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은 아니었겠지만 아마도 처음이었을 그 기네스

in kr •  7 years ago 

지나온 회사 중에서 인사권을 가지고 흔들 수 있었던 곳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뭔가 좀 창피하게 느껴지는 경력이라 그곳에서의 직급이나 활동 등은 내 이력서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이것은 근성 있고 쓸만한 사람인가? 하고 뽑았다가 낭패를 봤던 한 친구에 대한 이야기다.
(언제나 그렇듯 필요한 인재人才는 모자라고, 인재人祸는 넘쳐나기 때문에...)


이력서

키는 188인지 뭔지... 같이 서 있으면 그냥 쳐다보기 불편했던 그 친구의 이력서에는
두 차례에 걸친 해외 인턴십 경험과 아마추어 복싱 준우승 타이틀이 있었다.

[해외 인턴십 2회]
해외 인턴십 의 경우는.... 가서 놀고만 왔을 확률이 90% 이상이라 별로 믿지는 않았다.
그래도 개발자 중에는 영어 포비아가 많기 때문에 그것만 아니면 되겠지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도 사실이다.

대기업도 아니고, 중소기업도 아닌, '영세한 기업'(을 포장해서 벤처나 스타트업으로 부르자)에 이력서를 제출하는 사람 중에서 영어 가능자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애초에 영어를 엄청 잘한다면 개발자를 할 필요가 없고, 영어 잘하는 개발자 또한 한국에 있을 이유가 없다.

[복싱]
준우승이라니... 복싱을 그렇게 오래 할 정도면 끈기도 있겠지? 하고 생각했다.
개발 일이란 것이 엉덩이가 무거워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이력서 내용 자체로는 괜찮아 보였다.
(뭔들 안 그렇겠냐만...)

복싱은커녕 그때까지 헬스장 한번 제대로 다녀본 적 없는 주제에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기억

생각해보면 그냥 키 큰 직원을 한번 부려보고 싶어서 뽑았던가? 하는 순간도 많았다.
나보다 머리 하나 반(?) 정도 큰 남자 어른이 쫄쫄거리고 따라다니는 모습을 보며 어떤 우월감에 사로잡혔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병아리 같았다.

키가 180이 넘는데도 그냥 오늘 저녁이든 내일 아침이든 언제고 콱 죽어버릴지 모르겠다고 생각될 정도로 약해빠진 친구였다.

똑같은 내용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알려주는 중에도 일 처리를 못 하기에 그 친구가 설명을 들으며 열심히 적었던 노트를 대신 펼쳐주며 고함을 지르기도 했었다.

"여기 적힌 메모들은 그냥 나한테 잘 보이려고 시늉만 했던 거냐?" 라든가
"한국말로 친절하게 설명해줘도 알아듣지 못하는 놈이 해외 취업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서 뻘짓만 하고 있으면 되겠냐! 영어로 설명하면 네가 이해하겠냐?"고 했던 거 같기도 하다.

영어권 국가에 개발자로 취업하고 싶다던 그가 Game of Thrones 영문판 책을 출퇴근 길에 들고 다니는 것을 봤었기 때문에 더 화가 치밀어 올라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그 드라마를 최근까지 안 봤던 것일지도..)

아마추어 복싱 준우승자(feat. 180cm 넘음)는 눈물을 찔찔 짜며 죄송합니다만 연신 내뱉었다.

'이게 눈물을 보일 만한 일인가?'하고 내 머릿속에서는 수천 줄의 에러 메시지가 쓰이고 있었다.

자신이 예상했던 직장에서의 모습과 현실의 괴리감 속에서 힘들었을 수도 있지...
어쩌면 우는 시늉을 하는 중에 당황한 내 모습을 보고 쾌재를 부르고 있었을지도.. ㅎ
아니면 진짜 서럽고 답답해서 울었는지도 모르겠다.

암튼, 그랬던 그 친구가 첫 월급을 받자마자 나에게 술을 사겠다고 했다.
술자리를 싫어해서 회사 회식도 다 없앴다니까(그 당시 나의 권력이란-ㅅ-) 얘는 그게 농담인 줄 알았으려나?

기네스?

술 싫어하는 직장 상사를 고집스럽게 끌고 간 곳은 또 분수에도 맞지 않는 Bar였다.

