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학자 의병장 전유형과 화상흉터치료

in kr •  7 years ago 

전유형 [全有亨] 본관은 평강(平康). 자는 숙가(叔嘉), 호는 학송(鶴松). 아버지는 전인(全絪)이다.
괴산의 유생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헌(趙憲)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다.
이듬해 왜군을 방어하기 위한 책략 10여조를 올려 선조의 칭찬을 받았으며, 재주를 인정받아 군자감참봉에 임명되었으나 아버지의 상을 당해 사임하였다. 이 때 다시 민심수습방안 등을 상소해 유성룡(柳成龍)으로부터도 주목받아 1594년(선조 27) 특별히 청안현감에 임명되었으며 충청도조방장을 겸해 왜적의 격퇴에 노력하였다.
1603년에는 붕당타파·세자보호 등을 포함한 시사(時事)에 관한 15조목의 소를 올려 조정에 파문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1605년 40세의 나이로 정시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해 감찰로 발탁되었으나 전란 중에 부모의 상을 의례에 맞게 치르지 못했다는 사간원의 탄핵으로 파직되었다.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다시 서용되어 함흥판관 등의 외직을 거쳐 분병조참의·광주목사(廣州牧使)·형조참판 등을 지냈으며, 이이첨(李爾瞻)과 세력을 다투던 임취정(任就正)과 결탁해 이이첨을 탄핵하는 소를 올리기도 하였다.
의술에도 조예가 깊어 광해군과 왕비의 병을 고치는 데 참여했으며 <오장도(五臟圖)>도 그렸다. 인조반정이 일어난 뒤에도 재능을 인정받아 문안사로 발탁되어 모문룡(毛文龍)에게 가서 군량을 계속 대기 어려운 연유를 설명하고 이를 주선했으며, 평안도를 내왕할 때 창성·의주 등 성의 방비상태를 아울러 살피고 돌아왔다.
1623년(인조 1) 동지중추부사 때 이유림옥사(李有林獄事)가 일어나자, 그를 석방해 벼슬을 주어서 그로 하여금 당류를 고변하게 하자고 청했다가 조정을 멸시했다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되었다. 이듬해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난군과 내응했다는 무고를 받아 정상적인 절차도 없이 성철(成哲) 등 37인과 함께 참형을 당하였다.
그 뒤 신원(伸寃 : 억울하게 입은 죄를 풀어줌.)되어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1742년(영조 18) 괴산의 화암서원(花巖書院)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학송집』 1권이 전한다. 시호는 의민(義敏)이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유형이 조헌과 같이 일본군을 격파하던 일화는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일본군이 충청도 청원으로 진격하면서 초정리 근처 숯고개에 이르렀을 때였다. 고갯마루에 ‘조선 의병장 전유형’이라는 커다란 깃발이 세워져 있고 수십개의 상자가 비단으로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일본군들은 상자에 보물이 들은 것으로 생각하여 다투어 상자를 열었다. 그러자 상자에서 수만 마리의 벌들이 쏟아져 나와 일본군을 쏘았다. 일본군은 혼비백산하여 멀리 달아났다.
“조선인들이 기이한 작전을 쓰고 있다.”
일본군은 숯고개에서 물러났다가 다음날 다시 진격했다. 그런데 숯고개에 또 다시 조선 의병장 전유형이라는 깃발과 함께 수십개의 상자가 놓여 있었다.
“저 상자에는 분명 벌이 들었을 것이다. 상자에 동시에 불을 질러라.”
일본군 장수가 영을 내리자 군사들이 상자에 동시에 불을 질렀다. 그러자 상자가 거대한 폭음을 일으키며 폭발했다. 상자에는 화약이 가득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일본군은 다시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다음날 다시 진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숯고개에 이번에는 遇松而敗우송이패라는 깃발이 세워져 있고 수십 개의 상자가 놓여 있었다. 일본군은 상자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수 없어서 전전긍긍하다가 근처에 사는 노인을 잡아가다 물었다.
“학송鶴松 전유형이라는 글자가 들어 있다.”
노인이 말하자 일본군은 공포에 질려 숯고개를 넘지 못하고 다른 길로 우회하여 한양으로 진격했다.

정감록’엔 이른바 삼절운(三絶運)이 예언돼 있는데 조선의 운수가 세 번 끊길 위험에 처한다는 것인데,“이씨의 운에 세 개의 비밀스러운 글자가 있으니 소나무, 집, 그리고 밭이라(李氏之運 有三秘字 松家田三字也)”고 한 구절이 그것을 집약하고 있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소나무, 집, 그리고 밭이 최적의 피란처란 뜻이다. 소나무(松, 명나라 장수 李如松) 덕택에 임진왜란을 넘길 수 있었고 왜군들은 송자 들어간 글자는 피했다. 병자호란은 겨울철에 일어난 전쟁인 데다 단기간의 전쟁이라 집에 조용히 머문 사람은 무사했고 멀리 피란간 사람들은 도리어 혹한을 만나 얼어 죽었다는 이야기다. 밭이 피란처가 되는 것은 세 번째 위기가 닥쳐올 때라고 했다. 필자는 밭을 십자가라고 보며 정감록은 이벽처럼 천주교인이 지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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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 전자를 닮은 십자가

아무튼 화약을 모르고 불에 붙이면 화상을 입게 된다. 임진왜란으로 조선후기가 재건이 어려웠듯 화상은 그 이후에 흉터를 남기기 쉽다.
이런 불에 데인 화상흉터는 강남 www.imagediet.co.kr 자향미한의원에서 화상흉터침인 BT침으로 치료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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