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도 다 이해하지 못할 가사이지만, 푸르른 이십 대 초반을 보내던 내게는 제목과 가사 첫 한 구절이면 충분했다.
노래가 시작되는 첫 마디, She's not a girl, who misses much.
놀라 찾아본 제목은, Happiness Is A Warm Gun.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슴을 찌르르하게 흔들만 했다.
***
까마득한 옛 이야기를 되짚어 보자면.... 시력이 지독히 나빠서 어떻게든 군대를 피해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런 저런 복잡한 이야기가 있지만 생략하고- 신체 검사에서 4급 판정을 받고 현역이 찍혀 나왔습니다. 어떻게든 한 몸 편하게 군생활을 해야겠다는 일념 아래 시험을 보고 카투사병이 되어 미군 부대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 후방에서 수송부대의 행정병으로 나름 평온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그조차도 미칠 것만 같았지만.
시곗바늘이 멈춰있는 것처럼 느껴지던 그 당시에 제법 많은 음악을 들으며 지냈습니다. 당시에는 이미 재즈에 푹 빠져 지내던 터라 재즈 이외의 음악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비틀즈는 좀 들어봐야 하는 게 아냐?' 하는 심정으로 화이트 음반을 사서 들어보았습니다. 그 더블 시디에는 어릴 적부터 라디오에서 들었던 곡들과 처음 들어보는 곡들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죽 들어보다가 첫 번째 시디의 중반부가 넘어가서 이 곡, Happiness Is A Warm Gun이 나왔을 때 뭔가 멍해지면서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더군요. 곡이 조금 어색한 것 같은 느낌, 그러나 강렬한 그 무엇이 있었습니다. 왠지 모르게 이 곡에 사로잡혀 제법 여러 번 반복해서 듣고는 기억 저 편에 미뤄두었습니다.
나이가 좀 더 들고, 재즈를 공부하며 석사 학위까지 마치고, 이런저런 음악을 연주하며 프로페셔널 뮤지션으로 살아가던 어느 날 이 곡이 생각났습니다. 무슨 계기였는지는 도통 기억나지 않지만, 이 곡을 다시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아마도 제법 늦은 밤 시간이었을 겁니다. 몇 년이고 음악을 연습하고 연주하며 훈련해 온 터라 똑같은 곡이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것들이 훨씬 더 구체적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왜 어린 시절의 나는 이 곡에 그토록 빨려들었나 하는 질문에 대답을 얻게 되었죠.
저는 모호함을 좋아합니다. 한 번에 바닥까지 다 이해될 것만 같은 음악을 즐겨 듣지 못하는 성격입니다. 어쩌면 그 때문에 재즈를 좋아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도통 알 수 없는 음악이었으니까요. 지적 허영이라 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만, 그런 모호함에 반응하는 제 감정만큼은 일관됩니다. 근데 이 곡이란 그 모호함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인트로가 없습니다. 바로 노래가 시작되죠. She's not a girl who misses much 하면서. 그것만으로 힘겨운 사랑을 하고 있는 어떤 청년의 심장을 찌르기엔 충분하기에 두루루루루, 오예, 하면서 바로 넘어갑니다, 그 어떤 반복도 하지 않고. 그리곤 드라이브가 걸린 기타 소리가 나오며 새로운 장면에서 모호한 마디수로 음악을 전개합니다. 세 마디, 두 마디, 두 마디, 두 마디이기도 하다가 두 마디, 두 마디, 세 마디, 두 마디이기도 합니다. 가사를 따라가는 이 불규칙한 호흡의 길이.... 모호함이겠죠. 그리곤 기타 간주가 따라 나옵니다. 일반적인 곡이라면 한참 뒤에, 곡의 후렴구가 마음껏 음악의 감정을 끌어올린 뒤에라야 간주가 나왔을 텐데 아직 한참 설익은 상태로 기타 간주가 스쳐 지나갑니다. 그리고 또 몇 번이고 Mother Superior jump the gun 하고 중얼거립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확 밝아진 화성 위에(굳이 설명하자면 I-VI-IV-V입니다만) 후렴구가 등장합니다. Happiness Is A Warm Gun 하고 리드하면 코러스는 Bang Bang, Shoot Shoot 하고 부릅니다. 이전까지 음울하던 기운에서 확 밝아진 화성이며 음색으로 따뜻한 총이야 말로 행복이지, 쏘란 말야 하고 귓가에 소리치는 것, 이보다 더한 패러독스가 있을 수 있을까요. 그리곤 음정을 버린 외침이 계속됩니다. When I hold you in my arms, And I feel my finger on your trigger, I know no one can do me no harm, Because happiness is a warm gun, mama, Happiness is a warm gun, yes it is 하면서 말이죠.
이 남자는 실제로 총알이 떠나가 버리고 난 뒤 권총에 남겨진 온기를 느끼고 있는 걸까요? 그 총구는 과연 누굴 향했던 걸까요? 혹시 그 자신은 아니었을까요? 쓰러져 머리에서 피를 흘리며 느끼는 행복을 노래하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이 모든 것이 환상이었던 걸까요? 무어라 명확히 대답하지 않는 그 모호함이 제게는 아름답습니다.
*과거에 페이스북, 브런치 등에 올렸던 글들을 틈틈이 옮겨오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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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 하나하나가 찌르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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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가요? 시간 내서 읽어주신것 감사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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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듣는데 참 묘한 노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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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노래 맞죠. 그런 기이한 느낌을 좋아하는 나는 뭔가 싶은 생각을 합니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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