거기에서 당당하게 기네스를 시키던 그 친구를 보며
'지금 얘 월급으로 이걸 몇 병이나 살 수 있더라?', '해외에서 술 마시는 것만 배웠군...', '조만간 그만 나오라고 해야겠구먼...'
요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내 모습이 지금 생각해도 처량하고 안타깝다.-_-

두 병 정도 마시다가 역시이건 아닌 거 같아 여기 술값으로는 부모님 속옷이나 사드리라고 하고 내 돈으로 계산하고 나왔었다.
@afinesword님 정도로 술에 애정이나 지식이 있었다면 맛나게 마셨을 텐데 병째로 마신 기네스는 비싸기만 하고 맛도 없었다.
"나 좀 잘 봐주십시오." 하고 술을 사줘도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그 친구가 배웠길 바란다.

결국, 그 친구는 3달을 못 버티고 스스로 회사를 뛰쳐나갔다.
어찌 나갔는지는 기억이 없다.

다시 수많은 이력서를 검토하고 면접을 봐야 했기에 귀찮음이 있었을 뿐 별다른 감상은 없었던 거 같다.

지금 마시는 기네스

[술] 맥주가 사람을 만든다 https://steemit.com/kr/@afinesword/axqnt

‘300만개의 거품이 만드는 천상의 부드러움’이라고 흑맥주 기네스 광고에 쓰여 있다. 진짜 300만개인지 내 알 도리가 없으나, 천상의 부드러움은 익히 마셔 잘 안다.

칼님(@afinesword) 글을 읽고 나니 기네스가 맛있다.
종종 사다가 마실 거 같다.


덧, 김보통 에세이 '어른이 된다는 서글픈 일'에서 읽었던 '동메달의 비밀' 내용을 생각해보니, 그의 아마추어 복싱 준우승 타이틀도 참가자가 2~3명뿐이 없어서 가능했을 수 있겠구나 싶기도 하다.

덧2, 4~5년 후에 몇다리 건너 들은 소식으로는 그가 원하는 대로 해외 어딘가에 취업을 했다고 한다. 이제는 울지 않기를.... -ㅅ-;;

덧3, 여행은 잘 다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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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덩치로 눈물 흘릴거 생각하니 ㅠ-ㅠ
아흑ㅠㅠ
이제는 울지 않기를. ㅋㅋㅋㅋㅋㅋㅋㅋ

러브흠님 어서오셔요. ㅋㅋㅋ

인사관리가 힘들다는 점을 보여주는 포스팅이네요. 해외에서 바라는 인재상과 한국에서 바라는 인재상이 다른걸가요? 해외 인재상이 한국에 오면 적응이 어려운걸가요?

모르죠...

바에서 기네스를 시키며 자기도 이렇게 할줄 아는 사람이라고 어필하고 싶었던 걸까요?ㅎ 저도 기네스는 아직 그다지 맛있는지는 모르겠더라구요~ 덧1에 동메달의 비밀 내용을 보고 아~하고 무릎을 탁 쳤습니다 ㅎㅎ

기네스의 맛을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르죠...
저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요. ㅎ

지금은 맛나게 마십니다. ㅋ

크..글보다가 좀 짜증났어요..너무 꼰대같아요 솔직히..

댓글을 두서없이 다시네요.

그리고 저 완전 꼰대 맞습니다.
'같아요'라뇨.

인사가 만사라는데 잘할 줄 알고 뽑아도 예상 외이기도 해서 어렵네요. 제게 인사권이 주어진다면 거절하고 싶을 거 같아요.

음... 어려운 문제죠. ㅎㅎ
신입의 경우 완전히 사람에 투자하는 것이니까요.
그래도 직접 뽑으면 대처가 가능한데... 임원진이 어디서 막 주워오면 답도 없어요.ㅎㅎ

여행 잘 다녀오셧군요.
누군가의 인사적 조치 및 권한이 있다는 것은 참 어려운 것 같더라고요.

@jaytop님 안녕하세요.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는거겠죠.

예전에, 친구들과 장사할때.. 사람 구하는게 일이었습니다. 정말 면접도 많이보고, 이력서도 많이 보고..했는데, 번지르르한 이력서보다, 몇줄 안되는 이력서의 사람이 더 성실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인사에 정답은 없는것 같습니다. 면접때, 최대한 잘 뽑는수밖에는요. ㅎㅎ

@zzings님 안녕하세요.
제 경험상 스펙 보다는 이력서에 보여준 성의(?) 정도가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뭐.. 저야 이제 그런 일과는 관련이 없어졌지만 말입니다. (백수만세!)

