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시사회가 당첨되어 운좋게 영화를 보러갔다. 청소년 관람 불가 + 프랑스 영화는 오랜만이라 두근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장소는 코엑스의 메가박스. 퇴근 후 피곤한 몸을 줄줄 이끌고 당당하게 혼영..
개봉은 내일인데, 개봉전에도 참 많은 부정적 견해 때문에 네이버 네티즌 평점이 1.97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영화는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 수상작. 물론 상을 받았으니 좋은 영화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영화 개봉 전임에도 불구하고 평점 테러는 좀 아닌가 싶다. 게다가 1점을 준 사람들의 얘기를 보면 대부분 에이즈나 동성애를 혐오하고, 에이즈를 왜 정부와 제약 회사로 책임 전가를 하느냐는 말들이 대다수다. 그래서 이 글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비판받으리라는 예상을 하고, 조심스럽게 후기를 남겨본다.
1. 방관자에서 관찰자로 만들어주는 영화, 120 BPM.
이 영화는 성소수자와 에이즈를 다루는 민감한 영화이며, 1989년 프랑스 파리에서 결성된 에이즈 NGO 연대, 액트업 파리의 실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생생하다. 최근에 봤던 또 다른 영화 <더 포스트>와 같이 실제 영상을 중간중간에 틀어주어, 스토리와 함께 어우러지는 실제 영상에서 몰입도를 올린다. 에이즈와 성소수자를 혐오하지는 않더라도 아무 생각없이 방관했던 관객을, 그 곁의 친구들까지는 아니더라도 관찰자로 만들어주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 이는 첫 시위와 중간의 시위를 바라보는 나의 태도로 느낄 수 있다.
2. 직접 겪어야만 아는 두려움과 공포, 자신감에서 무력으로.
영화는 에이즈를 다루고 있기에, 에이즈 양성 환자들도 많고 중간중간 섞여있는 에이즈 음성 환자들도 있다. 하지만 확실히 에이즈 양성 환자들이 훨씬 큰 두려움을 안고 있으며, 분노에 차기도 한다. 가장 인상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션이 점점 약해지며 나톤에게 기대는 장면. 사람이 아프면 아파질수록 약해지고 당당했던 모습을 잃어가는 게 인상 깊었다. 나 역시 에이즈는 아니지만 병을 앓아 치료를 계속 했었기에 아주 약간 공감할 수 있었는데, 그래서 더욱 막막했다. 에이즈 환자의 두려움이 여실히 드러난 장면 중 하나로 꼽고 싶다.
3. 무죄는 악. 배워야 산다.
아직까지도 HIV를 완치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러니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지금은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예방 교육이 잘 실시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에이즈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것 같다. 손만 잡아도 에이즈가 걸리는 줄 알았으니 무죄는 악의 경우가 딱 내 경우였던 것. 여기서도 액트 업 파리가 학교에 찾아가 수업 중인 강의실에서 급박하게 에이즈 교육을 실시하는데, 쫓아내는 교수와 키득거리는 학생이 거슬렸다. 가장 거슬렸던 이유는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무작정 덮으려는 사회의 보수적 인식이 아직까지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 때문이다. 학교에 콘돔 자판기를 설치하면 성관계를 독려하는 것 같다는 교장. 한숨만이 나온다.
4. 혐오를 얘기하는 표현의 자유?
에이즈나 성소수자 등 민감한 사안을 다룬 영화답게 혐오의 시선이 등장한다. 이는 물론 지금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기만 하더라도 볼 수 있으니, 과거에는 더욱 심각했을 것. 네이버 영화 평점에도, 그리고 각종 트위터나 페이스북 과 같은 SNS에서도 쉽게 마주칠 수 있어 너무 놀랐다. 그동안 내가 정말 방관자였구나. 라는 생각에 휩싸였다.
하다못해 '국내 에이즈 환자 이성간 성접촉에 더 많이 감염'이라는 기사에 달리는 다섯개의 베스트 댓글도 모두 혐오로 얼룩진 세상. 이것도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은데, 혐오를 말하는 건 표현의 자유가 아니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강제적으로 파괴하는 건 자기 자신의 인격을 모독하는 건 물론, 인간으로서도 해서는 안될 짓이라고 생각한다.
5. 엔딩의 모호함
이 얘기는 스포가 될 것 같아 쓰지 않겠지만, (게다가 개봉전) 개인적으로 엔딩이 참 모호하다. 계속 생각하며 곱씹어야겠다.
혐오자가 아닌 방관자였다면 추천할 영화. 혐오자는 계속해서 혐오의 시각으로 바라볼 게 분명하다고 생각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