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애니메이션을 참으로 좋아합니다. 일본은 좋아하지 않지만 알게 모르게...실은 일본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세대입니다. 최근 들어서 어렸을때 만큼 애니메이션을 볼 기회가 적어졌지만 종종 예전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습니다. 거기다 게임도 종종 합니다. 게임을 좋아하지만 최근에 나온 신작 게임에는 엄두를 내고 있지 않습니다. 이유는 거기에 빠져서 다른 일에 지장이 생기는 경험을 많이 해봐서 게임 자체를 나름 자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득 여기서 재밌는 뇌피셜을 하나 찾아냈습니다
1. 종종 애니메이션과 게임에서의 최종 악당은 주인공의 아버지
언제부터인지 몰랐지만, 드라마틱한 연출을 위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은 아버지가 최종 보스이거나 부보스 인 애니메이션이 많았던것 같습니다. 당장에라도 기억나는 예를 들면 아래와 같습니다.
보스급이거나 적이 아버지인 설정의 애니메이션
- 신세기 에반게리온 시리즈
- 타이의 대모험
- 2020 원더키디
- 아기공룡 둘리(고길동은 아버지 격)
- 머털도사( 묘선이 아버지)
등등......
이 있습니다.
아버지란 존재는 참으로 소중합니다. 어머니 만큼 소중한 존재입니다. 보통 의아해하시는분들도 많을수도 있습니다. 워낙 각 가정마다 상황이 케바케인 경우가 많으니깐요..... 보통 아버지는 자식과 마주칠일이 상대적으로 많지가 않으며, 늦은밤에 불편한 상황에서만 늘 보이는게 일반적이니깐요. 그렇지 않았다면 저만의 이야기 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최근들어 문득 아버지란 존재를 한명의 사람으로 본다면 참으로 어쩔수없음을 나이가 듬에 따라 느끼게 됩니다. 참고로 미리 저는 아버지가 아니란 점을 미리 밝혀드립니다.
2. 아버지보다 더 큰 의미로 와 닿은 경제 주체
엄마라는 존재는 아이에게 신 같과 같습니다. 자식은 10개월 이상을 엄마 뱃속에서 자라고, 20년 이상을 사실상 엄마의 품에서 자랍니다. 그 기간동안 엄마랑 서로 싸우고, 은연중 화해하고, 친구같이 지내기도 하며, 아주 자연스럽게 밀당하면서 서로 애틋함을 키워갑니다. 낮 간지럽지만 서로간의 유대관계는 아주 높습니다. 엄마는 자식을 알고 자식은 엄마를 압니다. 그것도 너무나도 잘 알게 됩니다.
아버지는 다른 세계에서 유대관계를 형성합니다. 바로 자기와 비슷한 직장인들과의 유대관계이지요. 동료들과 업무에 늘 받히고, 싸우고, 화해합니다. 하루의 반 이상을 일의 테두리속에서 보냅니다다. 아내와 자식을 위해서 이를 악물고 고군분투합니다. 물론 최근에는 엄마도 일을 하는 시대입니다. 이제는 엄마들도 경제적 주체로써의 존재가 높아져 가고 있는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오늘 제가 언급하고자 하는 얘기는 최소 15년전의 아버지의 세대란걸 서두에 알려드리지 않았네요. 그 시대도 일하시는 엄마가 있었지만요. 비율로 치자면 그렇다는 거니 잠시 묻어두죠.
일본경제에서는 한국보다 먼저 경제에 대한 성장 분위기가 무르익었었지요(과거완료형 표현). 어렸을때 한국보다 빨리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아버지라는 존재는 불편했을것이며, 그리 곱지않은 시선이었을겁니다. 경제가 좋았던 거품경제시대에 경제적으로 많이 좋은 시기라 가정내 아버지의 필요성에 대한 직접적인 느낌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게 몇년이 지나서 한국에도 고스란히 드러났지만 말이죠. 그렇게 자란 젊은 세대들은 아버지와 친해질 시기를 놓쳐버리고,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불편하고, 존재에 대한 중요성을 망각한 것 같습니다. 저 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깐요. 당시 일본 애니메이터들과 게임 크레이터들은 나름 잘나가는 사람이었을겁니다. 고린타분히 직장생활하고 억지로 일하는 아버지들의 모습인데다가 그렇다고 집에와서 피곤하고 지친 아버지의 모습이 결코 만족스럽지 못했을겁니다.
당시 젊은 일본 내 작가들은 잘나가는 산업계 종사자로써 한심해보이기도 하고, 유대관계에 있어서 적으로 설정된 아버지를 겨냥해서 나름 드라마틱한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 냈을거 같습니다. 하지만 알다시피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도 지금 호락호락한 상황이 되지 못합니다. 경제의 효율적인 특성에 따라 작품의 외주를 한국시장이 섭렵했기 때문이니다. 마찬가지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시간이 지나 똑같이 힘들어졌습니다. 더이상 그림만 잘 그린다라는 것도 하나의 작은 기술이라고 치부되었을겁니다. 그리고 더이상 아버지가 적인 애니메이션은 찾기 힘들어졌습니다.
