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 나서고, 길을 찾고, 길에 이르다. '꽃들에게 영광을' 1. 길

in kr •  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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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에서 태어난 애벌레 한 마리가 태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먹고 자고 싸고 하면서 몸을 키워가다가 어느 날 문득 생각을 했다.

" 이 세상에는 먹고 자고 싸는 일 이외에 다른 무엇이 있을 거야."

그리고 그 까만 줄무늬 애벌레는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나무를 내려와 세상을 여행하기 시작한다.
먹고 자는 그 이상의 삶의 가치를 찾기 위해, 그리고 거대한 탑에 대한 말을 듣는다. 그 탑을 올라가면 벌레들의 천국을 볼 수 있기에 수많은 벌레들이 그 탑을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계속

자연의 상징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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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내 인생의 책으로 주제를 삼는 책들은 거의 가 학창 시절에 읽었던 책이다. 읽을 때에 하도 어려워서 몇 번 반복해 읽었던 책이라 글을 쓰면서도 그 책을 다시 읽어보지 않고 쓸 정도로 내용이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책이다. 또 지금까지 내 삶의 어느 고비에서 그 의미와 내용을 곱씹어서 내 살과 뼈가 되었거나 무의식에 가라앉아 내 인생의 눈이 되어 준 책이다.

이 책들은 삶의 본질을 말하는 책들로서 실로 명작들이다. 세월이 흐르고 시간이 가도 의미가 절대로 퇴색되거나 시대에 뒤쳐지거나 맞지 않거나 하는 책들이 아니다. 2천 년 전의 예수나 석가모니 붓다의 가르침이 이 시대의 사람들의 심리를 너무도 잘 설명해주고 아직도 감탄할 만한 지혜와 해법을 주는 것처럼 이 책들도 결코 퇴색되지 않을 것이다 .

상징이나 은유가 가진 힘은 시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상징과 은유 그것은 자연의 언어이고 이 세상에 드러난 형태 언어다. 말이라는 추상적 약속과는 다른 원시부터 어쩌면 신이 인간을 창조한 그때부터 있어왔던 태곳적 언어다. 이 언어들을 듣고 해석하는 일은 정말로 재미난 일이다. 난 이런 일들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긴다. 흘러가는 시간이 아깝다.

아마도 내가 이런 언어들을 깨우친 것은 어릴 적 읽었던 동화들 때문이 아니었나 싶은데 그중에 하나가 이 책 "꽃들에게 영광을! "이다. 지금은 "꽃들에게 희망을" 이라는 제목으로 나와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초등학교 때 읽었던 책이다. 이 책을 읽고 나는 자연 속에 우리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언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내 탐구가 시작되었다.

이 동화를 읽다보면 애벌레가 자기가 태어난 나뭇잎에서 내려와 탑에 이르고 또 탑에서 꽃밭까지 걸어간 애벌래 일생의 길이 아주 선명하게 보인다. 이 단순한 애벌레의 삶의 행로를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이것은 사람이 살아가는 삶의 행로와 같다. 중간중간 애벌레가 목표로 하거나 머무는 정류지점 또한 우리의 삶이 거쳐야하는 원형적인 정류지점들을 상징한다. 이 상징들을 우리의 삶의 길과 연관하여 깊숙히 들여다 보려 한다. 인간은 영원히 자연과 그 상징속에서 배우고 삶을 발견하게 되어 있는것 같다. 근 2주가 넘게 이글을 붙들고 있다. 넘 길어서 아마도 몇편에 나눠서 올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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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벌레가 태어난 나뭇잎은 요람이다. 애벌레가 나뭇잎을 기어 내려와 길을 나서는 그림은 아기가 엄마 자궁에서 자라서 산도를 빠져 나오는 그림과 같다. 이것을 우리는 탄생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평생에 한번만 탄생하는것 같지만 조금 다른 관점으로 보면 인간은 평생에 여러번의 탄생 과정을 거친다. 아니 사람은 평생 탄생의 과정을 계속해서 거치며 성장한다고 볼 수 있다.

탄생을 의미하는 것은 길이다. 그래서 길에 나서는 것. 길을 걷는 것을 우리는 탄생의 시작이라고 볼수 있다. 흔히들 생각하듯 크게 보아서 몸의 탄생을 첫번째 탄생이라고 본다면 그 자신의 진정한 삶이라고도 할 수 있고 또 영혼이라고도 할 수 있고 그 자신의 혼이나 정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을 찾기 위해 길에 나서는 것은 편의상 두번째 탄생이라고 본다.

