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을 주제로 생애 처음 문예지에 기고한 글

in kr •  6 years ago  (edited)

언론인이었던 제가 문학을 논하는 문예지(간혹 사회평론이 실리긴 하지만)에 기고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바로 문예지 <자음과모음> 여름호에 실린 '가상화폐와 한국사회'란 글입니다. 제 글을 실어준 것이 감사한 일이지만, 그래도 글이 좀 더 읽혔으면 하는 바람에 출판사에 허락을 얻어 전문을 스팀잇에 게재하고자 합니다. 발주 받은 분량이 원고지 50매 이상이어서 한 호흡으로 읽기엔 다소 부담스러울 있고, 기고문을 보낸지 거의 5개월이 다 되어 가고, 출판된지도 두세달 되어 약간 시의성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난해하지 않게 '블록체인'이란 기술이 무엇이고, 우리 사회에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또 어떤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해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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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요 책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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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발주 받을 때 이번 문예지의 컨셉 자체가 '지방'이니, 중심과 주변부성이라는 개념을 염두에 두고 써달라는 디렉션을 받았습니다. 그걸 감안하시고 읽어주시길.


가상화폐와 한국사회

출근길 만원 지하철에 타면 몸 가누기에 신경이 쓰이지만, 시선처리도 애를 먹는다. 불필요한 신체 접촉만큼 가까이서 타인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 누군가에겐 불편한 일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밀착해서 보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하철에서 휴대폰을 본다.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그들은 휴대폰으로 뉴스를 읽는다.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많은 이들이 뉴스의 제목을 읽고, 기사 내용을 빠르게 훑어본 뒤 댓글을 면밀히 살펴본다. 뉴스 그 자체보다 그 뉴스를 본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주된 호기심의 대상인 것 같다. 포털에서 가장 잘 팔리는 '킬러콘텐츠' 중의 하나는 분명 '댓글'이다.
한국 정치는 댓글로 이미 여러 차례 홍역을 치렀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국가의 녹을 받는 국정원, 군, 경찰 공무원들을 동원해 댓글을 달았다. 그깟 댓글이 무슨 대수냐고 할 수도 있지만, 댓글로 여론을 조작하고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그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싸우면서 닮는다고 했던가. 공론장에서 댓글의 영향력을 확인한 이들 중에는 자발적으로 여론 조작에 나서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치인들의 팬들이 벌인 여론조작인 이른바 '드루킹 사건'이다. 여러 개의 아이디를 사용하며 사람 손보다 빠르게 반복 작업을 수행하는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한 여론조작은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넷의 한 단면이다. 지금의 인터넷에서 한 명이 온전히 자신의 의견을 표출하는 것인지, 아니면 한 사람이 위장한 수백, 수천명의 여론인지, 인간이 도저히 따라하기 힘든 빠른 속도로 컴퓨터가 반자동적으로 수많은 의견 표출을 대행하는 것인지조차 알기 어렵다.
한국에선 댓글로 홍역을 앓았다면 해외에선 페이스북을 둘러싼 정치 스캔들이 미국과 영국을 강타했다. 정치 컨설팅 업체인 '케임브리지 아날리티카'란 업체가 유권자들의 개인정보, 정치성향 등을 수집해 선거 캠프 등에 팔았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은 이미 2016년 미국 대선 당일 가장 빠르게 퍼지고 널리 읽힌 상위 20개의 뉴스가 모드 가짜뉴스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 사건에서 네이버나 페이스북이 잘못이라는 쉬운 지적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더욱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려 한다. 그것은 인터넷 공간에서는 왜 신뢰가 담보되기 어려운가, 또한 왜 소수의 중앙화된 플랫폼이 인터넷 세계의 비즈니스와 공론장을 독점하느냐는 의문이다. 근본적으로 우리가 사용하는 인터넷이 어쩌다 이 지경에 왔느냐는 물음이다.

