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바람의 나날 12

in kr •  6 years ago 

장현태는 레스토랑을 나오자, 곧바로 연희동으로 차를 몰았다. 이미 밤 열 시를 넘긴 시각이라서 그런지 거리는 비교적 한산했다. 그는 강변도로를 타고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굳이 이렇게 급하게 서둘러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마음이 초조한 탓인지 경적을 연신 눌러대며 앞서 가던 차들을 계속해서 추월했다.

차가 연희동 골목길로 접어들자, 골목 입구에서 무전기를 들고 경계 중이던 의경들이 장현태의 차를 막아섰다. 대통령의 본가가 있고, 장관들이며 정부 고위관리들이 많이 사는 관계로 이 동네는 늘 경계가 삼엄했다. 차창을 여니, 의경의 손에 들린 무전기에서 나오는 소음이 직직거리며 대화를 방해했다.

"어디 가십니까?"

"수고한다. 나, 정보부 장현태 부장이다. 지금 윤 회장님 댁에 가는 길이다."

"됐습니다. 통과하십시오.“

플래시로 장현태가 내민 통행증을 건성으로 살핀 의경이 그렇게 말하며 통행증을 되돌려주었다. 의경은 거수경례를 하더니 뒤로 한 발짝 물러섰다. 장현태는 창문을 올리며 답례로 손을 한번 흔들어 준 다음 차를 출발시켰다.

윤 회장이란 다름 아닌, 대통령의 처남인 윤민호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윤민호는 자신의 누나가 영부인이 되기 전에는 그저 평범한 육군 하사관에 지나지 않았다. 길을 걷다가 발에 채여 뒹구는 돌멩이처럼 아무도 윤민호를 눈 여겨 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매형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는 말이다.

하지만 매형이 대통령이 되면서 하사관 생활을 그만두고 시작한 사업이 엄청난 순익을 남기며 재계의 돌풍으로 떠올랐다. 하긴 대통령의 하나밖에 없는 처남이니, 윤민호의 주위에 사람들이 꼬이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사업에 손을 대더라도 절대 망할 리가 없는 것이다. 또한 영부인이 하나뿐인 남동생을 뒤에서 적극 밀어주고 있다는 것은 눈과 귀가 달린 사람이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장현태가 윤민호와 인연을 맺게 된 것도 군대에서였다. 그 당시 지금의 대통령과 절친한 사이였던 연대장이 바로 장현태의 직속상관이었는데, 친구의 처남을 잘 좀 봐주라는 당부를 받고 윤민호에게 많은 관심을 기울였었다.

그때는 윤민호가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오르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그저 사람이 성실하고 예의가 발라서 정이 가는 쪽이었다. 하지만 운명호의 매형이 대통령이 되고 나자, 오히려 위치가 뒤집혀 장현태가 윤민호의 영향력 아래에 놓인 꼴이었다. 사실 정보 이 계열이 태동할 수 있었던 것도 영부인을 통한 윤민호의 입김이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그는 윤민호 앞에서는 알아서 길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윤민호는 집을 찾아오는 손님들과 조용히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일 층 구석진 곳에 마련해놓은 접견실에 앉아 있었다. 장현태는 늘 이곳에서 윤민호를 만났다. 접견실에는 아무리 악을 쓰고 벽을 두들겨도 그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방음시설이 갖춰져 있다고 언젠가 윤민호가 자랑삼아 말한 적이 있었다.

“산 사람의 살을 발라내도 모를 거야.”

윤민호는 그런 섬뜩한 농담까지 했었다.

장현태는 망설이지 않고 접견실 문을 밀고 들어갔다. 소파에 깊숙이 앉아 있는 윤 회장의 표정은 사뭇 침울했다. 장현태는 윤민호의 표정을 보고 이제 자신이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너고 말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기 주위로 뾰족한 가시나무가 쑥쑥 자라서 그를 에워싸는 환영이 그렇지 않아도 흐릿한 눈앞을 어른거렸다.

"회장님!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장 부장! 술 한 잔 하시겠소?"

"아닙니다. 지금 같이 일했던 직원들과 한 잔 마시고 오는 길입니다."

"정말 문제가 심각해요. 이제 대통령한테까지 보고가 올라갔답니다."

"대통령께서는?"

"그야! 펄쩍 뛰셨죠. 무슨 일들을 그렇게 하느냐고 보통 역정을 내신 게 아니랍디다."

"그럼 여기서 끝나는 겁니까?"

"음……."

"다른 방도는 없습니까?“

윤 회장은 눈을 찔끔 감고 머리를 소파에 기댔다. 윤 회장은 고뇌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윤민호는 한동안 눈을 감은 채, 입을 다물고 있다가 눈을 번쩍 떴다. 분노 때문인지 윤민호의 눈에서 파랗게 불꽃이 이는 것 같았다.

"장 부장! 이제 남은 한 가지 방법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무슨 얘긴지 잘 알겠지요?"

"그럼?"

"그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 것 같아요. 이젠 먹느냐, 먹히느냐, 둘 중의 하나요. 할 수 있겠소? 그 젊은이가 그걸 하려고 하겠어요?"

"흠…….“

장 부장은 신음을 내뱉었다. 사실 장현태는 여기서 일을 더 벌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밀려난다는 게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윤 회장과 함께 얼마나 끈질기게 영부인을 설득해서 만든 정보부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지금까지 제대로 잠 한번 편히 못 자며 모든 것을 바쳐 이루었던 정보부였다.

"하겠습니다. 반드시 합니다.“

장현태는 그렇게 뇌까리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윤 회장도 따라 일어났다. 윤 회장과 장현태는 서로 손을 마주 잡았다. 윤 회장이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쉽지는 않을 거요. 조심해서 처리하시오. 장 부장뿐 아니라, 내 목도 걸려 있으니까."

"염려 마십시오. 그럴 리야 없겠지만, 설사 잘못 된다고 해도 회장님께 누를 끼치는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장현태는 단호히 윤 회장의 말을 가로막으며, 잡은 두 손에 힘을 주었다. 윤 회장의 손을 놓고 돌아서며, 장현태는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너한테 당하지만은 않는다!’

장현태는 한 사내의 얼굴을 떠올리며 등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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