현실성은 좀 없지만..
대기업처럼 트레이닝 과정이나 멘토링 프로그램이 없는 영세(ㅎㅎ)한 회사의 경우
빠르게 뽑아서 빠르게 자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저는 관리자의 입장 보다는 신입 사원의 마음이 가깝게 느껴지네요- 분명히 답답한데 뭔가 불쌍한 건 왜일까요..ㅠㅠ 이래놓고 제가 상사였으면 더 화를 냈을 지도...

ㅎㅎ 그럴 수도 있죠.

왜 뽑아놓고보면 저런 사람들이 많은걸까요...

아마추어 복싱의 경우에는 혼자 출전해서 금메달 따는 경우도 봤습니다만...

음 ㅋㅋ

맛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의 준우승은 2명 참가에 준우승이었을까요...

글세요. ㅎㅎ
개인사는 잘 안 물어보는 편이라.. ㅋ

이런 일이 있으셨군요... 흠

ㅎㅎ 오래된 일이죠.

그나저나 다 흔들린 캐리어 사진을 올릴때부터 여행사진은 없을지도 모르겠는데 ...라며 생각했는데 진짜 없는건가요 ㅋㅋㅋ 사진보면 부러우면서도 어디갔다왔나 뭐먹었나 궁금한건 왠 오지랖이죠

ㅋㅋㅋㅋㅋ 별 거 없었습니다.

저는 지원자들 이력서 볼때 자소서부터 보게되요.
어디서 베껴왔는지..얼마나 열심히 썼는지...
자소설이라 할지라도 말이죠..
진짜 단 한줄써놓은 사람들보면...참....
그나저나 기네스 땡기네요...ㅜㅠ

ㅎㅎ 이제는 제 이력서나 잘 써야죠.

사람뽑는건 정말 어려운일같아요 ㅜㅜ
사실 이력서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거 자체가 어려울거 같아요ㅜ
그래하늘님 여행은 즐겁게 하시고 오셨나요? ㅎㅎㅎ
비가 계속 내리는데 감기조심하세요^^

넵.
잘 다녀왔습니다.

때론 스펙이 출중한 사람을 채용되었을때 그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때가 있어요.
스펙따로 일 능력따로 일때를 겪어봐서...

ㅎㅎ
영어 전공자도 영어를 못하는 것이 비일비재 하니까요.

왕좌의 게임 영문판에서 빵터지고 말았습니다 ㅋㅋㅋㅋ
어째서 영어를 공부하고 싶으면서 그런 고증 단어가 득실득실할 중세 판타지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 말을 저도 해줬지요. ㅎㅎ
외국인이 한국어 배울때 사극으로 배우면 어떤 일이 생길 거 같냐고 ㅎㅎ

아. 그런 의미였군요. 본문 보고는 이해못함 ㅋㅋ

인사권자의 서글픈 현실이자 비애군요. ㅎ

다 지나간 일이니 뭐.. ㅎㅎ

그래도 원하는 곳에 취업을 해서 다행이네요. 저도 직원 몇 부릴땐 면접볼때하고 달라서 당황했던 적이 있었는데요, 아마 이글에서처럼 혼자만의 착오가 있었던것 같기도 합니다. 갑자기 생각났는데,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직원채용의 이유가 이력서상 특기란에 '달리기'라고 써 있어서였던게 생각나네요 ㅋㅋㅋ

밍기적 거리다가는 한국에서 어떤 꼴을 당하는지 직접 했으니까요.
독이 됐을지 약이 됐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그것도 다 경험이니 뭐..ㅎㅎ

드라마 미생 보듯이 글을 읽었네요~ ㅎㅎㅎ
사회생활 진짜 만만치 않죠^^
낮은 위치에 있으면 자기가 낮은 위치라서 그거대로 서럽고, 높은 위치에 있으면 그 책임감 때문에 머리가 깨질듯 아프고~ 그런 것 같네요 ㅠㅠ

헐.... 미생이란 이름을 붙여주시니 좀 ㅋㅋㅋ 부끄러운데요.