화폐주권을 일깨어 준 비트코인

눈치 챘겠지만, 이 글의 주제는 블록체인이다. 블록체인이 마치 현 세대의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만능 열쇠라는 사기를 치고 싶진 않다. 아마 미래에 지금 인터넷에서 제기된 대부분의 문제가 해결된다고 할지라도, 블록체인의 기여도는 일부분일 가능성이 높다. 가상화폐를 띄우려고 블록체인을 언급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유시민 작가가 블록체인을 조명하는 언론조차 "수상하다. 그 사람들(언론인들) 거기다 돈 넣어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는데, 과도한 믿음이나 불신 모두 새로운 현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방해한다. 참고로 필자는 현재 글을 쓴 대가로 받은 암호화폐 스팀을 제외한 어떤 암호화폐도 보유하지 않고, 공부 삼아 암호화폐를 투자할 때도 일부 손해를 봤다. 또 현재 진행 중인 블록체인 프로젝트의 실상이 제대로 알려지면, 상당수의 암호화폐의 가치는 더욱 하락하리라 믿는 편이다.
지금은 블록체인 기술이 과도한 기대를 받는 단계다. 마치 인터넷이 더 열린 세상을 만들 것 같은 기대, 엄청난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할 것 같은 기대를 받았던 20년 전처럼 말이다. 예를 들어 2000년에 상장한 새롬기술은 데이터 통신으로 음성통화를 가능케 했던 서비스(VoIP : Voice over Internet Protocol)인 다이얼패드로 매출이 200억원대였지만, 그 해에 시가총액은 5조원을 돌파했다. 재계 서열 5위권에 올랐고, 심지어 현대자동차, 롯데그룹, 한진그룹 등보다도 몸값이 비쌌다. 당시는 음성통화를 원활하게 할 만큼 데이터 통신의 속도가 빠르지 않았고, 실제로 통신속도가 향상되고서 스마트폰이 대중화된 이후에는 음성통화의 경제적 가치가 점점 하락했다. 하지만 당시로선 그저 막연한 기대가 묻지마 투자로 이어졌다. 시간이 흘러 새롬기술이 구현했던 비즈니스는 무선통신이 일반화된 현재 상용화됐고, 스카이프라는 세계적인 기업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당시의 기대 수준은 과도했지만, 기대의 방향은 어느 정도 맞았던 것이다.
따라서 블록체인의 문제도 기대의 수준이 아니라, 무슨 기대를 받는가를 살펴봐야 한다. 블록체인이 받는 기대는 현 세상의 중심부가 지닌 문제들을 개선할지 모른다는 가능성이다. 한두가지가 아니고, 때로는 여러 문제가 중첩된 복잡다단한 구조가 있다. 하나하나씩 다뤄보려고 한다.
우선, 블록체인이라는 개념을 탄생시킨 비트코인도 탄생 초기에 비슷한 기대를 받았다. 익명의 인물 혹은 집단인 '사토시 나카모토'가 2008년 10월 '비트코인 : 개인간 전자화폐 시스템'(Bitcoin : A Peer-to-Peer Electronic Cash System)을 자신이 만든 홈페이지에 올리면서 세상에 공개했고, 3달 뒤엔 이 논문의 내용을 구현한 프로그램을 직접 만들어 네트워크 상에 공개했다. 이 논문에는 '블록체인'이란 용어가 나오진 않지만, '블록'과 '체인'이란 단어는 여러차례 등장한다. 블록체인은 이 논문에서 나온 '지속적으로 업데이트되는 같은 데이터를 공유하는 것'이란 의미를 이후에 여러 전문가들이 개념화한 것이다.
많은 이들이 블록체인이 시대정신이란 말을 하는 이유는 비트코인이 마침 글로벌 금융위기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망해가는 월가의 투자은행들을 살리고자 미국 정부는 화폐를 새로 발행해 지원했다. 투자은행들은 정부의 긴급 수혈을 받아 여전히 천문학적인 연봉과 보너스 잔치를 벌였다. 그 유명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Street)는 시위는 이런 배경으로 시작된 것이다. 화폐를 새로 발행하면 기존 화폐의 구매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은 준조세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나, 떨어진 가치를 바로 체감하기 힘들다. 