첫번째 몸의 탄생은 어쩌면 우리의 의식적 의지와는 관계가 적은듯이 보이는 탄생이다. 이 탄생은 우리의 의지보다는 부모의 의지가 더 강하게 작용하는 탄생이다. 그러나 두번째 탄생은 오로지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 자신을 태어나게 하는 탄생이다.

어린 아이에게는 태어나서 걷기를 배우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성장하면서 그들은 언젠가는 두번째 탄생을 위해 자기 걸음으로 걸어서 길에 나서야 한다.

우리가 길에 나선 때는 언제였을까? 언제 나라고 말할수 있는 내 정신이 태어났으며, 언제 내 삶의 신념이, 내 영혼이 반짝 빛을 내었던가? 언제 '이게 나야' 라고 할수 있는 '나'가 단단하게 되었던가?

밀레니엄세대 이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길에 나서는 때가 있었다. 그러나 밀레니엄 세대로 들어서면서, 인터넷과 유튜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휴대폰으로 모두 사용할수 있는 이 세대에 와서는 길에 나서는 일들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길에 나서는 일은 고사하고 더더욱 깊은 은신처로 후퇴하는 것이 이시대의 현상중 하나다.

이시대를 대표하는 현상은 은둔형, 은둔형 외톨이다. 그들은 사회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필요한 접촉은 휴대폰으로 가상세계에서 거의 다 해결하고 실제적 생활비용 등을 부모나 가족에게 의지하며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사춘기 아이들의 질풍노도는 어쩌면 유전자나 혹은 무의식에 남아있는 이 길에 나서고 싶음에 대한 갈망이고 욕구 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오랜 선조일수록 더 어린 나이에 길에 나서는 것이 통과의례였었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 새로운것, 낮선것에 대한 모든 탐구의 길이 막혀 있기에 그들의 에너지는 미칠것 처럼 날뛰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은둔형 외톨이 이시대에는 이 사춘기 마저 생명력을 빼앗기고 시들어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는 먹고 자고 배설하는 일 이외에 다른 무엇이 있을 거야." 초등학교 때 인가? 나는 이 구절을 읽고 아마도 처음으로 철학적인 생각을 하려 했던 것 같다. '먹고 자고 배설하는 일이 삶의 전부가 아닌가? 먹고 살고 어른이 되고 이것 이외에 다른 진짜 무언가 있다는 것인가?'

사람의 정신은 먹고 자는 것만으로는 커지지 않는다. 사람의 정신은 질문으로부터 성장한다. 질문이란 알고자 하는 욕구가 일으키는 것이고 이 알고자 하는 욕구로 인해 길을 나서게 된다. 애벌레가 자신이 태어나서 자란 나무를 떠나듯 사람도 자신을 지켜주고 키워준 안식처를 떠나게 된다.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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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답을 '알고 싶음'이 또한 길을 나서게 하는 원동력이다.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자각한다면 알고싶음 이 생겨난다. 순수한 어린시절에는 '나는 모른다'는 자각이 아주 쉽다. 그러나 그것은 곧 어른들로 인해 심하게 압력을 받아 그만 부끄러운 것이 되어 버린다.

모른다는 자각이 순수한 호기심으로 변해 차츰 알고싶음으로 스스로 한걸음 나아가기도 전에, 부모의 질타와 한숨이 쏟아지고 비교의 잣대를 들이대고 그리고 질려서 쳐다보기 힘들 정도의 많은 정보들 (가르침과 책, 학원 ,심지어 개인교사)들이 쏟아 진다.

이렇게 아이들의 최초의 자신의 상태에 대한 자각은 성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대단히 부끄럽고 열등한 것이 되어 가능한 빠르게 버려야 할 것이 되고 타인에게 들키면 안되는 것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이런 '모른다'를 자각하는 순수한 의식이 무의식속에 가라앉아 버리고 왜곡되면 안다를 위장하여 아는체하는 가짜 정체성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모른다'가 보통 위험할 때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게 될 때인데 보통 어린아이들의 '모른다'는 그다지 위험하지 않다. '모른다'를 고집하지도 안을 뿐더러 '안다'로 위장하거나 왜곡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들의 '모른다'는 순수해서 어른들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아주 쉽게 호기심과 탐구의 길로 나서게 할 수 있다.

