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라디오] No Surprises by Radiohead

in kr •  7 years ago  (edited)


2003년 쯤이었을 것이다. 이미 적지 않은 시간을 재즈밖에 모르는 jazz snob으로 살고 난 뒤였다. 나는 조금 아는 이들이 그렇듯 끝 간 데 없이 오만해져 있었다. 재즈 이외의 다른 음악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러던 시절에 처음 라디오헤드를 들었다. <OK Computer>였다. 흐릿하게나마 그 앨범 재킷이 기억에 남아 있다. 벌써 십 년이 훨씬 지난 일이니 그만큼의 기억이라도 남아 있는 것이 다행이다.


존과 함께 연주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우리는 미국 친구들이 흔히들 그렇게 하듯 종종 한 차로 다니곤 했었다. 존의 차가 큼직한 SUV였기 때문에 학교 주차장에서 만나 그의 차에 내 악기를 옮겨 싣고 출발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내가 기름값이라도 낼게, 하며 아주 가끔씩 몇 달러를 내밀기도 했지만 사실은 예의상 물어보는 정도였다. 크게 고마워할 만하지도 않은, 그런 정도의 호의를 선뜻 잘 베푸는 친구들이 있었다. 어쩌면 혼자 한 시간씩 운전해 가는 길이 지루하기도 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돌아오는 길이라고 기억하는 이유는 창 밖이 온통 검은색이었던 것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그때는 왜인지 모르게 마음이 그 음악을 거부했었다. 두어 곡 듣다가 내가 시큰둥해하는 것을 느꼈는지 존이 이 음악 어떠냐고 물었고 나는 너무 하얘서, 서늘하게 차가워서 싫다는 말은 차마 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종류의 음악이 아니라고 대답했었고 그럼 다른 걸 듣자며 존이 시디를 바꾸었다. 아마도  재즈 시디로 바꿨을 텐데, 어떤 음악이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라디오헤드는 기억에 남았다.
  

어쩌면 싫지 않았었는지도 모른다. 왠지 모르게 빨려 들어 가는 듯한 기분과 유치한 롹음악 따위, 하는 감정이 내 안에서 싸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다면 그 장면이 유독 선명하게 내 기억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그러고도 거의 십 년이 지나서야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가 내 귀에 들어왔다.
  

라디오헤드의 음악은 내게 젊은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떠오르는 젊은 시절은 인생을 눈앞에 펼쳐놓고는 어쩔 줄 몰라하던 십 대 후반과 이십 대 초반이기도 하고, 앞뒤 살피지 않고 달려가던 이십 대 후반이기도 하다. 혹은 라디오헤드를 끝없이 반복해 듣던 고속도로 위의 삽십대 후반이기도 하다. 모두가 내 젊은 시절의 토막이다.
  

젊은 시절에 감수성이 예민하다고들 한다. 얼마간 맞고 또 틀리기도 하다. 젊은 시절에 예민한 감정, 감각이 있다. 사랑이건 외로움이건. 젊은 날을 죄다 흘려보내고 난 지금의 나는 아쉬움 섞인 그리움, 그런 회한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오늘 낮, 한적한 백화점에서 라디오헤드의 노 서프라이즈를 듣자니 울컥 그런 감정에 휩싸이고 말았다. 천장을 올려다보고 스피커의 위치를 찾아 그 아래 서서 고개를 조금 치켜들어 음악을 들었다. 여전히 라디오헤드는 젊은 날을 떠올리게 했고 나는 이제 그 젊음이란 시기를 지났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늦깎이 인생입니다. 주저주저하다 이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음악 판으로 뛰어들고, 글은 삼십 대 중반이 되어서야 읽히기 시작했으니까요. 보통 중고등학교 시절에 빠져들 법 한 음악에도 뒤늦게 마음을 열곤 하는데, 라디오헤드가 저에게는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몇 번의 계절을 라디오헤드의 음악만 들으며 보냈습니다. 뒤늦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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