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바람의 나날 9

in kr •  7 years ago 

떠오르는 태양을 육안으로 바라보며 맥주를 마신다. 맥주 하얀 거품이 미끄러지듯 부드럽게 식도를 타고 넘어간다.

소정은 마치 일출을 처음 보는 아이처럼 연신 탄성을 자아낸다. 그녀의 물거품 같은 탄성을 타고 갈매기들이 끼룩끼룩 울고, 그 울음에 섞여 무적이 코끼리처럼 길게 뻗어간다.

"자혜와 여기 자주 왔었나 보죠?"

"이제부터 자혜 얘기는 하지 않기."

"알았어요. 미안해요.“

이럴 땐 차라리 인간에게 혀가 없었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을 해본다. 혀뿐만이 아니라, 언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오히려 좋을 것 같다. 말 못하는 동물들처럼 마주 바라보는 것으로만 서로의 감정이 전달될 수 있으면…….

갑자기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진다. 이곳은 나의 땅이 아니었다. 담을 쌓는 대신 오물을 버려 영역을 구축한 그 넓은 낙원이 아니었다. 목 놓아 포효하던 사바나는 더욱 아니다. 태양은 그 태양이 분명하건만, 내가 눈을 떠서 물을 마시던 여명의 그 습지는 정녕 아니다.

햇빛은 받아 붉게 물들어 가는 모래사장을 바라보며 이곳은 생물이 자취를 감춘 검은 사막과도 같다는 아찔한 상념에 젖어든다. 바다가 갑자기 살아난 듯 꿈틀거린다. 물결이 인다. 저것이 수평선이란 말인가. 아니다. 이건 엄청난 반전이다. 오아시스처럼 잠깨어 출렁이는 저 바다가 신기루같이 느껴진다.

나는 눈을 감고 팔을 길게 펼치며 백사장에 벌렁 드러눕는다.

"아름다워요.“

나의 팔을 베개 삼아 곁에 누우며 소정이 물새처럼 속삭인다.

나는 물개처럼 코를 벌렁거려 바다의 냄새와 소정의 향기를 동시에 빨아들인다. 바람이 불어오고, 그 바람결에 실려 오는 파도소리가 점점 커진다. 어디선가 고래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것도 같다. 환청이 아닌 소라껍질 같은 나의 귀가 전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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