정부는 이 점을 악용해 세금을 걷는 것보다 손쉬운 화폐발행을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발행한 화폐를 오히려 책임이 있는 이들에게 나눠준 것이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그 시기에 비트코인이 탄생했다. 비트코인은 미리 정해진 규칙에 따라 화폐 발행량이 결정되고, 총 발행량도 2100만개로 정해져 있다. 이런 규칙을 바꾸려면 51% 이상이 찬성해서 프로그램 전체를 업그레이드(이것을 블록체인 분야에선 '하드포크'라고 부른다)해야 하고,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이 화폐는 두 개로 분화된다. 비트코인캐시가 비트코인에서 그렇게 분화됐다. 비트코인은 결과적으로 중앙은행에 모인 몇몇 금융전문가, 금융관료들이 화폐발행량을 정하는 방식에 반기를 든 셈이다.
비트코인은 오랫 동안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에도 문제를 제기했다. 바로 화폐란 무엇이고, 화폐는 왜 가치를 갖느냐는 의문이다. 화폐란 그저 정부나 중앙은행의 보증으로 가치가 보전된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 보증을 우리가 너무나 쉽게 믿어 버린 것이 아니냐는 성찰의 기회도 제공했다. 결국 화폐의 가치란 정부의 보증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 보증에 대한 우리의 믿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웠다. 그렇다면 보증의 대상이 정부가 아니어도, 꽤 믿을만한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대체가 가능해졌다. 그것이 바꾸기 힘든 프로그램일 수도 있고, 발행량이 일정하게 통제된 알고리즘일 수 있다.
블록체인 기반의 블로그 서비스인 스팀잇의 백서를 봐도, 이 회사가 어디서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 내어 스팀이란 암호화폐에 가치를 유지할 것이란 내용은 어디에도 없다. 광고도 하지 않고, 물건도 거의 판매하지 않는다. 밖에서 따로 돈을 벌어오는 것이 아닌데도 그저 스팀잇이란 서비스 안에 있는 콘텐츠가 나름 가치가 있으니, 자신들이 발행하는 암호화폐도 가치가 있다고 주장한다. 대신에 조건이 있다. 자기네들의 암호화폐 발행량을 2016년 12월부터 매년 전체 통화량이 9.5%만 새로 발행하고, 이 비율이 21년간 매년 0.5%씩 낮아진다는 엄격한 통화정책이다. 신규 발행량이 전체의 0.95%에 이를 때까지 이 감소세는 지속된다. 스팀잇의 백서는 미국의 중앙은행을 언급한다. 미국 중앙은행이 글로벌 금융위기 때 막대한 달러를 찍어서 공급한 것에 반해 스팀잇은보다 엄격한 통화준칙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처음 스팀잇이 만들어졌을 때 설계된 이 통화정책은 스팀잇 21명의 증인에 의해서만 변경될 수 있다. 증인은 전체 구성원들의 투표로 선출된다.
화폐주권에 대한 성찰은 사토시의 논문에서 한 줄 언급도 없다. 그저 사토시는 그동안의 암호학과 네트워크 기술을 조합해 인터넷 세계에서 제3자의 중개 없이 개인들 간에 온전한 가치의 교환이 가능하다고 역설했을 뿐이다. 이것은 마치 스티브 잡스가 와이파이 환경에서만 사용하던 아이팟터치에 휴대폰 기능을 조합해서 "여러분 새로운 유형의 모바일 인터넷 기기가 등장했습니다"고 연설했던 것과 비견할 수 있다. 사토시의 논문에서 제일 중요한 개념은 '중복 지급'이다. 디지털은 완전복제가 가능한 특성으로 인해 비트코인이란 파일을 똑같이 복사해서 순식간에 천문학적인 부를 쌓을 수 있다. 이미 비트코인을 사용해서 물건을 샀는데도, 미리 복사해둔 것을 가지고서 안 썼다고 우기면서 다른 사람에게 다시 지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문제로 인해 온라인의 세계에선 가치 교환은 늘 제3자의 중개를 거쳐야했다. 그런데 사토시는 이 문제를 '모두가 공유하는 같은 장부'라는 개념으로 돌파했다. 모두가 같은 장부를 공유하니, 비트코인을 썼으면 모두가 저 사람에게 비트코인이 없다는 것을 알게된다는 원리다.

