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바람의 나날 13

in kr •  6 years ago 

"만약 제가 못 하겠다고 한다면……."

여전히 강을 내려다보면서 그렇게 물었다. 내 목소리는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것처럼 건조하고 푸석푸석했다. 강물에 비치는 차들의 전조등이 슬프도록 아름답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불빛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것은 내가 어느 쪽을 선택하더라도 결국은 아웃사이더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가슴 깊이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말 안 된 일이지만, 마이클 로빈이 끝내 죽었어. 이곳으로 달려오다가 본부로부터 연락을 받았는데, 한 시간 전에 마이클 로빈이 사망했다고…….”

나는 강물이 갑자기 솟구쳐 오르는 것 같은 아찔한 현기증을 느꼈다. 그토록 염려하던 살인을 드디어 저지르고 말았다는 낭패감에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살인자가 되었다는 절박함은 나를 더욱 벼랑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건너편의 불빛이 가물거리며 뿌옇게 사위어 가고 있었다. 앉은 자세 그대로 강으로 곧장 떨어질 것처럼 몸이 자꾸 아래로 가라앉았다. 갑자기 강물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되고 말았어…….”

장 부장의 목소리는 긴 노가 되어 강물을 휘휘 저어내고 있었다. 어찌 저어내는 것이 강물뿐이랴!

장 부장의 한탄은 내가 살아온 그 시간의 앙금들을 걷어 올리고 있었다. 이미 오랜 파편처럼 단단한 결정체가 되어 나의 가슴 한편을 지그시 찔러오는 그런 침전물들을.

"그래도 제가 할 수 없다고 한다면…….”

나는 말이 떨려나올까 봐 어금니를 한참 동안 악다문 다음 입을 열었다. 그래도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더는 강요하지는 않겠네. 굳이 자네가 못하겠다면 나라도 해야지.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지 않은가?”

장 부장의 말대로 이대로 끝이 난다면 너무 억울해 울다가 미쳐버릴 것 같았다. 이대로 물러선다면 어쩌면 영영 폐인이 되어 온 세상을 떠돌며 헛소리나 하면서 살게 될 것만 같았다. 살인자로 낙인찍힌 가슴을 안고 남은 생을 자책과 고통 속에 살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이클 로빈이 죽은 지금,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이제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기 다 틀렸다는 허망함이 나를 까마득한 수렁으로 밀어뜨리고 있었다. 처녀가 순결을 잃은 뒤의 심정이 이런 것일까? 첫 몽정을 하고 난 뒤의 이상한 허탈감과도 비슷했다. 궤도에서 이탈한 열차가 땅 위를 미끄러지며 내는 마찰음이 어느새 나의 귓가에 가득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나는 장 부장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렇게 말해버리고 말았다. 어차피 강물을 쳐다보고 있어 봐야 강물이 이 일을 대신해주지는 못할 것이다. 강물 위를 스쳐 지나가는 바람도 그저 무심한 방관자일 뿐이다. 아무도 나를 대신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자, 아는 그 모든 것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다.

"고맙네. 그리고 미안하네.”

장 부장이 손을 뻗쳐 내 어깨를 한 번 잡았다가 놓았다.

나는 장 부장을 쳐다보며 씩 웃었다. 한번 웃고 나자, 마음이 이상하게 편안해졌다. 자리에서 일어서며 들고 있던 일회용 라이터를 강물 위로 휙 집어던졌다. 라이터는 아프리카 영양처럼 강물 위를 두어 번 튀어 오르며 물수제비를 뜨더니 어둠이 물던 강물 속으로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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