여러가지 이유로 '안다'는 것은 이렇게 중요한 것으로 우리에게 심어지기 때문에 사람은 성장하면서 '안다. 안다. 안다'가 쌓아간다. 그리고 그 안다가 다른 사람들과 나눠지고 밥벌이가 된다. 이 '안다'로 어느정도 밥먹고 살게 될 즈음이면 그것은 어느덧 대단히 튼튼한 것이 되어 있다.

튼튼한 것이 된 것 까지는 좋은데 그것이 너무도 견고하게 너무도 높이 그 자신을 둘러 싸고 있어서 결국 그것이 그 자신을 가둬 버리게 된다. 그로인해 또 다른 고통이나 실패가 생겨난다. 이때는 안다에 대해 믿음이 철통같아진다. 왜냐하면 그것이 밥먹고 살게 해준 것이기 때문이다. 밥먹고 살게 해 준것은 적어도 잘못된 것이거나 버릴것은 아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때 쯤에 '안다'는 관성이 생겨서 그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더더욱 열심히 그리고 미친듯이 더욱더 많은 앎을 필사적으로 찾는다. 대부분의 현대문명은 미친듯이 '모른다'의 세상을 파괴하고 없애버리며 '안다'의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그렇게 문제들을 해결하고 또 해결하고 편리와 재화를 만들어 내고 또 만들어 낸다. 그런데 그러면 그럴수록 뒤로 '모른다'가 쌓여 간다. 해결할수 없는 더 복잡한 난제들이 쌓여가는 것이다.

개인도 그렇다. 삶의 어느 경계에 이르면 이 안다로 절대 해결할 수 없는 어떤 지점에 이르게 된다. 이때는 놀랍게도 다시 모른다로 회귀한다. '안다'는 눈뜬 장님에 비유할수 있다. 눈을 뜨고 있어도 보지 못하는 것 처럼, 안다는 생각은 자기가 아는 것 이외에는 보지 않게 만든다.

그러나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해답은 이미 자기가 아는것 속에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해답을 보려면 '안다'를 버리고 '모른다'는 마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모든 것을 다시 바라볼수 있다. 그때 우리가 모르는 것 속에서 해답이 드러나게 된다.

음료나 음식 혹은 술의 맛을 테스트 할 때 눈을 가리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하는 것 또한 같은 이유다. 눈으로 음료의 색깔을 보면 '안다'가 작동하고 '안다'는 '그거야'라는 신념내지 확신을 일으키면서 그것이 그것이 아닐 다른 모든 가능성에 대해서는 감각을 닫아 버리기 때문에 맛에 대한 오류나 착각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일상사는 사실 이런 일들의 연속이라고 할수 있다. 우리가 실수하고 실패하는 많은 일들을 잘 관찰해 보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아닌 이런 '안다'는 감각에 속은 결과가 많다.

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그들은 자신들이 내린 어떤 결론 '안다'에 고정되어 있다. 그들은 식상하고 심심하고 재미없고 새로울게 없고 변화될게 없고 희망이 없는 그런 '안다'의 상태에서 살고 있는것이다. '모른다'가 주는 싱싱한 호기심과 새로움에 대한 기대 변화에 대한 탐구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상태다. 그들은 자신이 살아온 혹은 경험한 일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해석의 세계를 '안다'로 규정하고 다른 가능성을 탐구하거나 받아들이지 않는다.

보통 그 경우에는 마음이 대단히 경화되어 있다. [주의;물론 우울증의 원인을 단순하게 이것 하나만으로 규정할수는 없다. 대단히 복잡한 여러가지 요인이 함께 작용하는 것이기에 이것만으로 단정을 지을 일은 절대 아니다. ] 이렇게 의식의 상태가 '안다'로 경화 된 곳에서 우리는 실패 실수같은 오류 그리고 두려움 이나 불안 우울같은 심리적 문제 그리고 독재성이나 완고함 폭력성같은 성격적 문제들을 자주 발견한다.

우리가 '모른다'하는 세상이 더 큰 것, 이건 실로 다행이다.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긴장이나 두려움, 떨림을 가질수는 있지만 그것을 하나씩 알아갈 때 , 눈이 조금씩 열려갈때 그때 우리는 끝없이 싱싱한 삶으로 나아갈수 있기 때문이다.