3. 가정내 책임감의 무게는 왕의 왕관보다 무겁다.
비상정적인 경제시장의 활성화(부의 편중)로 인해 기업과 국가의 경제력은 올라갔지만, 특정 수준(?)의 경제활동을 하기위한 급여는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말그대로 열심히 일한만큼의 대가가 높지 않으며, 능력발휘에 비해 가정을 운영하기 위한 대가가 그리 경제적이지 않습니다. 정도가 어느정도여야지 말이죠. 우리나라 자영자들의 비율이 높은 이유가 여기 한몫합니다. X같아서 다들 퇴사를 합니다. 경제주체로써 너무나 자존심 상하는 상황의 연속이 이어지지만, 막상 다른곳으로 눈을 돌림 틈도 없습니다. 자기가 함께 만들던 댐에 물이 새는걸 도저히 볼수도 없기 때문입니다(나름 작전에 대부분 당합니다.).
혼자 살면 이 문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기혼자들은 무엇보다도 처자식 또는 가족의 생계에 대한 무게가 너무 무겁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아버지란 존재는 왕따 당하기 쉬운 위치입니다. 최소 하루의 10시간 이상을 일을 하기 위한 과정이니깐요. 이 경제주체가 엄마가 되면 역시 똑같은 위치가 됩니다.
4. 어쩔수가 없는걸까요?
어쩔수 없다고 생각이 듭니다. 본인도 고지식해서 저 또한 같은 길을 갈수도 있다는 생각을 냉정히 의심치 않습니다. 난 다를거야 란 생각을 늘 해왔습니다. 그렇다고 현실과 마주한 상황에서는 어쩔수없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것같습니다. 회사 신입때 자주 ~ 흔히 ~ 겪은 일입니다. 노동력을 팔러 온것 일텐데, 인격까지 팔렸고 거기다가 자존심까지도 공짜로 다 매도당한적이 있습니다. 회사란 곳이 원래 그랬습니다. 제가 너무 회의적인 의견이라곤 하지만, 일에 대한 스트레스가 곧 상사 및 부하직원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 높으니깐요. 물론 아니곳도 있겠지요?
이러한 상황에서는 저는 제가 늘 우물안 개구리였으면 좋겠습니다.
5. 아버지는 차라리 회사가 편했다.
직장인은 회사가 편할때가 있습니다. 저도 가끔 그럴때가 있습니다. 메여있는 일에 대한 불안감도 있었으며, 집에서 대우 받지 못하는 상황이 있는 아버지들일 경우 더더욱 그랬으리라 봅니다. 직장 상사들만 봐도 대부분 회사 오는게 맘 편하다는 사람이 참 많기도 했습니다. 왜냐하면 가정내에서 적으로 설정된 느낌을 받았을겁니다. 그게 아니라면 가정내에서 나의 책상은 진작에 빠져있었을거니깐요. 저 또한 거실에 있는 아버지가 왜 그리 못마땅했는지...
때론 누군가에게는 아버지라는 감성정인 존재가 되었을수도 있고, 현실적인 아버지, 능력 넘치는 아버지, 친구같은 아버지, 무능력한 아버지 등등 누군가에게 다 그 느낌이 달랐을겁니다. 오늘 제가 말씀드린 아버지는 필자의 아버지 세대를 일컽습니다. 지금 제 나이가 10살 이하는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아버지는 경제성장의 주체이자 피해자였습니다. 잘해봤자 본전인 아버지의 삶을 위로하는건 술 밖에 없을거라 생각이 듭니다.
사실 이러한 주제로 오늘 글을 쓰는것 자체가 너무나 슬픈이유는 저 또한 지금 그런 느낌을 점점 받으며 일을 하고 있다는 겁니다. 물론 세대가 다르니 그정도로 치지만 징징 거리는 것으로만 보일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건 미래에 대한 기대감... 비전이 그리 좋아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열심히 일을 해도 대우받지 못하는 점이 가슴아플뿐입니다.
6.앞으로의 적은 과연 누구로 설정될것인가
적이랄까.... 제가 느낀 경제, 경쟁 사회에서 먹고 사는 싸움에서 적은 시시때때로 바뀝니다. 명확한 적이 없습니다. 굳이 하나를 두자면 그건 "돈을 위한 적"이 겠지요. 이겨야 그 자체를 내가 획득하는거니깐요. 근데 너무 추상적입니다. 실제는 돈을 볼기위해 이렇게 고군분투하는데 어떻게 그 과정을 이기고 버티느냐고 문제입니다. 누구로 적을 두느냐는 단편적인 상황이 아닌거 같습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 아주 할말이 많습니다만. 그건 다음에 제가 따로 넔두리 할것이기때문에 스킵하겠습니다. 저의 결론은 남을 적으로 두는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신념이 더 중요하고, 행함이 진정한 선이라고 하겠습니다.
너무 암울한 내용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알아야 슬프고, 고마우니깐요. 앞으로 나올 애니메이션과 게임의 끝판대장은 아버지가 아닌 실질적인 사회의 악이라는 존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늘 아버지가 적이라는 걸 봐온 우리의 마지막 모습은 "아차!" 싶었으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