무수한 암호화폐의 탄생을 촉발한 이더리움

비트코인이란 개념은 2008년 10월에 처음 등장했다. 하지만 5년여간 크게 주목을 받진 못했다. 2013년 키프로스 사태(지중해의 섬나라로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정부가 개인들의 은행예금까지 압류를 걸었고, 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는 비트코인에 수요가 몰렸음) 때 반짝 인기가 있었을 뿐이고, 이내 가격이 떨어지면서 대중의 관심에서도 멀어졌다. 이때만해도 지급 결제 수단으로서의 비트코인만 주목했고, 블록체인으로서 새로운 가능성이 제시되기 이전이었다.
그런데 비트코인이 등장한지 5년이 약간 지난 2013년 11월 러시아 태생의 캐나다인 비탈리 부테린이 이더리움이란 개념을 들고 나왔다. 당시 부테린의 나이는 불과 19살이었다. 이더리움은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 블록체인이 '지급결제 수단을 넘어 그 이상의 것'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부여했다. 단순히 거래 수단이 아니라, 경제생활 전반에 있어 거래의 형태를 바꾸고 나아가 인터넷의 구조마저 바꿀 가능성을 제시한 것이다.
비트코인은 개념을 제시하고서 3개월 만에 프로그램을 선보였지만, 이더리움은 개념을 담은 백서를 발간하고서 1년 8개월이 지난 2015년 7월에 프로그램을 세상에 내놨다. 하지만 반응은 비트코인보다 이더리움이 더 즉각적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더리움은 무수히 많은 암호화폐들의 탄생을 촉진했다.
이더리움은 등장부터 인상적이었다. 2013년 11월 백서를 발간하고서 ICO(Initial Coin Offering)를 진행했다. ICO란 기업이 주식시장에 기업을 상장하기 위해 투자자를 공개 모집하는 '기업공개'(IPO:Initial Public Offering)란 개념에서 파생된 용어로 쉽게 말하면 블록체인으로 하고 싶은 사업의 개요를 '백서'(whitepaper)의 형태로 발표하고서 투자금을 암호화폐로 받고서 새로 발행하는 암호화폐를 나눠주는 것이다. 여기서 투자금을 암호화폐로 받는다는 대목이 중요하다. 비트코인은 2013년 키프로스 사태를 계기로 가격이 급등했을 즈음에 '미래의 결제수단'으로 주목을 받았고, 실제로 포브스 기자는 '비트코인으로만 1주일 살기'라는 르포 기사를 써서 유명세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1초당 7건 밖에 처리하지 못하고, 결제 처리시간이 최소 10분이 걸리는 단점으로 인해 지급결제 수단으로서 한계가 뚜렷했다. 그 이후 비트코인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진 이유는 마땅한 용도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더리움이 ICO를 통해 비트코인으로 투자금을 모집하고, 투자자에게 이더리움을 나눠줬다. 비트코인이란 암호화폐로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니라, 각종 ICO 프로젝트에 투자용 화폐로서 용처를 찾은 것이다. (ICO의 첫 번째 사례는 이더리움이 아닌 2013년 7월에 등장한 마스터코인임).
이더리움은 새로운 블록체인 프로젝트가 어떻게 세상에 등장하면 좋을지 본을 보였을 뿐 아니라, 그 방법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바로 자신들의 블록체인 네트워크 안에서 발행되는 토큰의 표준인 ERC20(Ethereum Request for Comments 20)을 제시했고, 이를 이용해 훨씬 손 쉽게 코인이나 토큰을 만들 수 있었다. 결국 이더리움이 출시된 이후 한 해 만에 수백개의 암호화폐가 새로 등장했고, 2년이 지난 시점엔 1000개가 넘었다. 용처를 확인한 암호화폐의 가격이 2017년에 전반적으로 폭등했고, 블록체인은 더 이상 개발자들만이 아는 단어가 아니게 되었다.