건강한 호기심을 가진 사람은 모름이 끝나지 않기를 원한다. 그들은 모르는것을 마주 할때 마다 행복해한다. 인류를 행복으로 이끌어 주는것 이것이 '모른다'이다. 이 '모른다'는 언제나 그 스스로 우리를 풍요롭게 해주는 자원이며 그것을 발견하게 하는 가능성의 눈이다. '안다' 또한 세상을 바라보고 인지하도록 시야를 주는'눈'이다. 그러나 '모른다' 또한 감고 있는 눈이 아니라 뜨고 있는 눈이다. 우리는 '안다'와 '모른다'는 두개의 눈으로 세상을 봐야 한다.이 두개의 눈이 실로 하나의 시야sight를 만들어 낸다.

모든 학자와 연구자들이 이 '모른다'의 세상에서 살아간다. 우리는 모르는 세상을 발견해야 한다. 그 모르는 세상은 질문을 통해 발견되고 또 질문을 통해 탐험된다. 이론 물리학자들의 이론은 질문으로 부터 시작된다. 질문은 실험을 통해 검증되어 이세상의 발전을 이끄는 법칙으로 자리잡게 된다.

또한 선불교의 조사들은 질문으로서 사람들의 정신을 깨어나게 하고 진리를 발견하게 한다. 그들은 우리가 익히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존재의 가장 근본적인 '안다'를 뒤흔든다. 태어나서 온갖 생생한 희노애락을 겪어 왔으며 의심할 바 없는 몸과 마음으로 여기 있는 나 자신에 대해 물으라고 한다.

'나는 무엇인가?'

'이 몸은, 이 마음은 진짜 나인가? '

처음 이 질문을 접하게 되면 실로 정신이 멍해지는 충격을 받지 않을수가 없다.

'안다'는 주제를 마치기에 앞서 다소 앞의 문장과 연결성은 떨어지나 내가 좋아하는 그리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격언을 소개하고 싶다. 좋은 사색 거리가 될것이다. '의식혁명'의 저자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가 그 책에서 한 말이다.

'모든 해답은 그것이 주어진 의식 수준에서만 진실이 될 수 있다. '

.....If you want to continue on the 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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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전문 줄거리 요약. 저자 트리나 포올러스. 제목' 꽃들에게 희망을'


나뭇잎에서 태어난 애벌레 한 마리가 태어나자마자 본능적으로 먹고 자고 싸고 하면서 몸을 키워가다가 어느 날 문득 생각을 했다.

" 이 세상에는 먹고 자고 싸는 일 이외에 다른 무엇이 있을 거야."

그리고 그 까만 줄무늬 애벌레는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나무를 내려와 세상을 여행하기 시작한다. 먹고 자는 그 이상의 삶의 가치를 찾기 위해, 그리고 거대한 탑에 대한 말을 듣는다. 그 탑을 올라가면 벌레들의 천국을 볼 수 있기에 수많은 벌레들이 그 탑을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까만 줄무늬 애벌레가 그 거대한 탑을 찾아갔다. 끝도 없는 거대한 탑이 하늘로 솟았는데 그건 모두 벌레들의 몸이 쌓여서 만들어진 탑이었다. 수많은 벌레들이 사방에서 모여 그 탑을 오르고 있었다. 까만 줄무늬 애벌레도 그 탑을 올라갔다.

동료의 몸을 밟고 밀치고 떨구어 죽게 만들면서 그저 위로 위로 올라갔다. 그러다가 노란 줄무늬 애벌레를 만나게 되고 둘은 그 탑에 대해 회의감이 있던 차 같이 탑을 내려온다. 그리고 숲에 들어가서 사랑을 나누며 알콩달콩 살게된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검은 줄무늬 애벌레에게 탑에 대해 남아있던 미련이 올라왔다. " 왜 그 탑을 내려왔을까?" " 그 탑을 다 올라갔다면 그 꼭대기에서 천국을 보았을까?" 그러다가 끝내는 노란 줄무늬 애벌레를 숲에 남겨둔 채 다시 그 탑을 오르기 시작했다. 다시 경쟁에 뛰어 들어서 , 동료의 몸을 밟고 밀치고 떨구어 죽게 만들면서 끝끝내 있는 힘을 다해 꼭대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꼭대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올라왔던 것보다 더 높은 곳에 푸른 하늘이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멀리 평원을 바라보니 자기가 유일무이한 탑이라고 생각하고 올라왔던 그 탑과 비슷한 탑들이 평원에 수없이 늘어서 있는 것을 보았다. 모두들 자기처럼 환상을 믿고 기대하고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발아래에서는 정상을 보겠다는 집념을 가진 벌레들이 끝도없이 계속해서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허탈과 허무 감속에 주저앉아 있을 때 노란 나비 하나가 나타나서 말을 걸었다. 검은 줄무늬 애벌레는 드디어 꼭대기에서 만나는 천사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 노란 나비는 노란줄무늬 애벌레였다. 그녀는 어떻게 천사와 같은 나비가 되었는지를 알려주었다.

