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움은 오래 전에 시작되었다 승산이 희박한 전쟁 속 내가 있다 다른 이의 시와 소설을 읽지 않은 지 오랜 시간이 흘러 타인이 그려낸 활자에 몹시 목마르다 죽을 만큼 그렇게 메말라가는 감성을 대신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예능과 영화 격렬한 움직임만이 지친 정신을 두드리는 마지막 생명줄
부단한 학습에 의해 베끼고 변조하면서 새롭게 탄생하는 글들의 집합체 그 안에서 울고 웃었지만 한껏 만족하지 못했다 깊은 어둠 속으로 더듬어가는 어설픈 촉수만이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 이길 수 없었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은 청춘을 흘려보내고 돌아온 글밭에 내 푸름을 받치리라
난무하는 영상 속 날이 선 감성은 날카로운 지성으로 순간을 포착하고 상상력을 더해 끈적끈적한 반죽을 으깨 활자로 된 석고상으로 변하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흩어진 갈피는 끊임없는 자책으로 되돌아온다 그래도 쓰자 여전히 반항하고 있다면 시대와의 불화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나를 내던져 버릴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