우리의 인터넷은 지금 어디에 와있나

블록체인이란 단어가 유명해지긴 했으나, 이 단어가 우리 사회에 던진 메시지가 제대로 논의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투기 현상일 뿐이라는 단편적 시각이나, 마치 단번에 세상을 바꿀 것 같은 과도한 낙관주의 등 양극단적인 입장들이 우세할 뿐이다. 무엇보다 블록체인이 제시하는 가능성이 지금 우리 세상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블록체인이 제시하는 중요한 가능성은 중개기관의 역할을 축소하는 것이다. 지금의 온라인 세상에선 중개기관이 막대한 정보와 권한을 가지고서 부를 독점하고 있다. 원래 자본주의가 가장 경계하는 것이 독과점이다. 자본주의는 수요와 공급이 자유롭게 만나서 최대 효용을 누리게 하는 시장의 기능을 중시하는데 반해, 독과점은 이를 불가능하게 하는 대표적인 시장실패 사례다. 따라서 자본주의가 발전한 나라일수록 독과점에 대한 규제가 강하다. 하지만 인터넷 세계에선 독과점이 불가피하단 시각이 많다. 2018년 기준으로 전세계에서 유명한 인터넷 기업들인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네이버, 알리바바, 위챗, 바이두, 우버, 에어비앤비 등은 자신의 분야에서 독보적으로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독과점 기업이다. 심지어 인터넷 독점 기업들은 로컬 기업의 생존마저 허용하지 않는다. 인터넷에선 규모가 커질 수록 비용이 낮아지는 '규모의 경제'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비용만 낮아지는 것이 아니라 사업의 기반이 되는 콘텐츠도 쉽게 쌓인다. 문제는 이런 독점 기업이 된 이후엔 누구도 견제하기 힘들어진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애플은 앱스토어를 열면서 앱 판매액의 30%를 수수료로 받았다. 마찬가지로 비슷한 안드로이드마켓(구글플레이)을 연 구글도 수수료율을 30%로 책정했다. 개발자로선 이 수수료가 과도하다고 여겨도, 애플이나 구글 이외의 다른 플랫폼을 선택할 수 있을까. 사실상의 선택지가 없다. 언론사로선 네이버가 뉴스 콘텐츠로 트래픽과 광고시장을 독점하는 것이 얄밉지만, 네이버에 들어가지 않으면 전재료조차 받지 못하고 심지어 미약한 트래픽마저 더 떨어진다. 음원업체들이 아티스트를 박대한다는 것은 오래된 얘기지만, 개선도 요원하다. 카카오택시가 갑자기 유료화를 하거나, 요금을 올린다고 해도 소비자로선 다른 선택지가 없다. 캬캬요는 그나마 한국 기업이기에 정부의 규제가 효력을 발휘할 뿐이다. 실제로 공유경제 업체들은 각국 정부의 법규와 충돌하고 있음에도 천문학적인 실적을 내고 있다.
중개자들의 문제는 단순히 많은 이익을 챙기는 것만이 아니다. 중개자들은 플랫폼의 공정성을 좌우한다. 예를 들어 플랫폼을 운영하면서 일부 서비스를 같이 제공한다면, 경쟁 서비스보단 더 혜택을 줄 우려가 있다. 과거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우에 익스플로러와 MSN메신저를 끼워 팔면서 네스케이프와 다른 메신저들을 고사시켰다. 오피스 프로그램들도 마찬가지였다. 안드로이드폰에는 구글에서 만든 앱들이 미리 탑재된 채로 출시되며, 애플도 마찬가지다. 여행상품을 아무리 잘 만들어도 에어비앤비가 직접 '트립 서비스'를 내놓으면 그것과 동일선상에서 경쟁하기는 어렵다. 페이스북도 처음엔 다양한 업체들의 참여를 유도해 자신의 플랫폼에서 구동되는 응용프로그램(앱)이 만들어지도록 유도했다. 2010년대 초엔 페이스북에서 여행지도를 표시하거나, 생일카드를 보내거나, 혹은 친구들의 참여를 유도해 게임을 하는 등 다양한 앱들이 등장했다. 특히 징가라는 게임업체는 한 때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활발하게 사업을 벌였지만, 페이스북이 게임으로의 친구 초대를 스팸으로 처리하면서 이들의 실적은 뚝 떨어졌다. 결국 플랫폼이 누구에게 기회를 주느냐에 따라 비즈니스의 성패가 달리기 마련이다. 참고로 플랫폼이 특정 서비스에게 기울지 않고 동등하게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이런 문제를 '플랫폼 중립성'(platform neutrality)이라고 부른다.

