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바람의 나날 11

in kr •  6 years ago 

"자네 하겠나?”

어둠에 묻힌 여의도 고수부지에 앉아 주먹으로 턱을 괴고 있었다. 어둠은 물살의 고운 결을 촘촘하게 주름잡으며 내 어깨 위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나는 무너져 내리는 어둠의 파편에 몸을 그대로 내맡기고 있었다. 어둠의 무게보다 더 무거운 침묵이 내 가슴을 짓눌렀다.

“왜? 하기 싫은가?”

장현태는 줄담배를 피웠다. 장 부장 또한 벗어나기 힘든 고립의 한가운데에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사면초가에 둘러싸인 항우의 심정이 또한 그러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젊은이에게 죽음 이상의 고통을 안겨줄 수밖에 없는 그의 처지가 자살을 결심했을 히틀러의 처량한 모습과 비슷할 거라는 짐작을 했다.

언뜻 들여다 본 시계는 새벽 네 시를 조금 지나고 있었다. 그 시계는 장 부장이 홍콩 출장을 갔다 오면서 나와 자혜에게 선물로 준 커플시계였다.

오늘부터 시작될 긴 여행을 위해 자혜와 짐을 챙기고 나서 바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천종수만 남기고 레스토랑에서 먼저 자리를 떴던 장현태 부장이 느닷없이 전화를 걸어 온 것이었다. 그때가 밤 열두 시가 다 되었을 때였다.

“잠깐 나와 줄 수 있을까?”

장 부장이 그렇게 늦은 시각에 정중하게 전화를 해 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장 부장은 늘 예의바른 상관이었고, 그런 점 하나만으로도 장 부장에게 존경심과 경외심을 품고 있었다.

어쨌든 나는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장 부장이 기다리고 있겠다는 여의도 고수부지로 차를 몰고 나온 것이다.

장 부장은 상관인 윤민호 회장을 만나고 왔다는 것이다. 대통령의 손아래 처남인 윤민호가 장 부장을 밀고 있다는 것은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 장 부장은 나를 만나자마자 윤민호 회장의 뜻을 전해 주었다. 그게 바로 한 시간 전이었다.

“내가 윤민호 회장을 만난 이야기를 들려줄 테니까, 듣고 결정해도 늦지 않을 거야. 물론 급한 일이지만 자네도 돌아가는 상황은 알아야 할 테니까.”

그렇게 뜸을 들이며 장 부장이 들려준 이야기는 이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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