아.. 우여곡절이네요. 젊은 친구와 같이 일했던 환님에게나 그 젊은 친구에게도 노곤하지만 많은 경험과 배움을 줫을것같아요. ^^

넵 ㅎㅎ; 돈도 돈이고.... 우여곡절이 많았던 날들 이었습니다.ㅎㅎ

인사권이란 것은 직장에서 관리자로써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권한 중에 하나입니다. 또한 어디에나 그렇지만 권한이 있으면 책임도 따르는 것이구요. 사장이 아니라면 엉뚱한 사람을 뽑아 횡 나가버리는 것도 나의 능력의 부족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백 명의 그룹면접을 본 적도 있고 점수를 메긴 적도 있습니다. 저의 경우는 집중하는 능력을 우선으로 보는데...한 예로 한 친구가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다녀왔고 성가족 성당을 다녀왔다고 해서 물어보았죠,, 그 성당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이 무엇이냐? 였습니다. 결론은 별 느낀 것이 없었다는 것이었는데...저는 점수를 주지 않았습니다. 작은 것을 놓치면 큰 것도 놓칠수 있기에...물론 저의 판단은 주관적이라 면접에는 적합하지 않았지만 10년을 해보니 나름대로의 직관이 생깁니다. 인사가 만사다 라는 말은 언제나 어디서나 진리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 부족한 포스트를 한번 올려봅니다. 도움이 되시길,,,
https://busy.org/@bigman70/5zu3wq

ㅎㅎ 감사합니다.

그래도 그가 원하는대로 해외에 취업을 했군요.
해외도 해외 나름이지만 말입니다.ㅎㅎ
그에게는 힘들었 던 그 경험이 약이 되었을거라고 생각합니다.

약이 되었길 바랍니다. ㅎㅎ

그래하늘님 왠지 왕좌의 게임과 기네스 맥주에는 트라우마가 있을 듯 하네요. ^^
덧1) 여행은 어디로 다녀오셨나요? ^^

그 트라우마... 6~7년 만에 극복중입니다. ㅋㅋㅋ
여행은 뭐... 다녀온지 안다녀온지 모르게 다녀와서 걍 비밀입니다. ㅎㅎ

너무나 좋아하는 2가지 왕좌의 게임과 기네스에 이런 사연이.ㅎㅎ
기네스는 컵에 따라마셔야 제맛이죠.ㅎㅎ
한번씩 맥주 딱 한캔이라고 할 때 정말 좋은 거 같아요.
사람을 글과 몇번의 인상으로 알아야한다는 게 참 인사라는 직업의 어려움인 거 같네요.
여독 잘 푸시길 바래요~

@feyee95님 안녕하세요.
지금은 나름 좋아라 합니다.
'왕좌의 게임'이랑 '기네스'.... 말이죠. ㅋㅋㅋ
댓글 감사합니다. ㅎㅎ

음성지원 어쩔

헐...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 전 기네스 생맥 처음 먹었을때 맥주가 이렇게 부드럽고 탄산이 없어도 되는건지 의아했었지요. ㅋㅋ
병아리 같던 그 직원은 이제 삐약대지 않겠네요.
무사귀국 축하드립니다 ㅋㅋ

역시 술을 좀 아시는 유난님은 맛나게 드셨군요.
지금은 맛있게 마시지만 ㅋㅋ 그 전까지 기네스가 맛있는지 전혀 모르고 살았습니다. ㅎㅎ

ㅋㅋㅋㅋ 아뇨 맛이 이상해서 놀랬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환님의 글을 읽으면서 한때 눈물바람으로 회사를 다녔던 기억과 함께 뜨끔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덧2의 말씀처럼 이제 그분이 해외에서 울지 않기를 저도 살짝 바래봅니다.....

@leesongyi님 안녕하세요.
눈물바람.....ㅠ 아이고... 그런 기억은 맥주 한잔과 함께 훌훌 털어버리시죠. ㅎㅎ
그 친구는 뭐 잘 살고 있을 겁니다. ㅎㅎ ㅎㅎㅎ

기네스...... 일반 맥주는 맹맹해서 잘 못마시는 제게 기네스는 사랑입니다 ㅎ 런던 펍에서 종종 기네스를 마시곤 했지만, 아일랜드 기네스 공장 투어 말미에 마신, 클로버 모양의 크림 아트가 그려진 기네스는 평생 잊지 못할 맛이었습니다. 난생 처음 해외에서 무언가를 그토록 가지고 오고 싶었던 적은 처음이었네요. 저도 간만에 추억에 젖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