사실 플랫폼이란 정치인과도 비슷하다. 개개인들이 각자가 자신의 권한을 한 사람에게 위임했을 뿐인데, 정치인들은 그 힘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고 권력을 부린다. 물론 정치인들이 위임 받은 사람들을 위해 일하기도 한다. 그건 너무나 당연하다. 플랫폼도 이용자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한다. 문제는 권한을 위임한 이후의 문제다. 정치인들의 공적인 행위들을 투명하게 감시하고, 잘못한 경우엔 언제든 불러서 재신임을 물을 수 있는가는 각국의 민주주의 성숙도에 따라 다르다. 플랫폼의 경우엔 대부분 국경을 넘나들고 있어 각국의 법규가 소용없다. 따라서 견제의 수단이 필요한데, 그 수단으로 블록체인이 떠오르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블록체인이란 인터넷 세계의 민주화 수단인 셈이다.

그런데 블록체인으로 이 거대한 플랫폼 업체와 어떻게 맞설 것이냐는 의문을 품을 수 있다. 그런 의문이 당연하다.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공개장부인 블록체인과 페이스북, 구글 등이 무슨 관련인지가 궁금할 것이다. 이 의문을 풀 열쇠는 이미 이더리움이 제시했다. 앞서 이더리움이 새로운 암호화폐의 출시를 촉진했다는 것을 다뤘는데, 그보다 더 중요한 이더리움의 혁신은 분산응용프로그램(Dapp:Decentralized Application)이란 개념을 제시한 것이다. 이더리움은 '댑'들이 돌아가는 플랫폼을 지향한다. 이더리움 이후에 나온 이오스, 카르다노, 퀀텀, 아이콘 등도 모두 단순한 지급결제 수단이 아니라 플랫폼을 지향한다. 이런 플랫폼으로 인해 지금의 인터넷에서 구동되는 서비스들이나 블록체인에 적합한 새로운 서비스를 '댑'의 형태로 만들 수 있다.
그렇다면 블록체인으로 서비스한다고 인터넷의 구조가 달라질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다만 블록체인의 철학이 '탈중앙화', '분권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 서비스를 설계하는 업체들도 이를 신경쓸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스팀잇에선 21명의 증인들이 암호화폐의 발행을 감독하고, 시스템의 개선 방향을 결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 증인들은 사용자들의 투표로 선출된다. 스팀잇의 창업자가 증인들에게 이런 권한을 부여하도록 설계한 이유는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블록체인의 철학이 플랫폼 업체가 모든 것을 좌우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대신 블록체인에선 서비스에 필요한 자원을 창업가나 자본가들만이 마련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 참여자들에게 부담케한다. 파일코인이란 업체는 개개인들의 컴퓨터를 연결해서 하나의 거대한 데이터 창고를 만들려고 한다.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결국 서비스란 거대한 서버에서 나오는데, 한 업체의 서버에 종속되면 플랫폼의 중립성도 훼손되기 때문이다.

