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니의 인터뷰#3] 딸 바보의 걱정

대상: 국제결혼을 한 30대 후반의 지인. 업무관계로 만난 사이지만, 사람이 좋아 종종 만나서 술도 한 잔하고, 취하면 형, 동생 하며, 집에 갈 때 택시비 하라고 손에 쥐어 준 것이 술 값 영수증인 사이…

쟈니 : 국제 결혼 하는 법을 알려 달라.
싸미 : 다짜고짜 그게 무슨 말인가…
쟈니 : 새해 컨셉이다. 갑자기 훅 치고 들어가는 거. 때리거나 깨물지는 않을 테니, 너무 무서워 마라.
싸미 : 이미 당신 얼굴만으로도 충분히 무섭다.

싸미(สามี)는 태국어로 “남편”이란 뜻으로, 이름대신 사용.
싸미는 여느 젊은 친구들처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잦은 야근과 주말 출근등으로, 있던 여자 친구와도 헤어졌고, 그 이후, 직장을 옮겼는데, 첫번째 조건이, 야근은 그렇다 쳐도, 주말은 일 안 하는 회사에 다니고 싶어, 현재의 직장으로 이직해와서 만족하며 다니고 있다.
이전 직장 퇴사 후, 혼자서 떠난 동남아여행에서, 태국에 갔을 때, 현재의 아내를 만나, 지금은 결혼해서 예쁜 딸도 얻어, 오손도손 잘 살고 있다.

(치즈 떡갈비로 유인해, 점심 인터뷰를..)

쟈니: 아내분과 어떻게 만났나?

싸미: 인도네시아-싱가폴-말레이시아-태국으로 루트를 짜서
여행을 갔었는데, 처음으로 가보는 나라들인데다, 혼자서는
처음으로 간 것이라, 그야말로 세상 자유 다 얻은 기분이었다.
혼자 가는 여행이다 보니, 기대도 컸고, 준비도 정말 많이 하고,
특히 인도네시아의….

쟈니: 혹시 박찬호라는 야구선수를 아나? 안다면, 요점만 말해라.

싸미: 반 거지가 되어서 방콕에 입성을 했는데, 돈도 거의 다 떨어지고,
며칠 기다리다 귀국 비행기를 타야 했는데, 정말 난감했다.
저렴한 숙소를 잡아야 했는데, 어디가 어딘 지도 모르겠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 물어 숙소를 찾던 중에,
영어가 되는 처자를 만나게 됐다. 길을 물어보니, 친절히 안내까지
해 주었고, 그 두 명의 여인네들이 뭐라고 속닥거리더니, 어디서 왔느냐
묻길래 한국에서 왔다 그러니까, 잇몸 만개하며, 내가 모르는 한국 연예인
이름들을 대기 시작하는 거다. 내 친구다, 친하다…라고 거짓뿌렁을 했는데,
광대뼈 승천 시키며, 폭풍질문을 쏟아내는 두 여인.. 감당이 안 될거 같아,
실토를 했지만, 괜찮다며, 뻘쭘한 분위기에 있는 나에게 밥먹으로
같이 가자고 하는 거였다. 자기들이 사겠다며… 반 거지 꼴이 되어도
내 인물은 그렇게 빛이 나나보다.

쟈니: 재수없는 소리 하지 말고, 요점만 말하라.

싸미: 그렇게 만났다. 다음 질문…

쟈니: ….OㅅO……싸우자. 나와라.

싸미: 그렇게 밥을 얻어먹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고,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친 자매로, 고향은 작은 시골 마을인데,
방콕에서 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직장에 다니며, 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렇게 방콕에 있는 동안, 저녁에 만나서 셋이서 같이 밥을 먹고,
시켜주는 구경도 다니고 했는데, 한국으로 돌아와서도 연락을 했다.
처음엔 그냥 예의상 감사의 의미로 연락을 한 게, 스마트폰으로 채팅을
하며, 연애하는 사이인 듯, 자주 연락을 하게 되었고, 그렇게 9개월 정도가
지난 후, 보고싶어서 도저히 안되겠더라. 이직한지도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상사에게 술 한 잔 하면서, 결혼 할 사람이 외국인이니, 도와 달라고 이야기 하고,
며칠 간의 휴가를 얻어 방콕으로 갔었다. 정말 반가워서, 울 뻔했다.

