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생활을 마치고 씽크탱크로 이직하다 - 정책에는 실험이 필요하다

in kr •  6 years ago 

스팀잇 안에선 전업 스티미언을 표방하긴 했지만, 사실 스팀잇을 현금화한 것은 최근 10여만원이 전부였다. 그런 제가 전업 스티미언 생활을 마치고 월급 받는 직장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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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군대에서 한겨레21을 우편으로 구독한 결정이 내 인생을 바꿨다.

참여정부 시절에 군 생활을 했던 나는 우편으로 한겨레21을 구독할 수 있었다. 아마 이명박 정부 시절엔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엠비정부의 국방부는 군 내에 반입할 수 없는 불온서적들을 지정했는데, 군생활 당시 내 관물대엔 문제의 그 책들이 잔뜩 있었다. 난 불온서적과 불온잡지를 시간 날 때마다 읽으며 군 생활을 버텼다. 특히 국방일보 이외에 바깥 세상을 전해주는 유일한 창구였던 한겨레21을 매주 한 글자도 빠지지 않고 읽었다. 그러면서 자주 본 기자의 이름은 마치 아는 사람처럼 친근하게 느꼈고, 나중엔 사회에 나가서 저 사람들과 일하고 싶단 마음을 품었다. 그러다가 진짜로 한겨레 기자가 됐다.

부대 내에서 한겨레21을 읽다가 한 필자의 연재 칼럼을 처음부터 읽어봐야겠단 마음을 먹은 적이 있었다. 실제로 나중에 그 필자가 쓴 칼럼 첫 호부터 출력해서 보관도 했다.(그 칼럼의 꼭지는 '5분 경영학'이었고, 나중에 동명의 제목으로 출판됨) 그 필자는 당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이었는데, 나중엔 한겨레경제연구소의 초대 소장이 되었단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최근엔 2050년을 준비하는 정책실험연구소인 lab2050를 만들어 대표를 맡고 있다. 내가 지난주부터 3개월 간의 백수(가 아닌 전업육아러)생활을 마치고 출근하는 곳이 바로 lab2050이다. 스타트업 창업의 포부를 가지고 당차게 언론사를 나왔지만, 막상 나와보니 막막한 것들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러다가 이원재 선배를 만나 몇 차례 즐거운 대화를 나누다 보니 결국 여기까지 왔다. 개인적으로 lab2050이 인상적인 이유는 정책을 연구하고 생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험'에 방점을 찍는다는 점이다.

내가 자주 하는 얘기 중의 하나가 조선시대의 '대동법'이다. 대동법은 광해군 1년인 1609년에 처음 경기도에서 실시돼 순차적으로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황해도 등으로 확대됐다. 황해도에서 처음 실시한 해는 1708년으로 전국 실시에 100년이 걸렸다. 지주 계층인 권력층의 집요한 반대, 단일 조세체계를 실시할 만한 인프라의 부족 등으로 인해 오래 걸리긴 했지만, 결국 개혁이 좌초되지 않고 확대됐다. 그 이유는 지역 단위에서 실험을 해보니,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에 출간한 공약파기에도 이런 문장을 적은 적이 있다.

"4대강 사업은 오랫동안 논쟁적이었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쓴 만큼 홍수예방과 가뭄해갈에 도움이 된다는 찬성론과 재난 예방 효과는 미미할 뿐 아니라 돌이킬 수 없는 환경 파괴와 예산낭비라는 반대론이 맞붙어왔다. 하지만 찬반 논리를 떠나 누구나 납득할 만한 교훈이 있다. 다시는 수십조원의 국책 사업이 대통령 임기에 맞추려고 단기간에 강행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점이다. 일부 지역에서 소규모로 시작해보면 그 정책이 진정 좋은지 나쁜지를 판단하기가 쉽고, 그 결과에 따라 정책을 확대 적용할지, 그만둘지를 결정하면 된다. 충분히 순리대로 할 수 있는 일이다. 조선시대의 조세제도인 대동법이 기득권인 양반 지주층의 이익에 반하는데도 서서히 전국적으로 확대된 것은 시범적으로 실시한 지역에서 그 효과를 입증했기 때문이었다. 조선시대에도 꼭 필요한 일을 순차적으로 진행했는데, 수백년이 지난 대한민국에서는 왜 그런 지혜를 발휘하지 못했는지 두고두고 아쉬운 대목이다.

대동법은 처음 실시된 1609년 이전에도 거의 100년 가까이 논의됐던 정책이었다. 사람에게 부과하는 방식인 공납과 요역, 방납 등의 폐단을 해결하는 유일한 해결책이 생산력이 있는 '토지'에 부과하는 세금제도라는 것은 조선 초기부터 많은 경세가들이 알고 있었다. 답이 정해져 있는데도 답을 써내지 않은 이유는 거대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일을 감당할 수 없을거란 인식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시범 실시를 시작한 시기는 '임진왜란'이란 전쟁 직후였다. 개혁을 가로막던 세력도 지금은 변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시기였다.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떨까. 전쟁보다 더한 사회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고용 구조가 변하고, 일하는 방식이 바뀌며 우리가 무언가를 소비하고 사용하는 방식도 격변할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임진왜란 같은 참사가 닥쳐야 변화를 시작할 것이 아니라, 지역이나 기업, 조직, 공동체 단위에서 실험을 통해 미래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lab2050은 그런 방식으로 변화를 준비하는 곳이다. 지금까지 이 연구소가 기본소득 실험을 하는 '분배혁신랩'과 고용구조의 변화에 대응하는 '좋은노동랩'이 연구와 정책 실험을 해왔다면, 나는 '기술혁신랩'을 맡아 새로운 기술이 사회와 충돌하는 지점을 연구하고 대안을 모색하며, 가능한 정책실험을 추진해 볼 계획이다. 현안은 승차공유 플랫폼이 사회와 충돌하는 지점에 대한 연구다. 이 외에도 플랫폼 경제와 관련된 모든 분야를 포괄하고, 그때그때 관심 가는 분야로 확장해 나갈 생각도 있다.

그동안 '기자'라고만 불리다가 '연구원'이라니 좀 어색하기도 하고 부담도 된다. 막상 한 주 동안 이 곳에 출근해보니 나를 포함한 6명의 상근자가 독립적이면서도 원활한 소통을 하는 조직이라는 인상이다. 결론은 "저 대학로에 있습니다. 놀러오세요. 같이 차 마시며 수다 떨어요." 입니다.

LAB2050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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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드립니다. 지금처럼 설익은 소득주도성장을 실험하며 희생자를 양산하는 것보다 기본소득 보장으로 바로 직진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고 비용도 절감되는 게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대가 만만치 않겠지만 그걸 푸는 게 정치력이고 어줍잖은 경제 논리로 부작용을 양산하는 것보다 정도라고 봅니다. 좋은 활동 기대할게요.

고맙습니다! 정책 실험은 작은 단위에서 시행하는 것이 적절하죠.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새로운 출발 응원합니다. :)

대동법에 대한 이야기는 흥미롭네요.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면 기득권의 반대에도 결국 진행될 수 있는 것일까요?

연구원으로 활동하시면서 배우는 인사이트들을 스팀잇에서도 전해주세요~ :)

저도 솔나무님의 포스팅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대동법처럼 작은 단위로 실험해서 성과가 나오면, 이해관계도 뚫을 수 있길 바라고 있습니다.

새로운 출발 축하합니다.보클 꾸욱~

고맙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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