인터넷 공짜경제는 극복될 수 있을까

인터넷에서 돈을 버는 방법은 크게 4가지로 광고, 커머스, 콘텐츠 판매, 중개수수료 등이다. 구글(광고), 아마존(커머스), 넷플릭스(콘텐츠 판매), 에어비앤비(중개수수료) 등이 각 사업모델을 대표하는 기업들이다. 이 4가지 비즈니스 모델을 제외하면 돈을 벌 방법이 마땅치 않고, 특히 인터넷 세계에서 이익에 소외된 이들이 콘텐츠 창작자들이다. 콘텐츠 제작자들은 플랫폼이 만들어내는 광고 수익에서 극히 일부만을 받았을 뿐이다. 정당한 몫도 아니고, 자기 몫을 제대로 요구하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디지털 세상에선 데이터의 완전 복제가 가능하고, 인터넷으로 인해 완전 복제된 콘텐츠가 어느 한곳에만 있어도 어디서든 접속할 수 있다. 창작자로선 자신이 만든 콘텐츠를 누구나 복제해갈 수 있고, 이를 추적조차 하기 힘들었다. 현실 세계에서 작동하던 '저작권'이란 개념이 인터넷이 등장한지 20년이 지나도록 제역할을 찾지 못했다. 이런 환경은 글, 사진, 만화, 음악, 영화 등 모든 콘텐츠 생태계에 영향을 미쳤다. 오디션 형태의 TV프로그램을 보면 소리바다가 등장한 2000년 이전의 음악들만이 자주 나온다. 이런 상황이 과연 음반 판매만으론 먹고 살기 힘들어진 상황과 관련이 없을까. 개인적으론 그렇지 않다고 본다.
그런 면에서 블록체인은 창작자들에게 희망의 한줄기처럼 보인다. 이제 더 이상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고도 소비자를 만날 수 있고, 이전보다 적절한 보상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희망이다. 블록체인 안에서는 콘텐츠의 소비가 기록으로 남고, 그 기록이 훼손되지 않는다. 이런 훼손되지 않는 기록은 적절한 보상의 근거가 된다. 이런 기대를 반영해 '미생'을 만든 윤태호 작가는 "미래 웹툰은 블록체인으로 연재될 것"이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한줄기'라고 표현한 것은 아직 그 가능성이 희미하기 때문이다. 스팀잇 안에서도 남의 콘텐츠를 가져다가 자신의 것처럼 포스팅하고, 보상을 극대화하기 위해 담합하는 행위들이 있다. 블록체인 플랫폼이라고 해도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인간들의 행위를 적절하게 통제하기는 어렵다. 블록체인 바깥에서 벌어지는 저작권 위반 행위들도 제재할 수 없다.
그래도 여전히 블록체인은 가능성의 영역에 있다. 그 영역에서 보상의 대상은 창작을 넘어서기도 한다. 분명 가치가 있긴 한데, 기존 시스템에서 경제적으로 보상해주지 못한 것들이 블록체인에선 다르지 않을까란 기대를 품게 한다. 실제로 그런 문제의식을 구체화하면 블록체인에서 토큰을 적용한 사업모델을 만들 수 있다.
인터넷이란 컴퓨터들을 통신선으로 연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역사 속 첫 번째 인터넷이라고 불리는 아르파넷(ARPANET)은 미 국방부가 1969년 스탠퍼드와 UCLA의 컴퓨터를 통신선으로 연결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 컴퓨터간의 연결이 인간의 거의 모든 일상들을 이어 붙였고,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블록체인은 지금 이 시점에 그 연결의 새로운 지향점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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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오랜만에 장편의 글을 정독해서 봤네요
잘 읽고갑ㄴ다!

네 고맙습니다! jy님 글도 잘 읽고 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이따 퇴근해서 조용히 정독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