쟈니: 결혼이 확정 난 것도 아닌데, 왜 그런 김치국을 상사에게 선물했나?

싸미: 너라면 달리 방법이 있었겠나? 연애에 불이 붙으면, 그
정도 김칫국은 탱크로리에 파이프연결해서 상사의 식도에 바로
연결 할 수도 있다. 그것이 Power of Love 아니겠는가.

쟈니: 무서운 놈… 그럼 그렇게 9개월만에 가서 결혼?

싸미: 결혼이 장난인가. 9개월 동안 채팅으로 밤잠 설친 미혼 남녀가
오랜만에 만났으니, 얼마나 좋았겠나… 그렇게 며칠 안 됐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이건 뭐…
더 보고 싶은 게 아닌가.... 그리고 몇 주가 지났나…임신했다는 소식을 받았다.

쟈니: 누가? 왜? 뭐땜시…?

싸미: 요점만 말하겠다…그래서 결혼 했다.

쟈니: 싸우자. 나와라…..더 자세히 말해달라, 1초 단위로….

싸미: 서로 완벽한 영어는 아니지만, 오히려 그게 더 편했다.
어설픈 영어지만 단어 하나로 감정표현이 된다는 게 신기하기도 했고…
영어 강박증도 서로 간에 없어서…

그렇게 서로 9개월만에 만났으니, 젊은 청춘 남녀가…으이~!
술도 한잔 할 수도 있고…으이~! 손도 잡을 수 있고…으이~! 다 했어!!!

쟈니: 자세한 내용은 6하원칙에 의거 사진 첨부하여 보고서로
만들어 메일로 보내 달라.

싸미: 그렇게 임신소식을 듣고, 난 잘됐다 싶었다.
집에 가서 부모님께 있는 그대로 전하고, 맏며느리 인사 시키겠다고 했다.
평소, 딱히 간섭을 안하시는 부모님이시지만, 외국 며느리라고 하니,
깜짝 놀라셨다. 충분히 그럴 만도 했고, 또 그럴 거라 예상도 했기에,
그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질 거라 믿고는, 다시 회사 상사에게
자초지정을 이야기 하고, 방콕으로 날아가서 그녀를 만났다.

나를 보며 깜짝 놀란 그녀….. 올 거라고 믿었지만, 진짜 이렇게
와줘서 정말 고맙다며 펑펑 우는데, 처음에는 왜 우나 싶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태국이 매춘관광이 워낙 많다 보니,
덜컥 임신 시키고, 자기네 나라로 돌아가서 감감 무소식인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올 거라고 믿었지만, 괜한 걱정에 불안감도 적지 않았을 터….
최대한 빨리 와준 나를 보곤, 더 없는 신뢰와 감사함에 눈물이 났다고 한다.
이 때 더더욱 마음을 굳혔다. 이 사람은 끝까지 내가 지키겠다고..
나 좀 많이 멋지지 않나?

쟈니: 멋짐 인정한다. 만약 그 상황을 쌩 깠었다면...

싸미: 그렇게 다시 한국에 와서, 부모님과 회사에 이야기를 하고,
결혼준비를 해 나갔는데, 알다시피, 동남아국적으로 한국비자 받고
들어오는게 그렇게 쉽지가 않아서, 몇 달 후, 내가 먼저 태국가서
결혼 하고 왔다. 그리고 결혼 증빙서를 가지고 대사관을 가서
아내 비자를 발급 받아, 한국으로 같이 오려는데, 일이 꼬여서,
일단 나 혼자 왔다가 다시 태국 갔다가…정신 없었다.

결국 그렇게 한국으로 오게 되었고, 신혼집을 마련하고, 출산을 하고….
그렇게 정신 없이 있다 보니,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직 한국에서
결혼식을 못 올렸다. 2018년에 한국에서 결혼식을 올릴 계획이다.

쟈니: 뭐 결혼식이야 형식이니, 천천히 올리면 되고…
날 잡히면 꼭 알려 달라. 그건 그렇고 아내분과 아기는 잘 지내나?

싸미: 딸 바보 딸 바보 하길래 뭔 소린가 했다. 지금 내가 그렇다.
아내도 임신 한 채로 한국에 와, 음식도 그렇고, 언어도 그렇고,
출산에 육아에… 산후 우울증인지, 향수병인지,
한 때 감정기복도 심했는데, 지금은 잘 지내고 있다.

