기의 시간을 기다리려는 것일 뿐,
절대 둘의 포름에 관해 MUTE 할 생각은 없다
한번 손이 타면 그 가치를 떨이로 후려치는
중고시장에 내다 팔리는 절대 없다는 얘기다
맹세컨대 .
이제까지의 나처럼
포스팅은 일주일에 한 번 올리까 말까하고
그저 밑창 달아빠진 쓰레빠 질질 끌고 여기저기 기웃하며
-표절 판정은 신중히 해야 허. 암 그렇고 말고
-이 집 대문사진 바꾸는 건 어떰?
-아 뉘집 갠 지 참 귀엽네 쓰담쓰담
-어 뉴비, 드루와 드루와. 어려워 할 거 엄써
마치 매크로 돌리듯 행해지는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행위를 오늘도 이어간다면
기사 단장 그닥 별 재미없는 거. 나의 관심 밖인 거
반면 스팀잇 그 어디에도
당분간 나의 쓰레빠 가래 끓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면
기사단장 재미진 거, 엄청 재미진 거
나는 그렇게 사인과 시그널을 보내리라
며칠 후 어딘선가 불쑥 나타나 뜬금없이
-너님 뭐하삼(쭈뼛쭈뼛)
-그때 왜 기사단장, 그 왜 하루키꺼 샀다 하지 않았삼
-아직 다 안 읽었씀?
이러고 다니면 필시 같이 리뷰 떨고 싶은 거라
-어머 그렇게 읽었어요. 와 대박!(손뼉치며)
-나도 거기거 소름돋았는데
-우와 어쩜 이리 똑같을 수가(눈이 휘둥그래지며)
다소 호들갑스러워도 좋겠다
좀 오바스러워도 좋겠다
마치 오랜 문학적 동지를 만난 듯 그리해도 좋겠다.
다음은 하루키의 인터뷰중 일부
무라카미는 '이야기의 힘'에 대해 "제 정의에 따르면
이야기란 머리로 생각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몸속에서 자연히 흘러나오는, 넘쳐나는 것"이라며
"의미나 정의, 무슨무슨 주의(主義) 같은 것을 아득하게 넘어선 것이고,
어떤 경우에는 이성이나 선악의 개념마저 초월하기도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7/18/20170718001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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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참 재밌게 잘 쓰시네요. 작가신가요? ^^
저도 사놓고 안 읽거나, 미처 다 못 읽거나, 마음으로만 다짐하고 있는 책들이 많네요. 책이란 게 은근 '수집품'적인 매력도 있어서 말입니다. ㅋ 안 읽고도 그저 쌓여 있는 것만으로 쬐~끔 좋은 거죠. ㅎㅎ
전 '기사단장 죽이기'는 안 볼 생각입니다. 이유인 즉, 제가 요즘 쓰고 있는 소설 제목이 '국회의원 죽이기'인데 하루키 신작땜시 따라쟁이로 오해받게 생겼거든요. >.<;;; 하루키를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ㅠ.ㅠ
잘 보고 팔로우하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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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게 읽으셨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작가는 아닙니다 오해 감사해요 ㅎㅎ
‘국회의원 죽이기’라 듣기만 해도 속시원해지는 제목이네요
출간되면 꼭 알려주세요. 무조건 리스팀에 무조건 리뷰 약속드립니다
인생 압니까. 작가님 저서가 결과적으로 ‘하루키 죽이기’가 될지...
모쪼록 건필과 건살(?)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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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잘 쓰신다고 느꼈습니다. 문장을 감칠맛 있게 쓰세요. 작가하셔도 충분할 거라고 믿어요. ^^
감사합니다. 즐거운 휴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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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찬의 말씀입니다.
응원의 댓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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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참 잘 쓰시네요 ^^
추천해 주신 책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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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려의 댓글 감사 드립니다.
하시는 웹개발에서 대박 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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님에게서는 왠지 다년간의 작가 필이 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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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싯적 작가의 꿈을 가진적은 있더랬죠
지가 쪼매만 더 바지런했어도 우리나라 문학계 판도가 ....ㅋㅋ
농담이구요
그나저나 양목님 블로그 글들 내공의 깊이가 상당하네요
부러 드러내지 않아도 도인의 삘이 무울씬~~
댓글 감사하오며
휴일, 행복하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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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직 하루키를 읽어보지 못했어요!! 곧 맛을 보려구요ㅋㅋㅋ 취향이 조금 갈린다고 하더라고요~~ 잘 읽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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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거 없는 느낌이랄까
뒷부분에 가서 다소 맥빠지게 끝나더라구요
기대보다 좀 그랬답니다.
사람마다 감상은 다 다른거니까
reconteur43님께는 아주 특별한 책이었으면 해요
방문과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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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해주시는 책 중에 읽은것이 없네요 ㅠㅠ 참고해서 담번에 꼭 읽어봐야겟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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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있으면
책한편, 영화한편 맘대로 보기 힘들죠
저도 저렇게 소개만 해놓았지 한달여가 지난 지금까지도 다 못 읽었답니다
비온 후 말간 하늘이 참 보기 좋아요
잠시래도 음미하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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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잘 봤습니다.
이넘의 미췬 스팀 7일 제한은 이럴때 너무 승질나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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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책은.. 재미난걸 먼저 보는거죠~ ^^
팔로잉하고가요~ ^^/ 보팅도 하고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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