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파랑새 11

in kr •  6 years ago 

“네가 아파하니까, 내가 너무 미안해! 그리고 내가 너한테 그런 존재였다는 게 진심으로 고마워.”

미림이 그 말을 하는 순간, 찻집 안에 슬픈 음악이 흘러나왔고, 나는 괜히 슬퍼졌다. 마치 임종을 앞둔 노인이 마지막 유언을 되뇌듯, 나는 미림에게 남기고 싶은 짧지만 강렬한 언어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마음먹고 쓰면 한 번도 막히지 않았던 나의 언어들이 그때부터 미쳐서 날뛰기 시작했는데, 나는 번잡한 시장 한가운데 버려진 아이처럼 어쩌지 못하고 혼란에 혼란을 거듭했다.

“이 노래 가슴에 너무 와 닿는다. 우리 노래 같지 않니?”

그렇게 미림은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노래 한 소절로 본인을 찾아가는 미림을 보며, 나는 내가 가질 수 없는 걸 가지려고 해서 이렇게 힘들다는 생각을 했다.

“갖고 싶어!”

항상 생각이 과하면 밖으로 표출이 되게 마련이고, 그때는 이미 주워 담을 수 없는 흘린 물이 되고 만다.

“가질 수 없는데, 갖고 싶은 게 있다고. 이게 집착일까?”

나는 내가 정말 속물 같다는 생각을 하며 미림에게 그렇게 물었다.

“아마 너는 네가 갖고 싶을 걸 가질 수 있을 거야. 너는 점점 더 좋은 소설을 쓸 거고, 결국에는 소설가로 성공할 거고, 그 성공이 너에게 모든 걸 가져다 줄 거야. 넌 나 같은 여자 정도는 쉽게 가질 수 있을 거야. 너는 충분히 그럴 만한 자격이 있어.”

나는 미림의 말을 들고 곱씹으며, 다시 회상하면서 그녀가 지금 하고 있는 말의 진심을 꼼꼼히 유추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미림의 입을 통해 반전의 말이 곧 이어질 거라고 결론지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한 번도 내가 원하는 여자 짝을 내 옆자리에 앉혀 본 적이 없었고, 짝이 전학을 가는 바람에 심지어 짝이 없이 혼자 앉아서 한 학기를 보낸 적도 있었다. 한 번도 내가 소원했고 갈망했던 것들이 내 곁에 머물지 못했고, 나는 언제나 풀죽은 외톨이였다.

“우리...”

미림이 이렇게 말을 끝맺지 못하고 여운을 남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나는 갑자기 긴장이 되었다.

‘이젠 친구조차도 못 되나 보다!’

내가 그렇게 난리를 쳤는데도 미림이 나를 불렀을 때, 나는 꺼져버린 희망의 불씨를 되살렸고, 불씨로 말미암아 적당히 우쭐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런 나의 흥분상태를 간단히 사그라들게 만드는 미림의 머뭇거림에 나도 또 작아지고 있었다.

“가볍게 시작해 볼까?”

미림이 그 말을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단단히 조이고 있던 나사 하나가 툭 풀려나면서 도미노 게임이 시작된 것처럼 나는 어깨까지 들썩이며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그냥 미림이 나를 용서했다는 안도감이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은 탕자의 모습이 되어 격한 감정을 쏟아놓고 있었다.

“바보! 내가 왜 좋아? 세상에 너를 좋아하는 소녀들이 얼마나 많은데... 정말 바보야!”

바보인들 등신들 또 어떠랴!

내 손으로 감히 미림의 옷깃 한 자락마저 못 만질지라도 내 곁에 그녀만 있어준다면 허깨비로 살아도 좋을 것 같았다.

내 눈물을 닦아주는 미림의 손끝이 엄마 젖무덤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내가 너무 순수해져서 아이가 되는 것 같은 환상에 빠져들었다.

“사랑해...”

미림이 들었는지 안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오랫동안 참고 참았던 그 말을 하고, 내가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문고리를 잡아당겼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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