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THE DAY 12

in kr •  6 years ago 

영화배우 민지희의 기획사무실에서는 사무실 사장과 실장, 민지희의 매니저가 어수선한 분위기에 넋을 놓고 앉아 있는 중이었다. 나이 든 여직원이 전화기에 매달려 걸려오는 전화에 일일이 대답을 하느라 쩔쩔매고 있었다.

“저희도 정확한 것을 모릅니다. 네... 네... 저희도 지금 여기저기에 수소문 중입니다. 아닙니다. 사실과 다릅니다...”

“민지희가 어제 대통령과 만난 거야? 이봐! 김 실장! 이거 어떻게 된 거야? 민지희는 어제 서울에 있었잖아?”

사장이 김 실장이라 부른 사내에게 눈을 부라렸다. 사장은 사십대 후반 정도로 보였고, 족제비처럼 하관이 빠른 인상이었다. 그는 콧수염을 옅게 기르고 있었는데, 그것이 그의 짧은 턱을 더욱 좁아 보이게 하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았다.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음주운전이라니...”

김 실장이 비굴한 몸짓으로 사장의 눈치를 살피며 내뱉은 말이었다. 그는 보통 그 나이의 직장인들이 하고 있는 모습을 그대로 빼다 박은 작자였다. 눈 씻고 찾아봐도 개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일반 샐러리맨의 초상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뭐라고? 김 실장이 모르면 그럼 누가 알아? 어젯밤 서울에 있던 애가 어떻게 강원도에 가서 음주운전을 하고 죽었다는 거야?”

“그러게 말입니다. 저도 그게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제 말을 도통 듣지 않았으니까요. 자업자득인 셈이죠. 빽 하나 믿고 어찌나 나대던지...”

옆에 있던 민지희의 매니저가 두 사람의 대화에 갑자기 끼어들었다. 매니저는 우락부락한 체격에 운동선수를 연상시키는 넙데데한 면상이었다.

“뭐야? 너는 또 왜 그래? 제 정신이야? 지금 민지희, 걔 밑으로 처바른 돈이 얼만데 그런 무책임한 소릴 지껄이는 거야? 미쳤어?”

사장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앞에 놓인 재떨이를 집어 들고 매니저에게 던지는 시늉을 했다.

“사장님!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조금 전에 대통령 비서실장이 은밀히 만나자는 전화를 해온 거 보면 그에 상응하는 무슨 대가가 있겠죠.”

매니저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실실 웃으며 사장에게 눈을 찡긋거렸다. 게다가 사장이 위협적으로 처든 재떨이 따위는 조금도 겁이 안 난다는 표정이었다. 오히려 그는 얼굴을 사장 쪽으로 더 가까이 들이밀었다.

사장은 눈살을 찌푸리며 재떨이를 내려놓았고, 앞으로 들이미는 매니저의 얼굴을 피해 뒤로 물러앉았다. 아무리 예쁘게 봐주려고 해도 징그럽고 정이 안 가는 녀석이었다. 뒤에서 돈을 대주고 있는 물주의 조카가 아니라면 당장 녀석의 모가지를 자르고 싶었다.

“어쨌든 김 실장과 이 매니저가 알아서 해! 이거 시끄러워서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난 당분간 일본에 들어가 있을 게. 거기 있는 우리 애들이 어떻게 지내나 좀 보고...”

“그렇게 하십시오. 마침 얼마 전에 새로 온 애가 하나 있는데, 일본어도 잘하고... 애가 제법 싹싹합니다. 걔를 데리고 가시면 계시는 동안 많이 적적하지 않을 겁니다. 애가 어떤지 살펴볼 겸 일본에 들어가실 때 데리고 가시는 게 어떨지요?”

김 실장이 사장의 표정을 살피며 나지막이 물었다.

“허허... 이 사람! 직원들 듣는데서... 그런데 애가 그렇게 싹싹하다고? 몇 살인데?”

“스물 둘인데, 아주 늘씬하고 싹싹합니다.”

“흠... 그래? 싹싹하다...”

사장은 전화기를 붙들고 씨름 중인 나이 든 여직원의 눈치를 슬슬 살피면서 김 실장에게 슬며시 면박을 주었지만 그리 싫지 않은 표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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