검은 줄무늬 애벌레는 노란 나비의 격려 아래 다시 탑을 내려왔다. 그리고 숲으로 들어갔다. 나뭇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몸에서 실을 뽑아 고치를 만들고 그 안에서 홀로 외로움과 배고픔과 추위를 견디며 겨울을 났다.

그리고 봄이 되어 고치를 뚫고 나와 검은 나비가 되었다. 그리고 검은 나비는 노란 나비와 함께 꽃밭으로 날아가서 꽃들의 가루를 옮겨주며 행복하게 살았다.

** 동화 전편에 대한 해석을 다 올리려다 한 주제씩 잘라서 올리는데도 기네요. 긴글은 잘라도 길어요^^
너무 긴 글을 올리는건 아닌지 살짝 염려가 되네요. 긴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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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정말 대단하십니다... 생각의 깊이가 남다르시네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

길어도 좋은글이면 모두 이해해주실겁니다 ^^ ... 인생의 의미를 따라가는 동화내요 스팀에서 나비가 되는 여정같아요 ㅎㅎㅎ

네. 고맙습니다. 네 스팀에서도 나비 많이 나오길 기도하겠습니다.

내 인생의 눈이 되어 준 책... 저에겐 어떤 책들이 있었을까!
'꽃들에게 희망을' 초등학생때 읽은 책을 아직 기억하고, 또 거기서 의미를 찾으셨다니... 저와는 다른 세상의 사람인듯! ㅎㅎ

하하. 직업과 연관이 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읽어주시는 분들이 있으시면 그런 책들과 그 내용에 대한 사색을 꾸준히 올릴 생각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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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주말 되세요!

긴글이어도 좋은 글은 끝까지 읽게 됩니다 ㅎㅎ
오늘도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 .
이시스님 덕에 제 닉네임 하나더 추라 할라고요.
별님으로 ㅎㅎㅎ

하아~별님, 오늘도 이렇게 반짝하고 나타나시니 반갑습니다. 늘 잘 읽어주셨다 하셔서 기쁩니다. 좋은 저녁 되세요.

우리의 인생을 비유한 동화군요. 삶의 목적을 찾아가는 한 인간의 과정이 그려집니다. ㅎㅎ 좋은글 읽네요

네, 참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동화입니다

잘 읽었어요. 어릴적에 굉장히 좋은 명작을 읽었네요 ㄷㄷㄷ
역시 배우신 분 ㅎㅎㅎ

글이 너무 고급지네요. ^^
제 글 보다가 이시스 님 글 읽으니깐 생각이 많아집니다^^;;

긴글 읽어주시고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정말 고급지다는게 맞는 표현이네요... ㅋㅋ

감사합니다 풍류판관님의 글도 언제나 풍부하고 아름답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허걱, 쑥 스크롤하면 끝이 보일까? 아니 2번, 아니 10번을 해도 다 안넘어가서 다시 처음으로 복귀했습니다. ㅎㅎ 한참 걸렸습니다.
모든 해답은 그것이 주어진 의식 수준에서만 진실이 될 수 있다. 라는 말리 참 마음에 와닿네요.

넘 길어서 죄송합니다. 장문충이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아이고, 숨차라.

팔로우했어요.

반갑습니다. 곧 방문해서 팔로하고 글도 읽겠습니다. ^^

꽃들에게 희망을 노란 삽화가 담겨있던 책 언뜻 기억나요:) 다시 보게되니 추억이 새록새록이군요.

네, 그런데 그 동화가 언제나 제 마음속에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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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도 사진도 수준급입니다. 팔로우보팅하고 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