쟈니 : 아직 한국말도 서툴텐데, 어떤가?

싸미 : 걱정이다. 운전도 안 되고, 어딜 잘 나다니는 성격도 아니다 보니,
집에서 육아에만 신경을 쓰고 있는데, 다문화 지원센터나 모임에 나가서
한국어도 배우고 했으면 좋겠지만, 그냥 아내가 알아서 잘 하리라 믿고
기다리기로 마음 먹었다. 두 돌이 지난 딸아이가 말이 늦는데,
엄마가 한국말을 빨리 배워서, 아니, 같이 배웠으면 좋겠다.
조만간 딸아이가 어린이집에 가면, 말이 많이 늘 거라 생각한다.

간혹 아내가, 아이 데리고 병원에 가면, 전화하는데, 의사 선생님이나
간호사분을 바꿔준다. 내가 대신 이야기 해주기도 하고,
마트나 관공서 갈 일이 있을 때도, 점심시간에 잠깐 나가서 만나,
처리해주고 오는 경우가 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나아져서,
혼자서도 잘 다니고 있다. 이것도 적응하는 단계라 생각하고,
또 어느정도 적응 되니, 불편하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쟈니: 듣고 보니, 일상의 그런 점들이 있군…
다문화가정을 꾸리게 되었는데, 주변인이나, 사회에 바라는 점과 희망은?

싸미 : 사실, 예나 지금이나 나도 그렇다.
외국인이 지나가면 나도 모르게 한번 더 쳐다보게 되고,
보이지 않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부분들이 많다.

역사적으로 침략을 많이 받아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대외적으로는 세계로 세계로를 외치지면서, 일반 생활에서는
아직 세상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우리나라 지리적 특성상, 이웃 국가로의 교류나 방문이 쉽지
않아서 그런 건지, 단순 여행이 아닌 외국과의 일상적인 교류가
많이 없어서 그런 건지… 그래도 지금은 다문화 가정들도 많이
늘어나고 있고, 사회적 인식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져서,
앞으로 점점 더 융화가 자연스럽게 잘 될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희망한다.

아내야 어른이고, 어느 정도 타국 생활과 문화 차에 대해
인지하고 이해하고, 수용은 하지만, 딸아이가 걱정이다.
행여 자라면서 정체성 혼란이나, 놀림을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가장 크다. 특히 동남아나 흑인계열의 다문화 가정에서
가장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백인계열 쪽은 그나마
덜 하다곤 하지만, 어쨌든 일상의 현실은 뜻하지 않은 곳에서,
작은 눈길과 사소한 말 한마디가 큰 상처를 만들어 내니,
아이걱정에 있어서 이런 부분들이 가장 신경 쓰인다.

쟈니 : 정말 그렇겠다. 걱정이야 되겠지만, 그
럴수록 부모의 역할이 더 중요한데, 부부간의 대화를 잘 하면서 사니,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참으로 보기 좋다.
앞으로는 오히려 더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나?
한국과 태국간의 관련일을 한다던지…

싸미 : 그렇다. 한번은 아내가, 한국과 태국간의 개인무역업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딸 아이가 어느 정도 크고 나면,
양국을 상대로 일을 해보는 것도 좋겠다는 이야기에, 나 역시 환영한다고 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외국에 가는 일이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또 한국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 태국이기에, 오히려 이런 아내를 둔 내가,
더 다양한 삶의 선택과 기회가 있을 거란 생각을 하고 있다.

앞서 말한 걱정거리들은 어쩌면 누군가의 부러움이 되어 돌아 올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아내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잘 해주는 아내가 참으로 고맙다.

한국인 아빠와 태국인 엄마가 영어로 이야기를 하는,
좀 이상한 집이지만, 딸 아이가 말은 좀 늦게 배울 지 언정,
3개국어를 자연스럽게 하는 아이가 되어, 세상을 무대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성장 할 거란 생각에 퇴근하고 집에 가면
나도 모르게 가족들과 함께 수다왕이 된다.

쟈니: 참으로 보기 좋다. 나도 그런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
그나저나 태국음식을 많이 먹어 봤을 텐데,
먹어본 것 중에 가장 맛있는게 뭔가?

싸미: 태국도 워낙 맛있는게 많은 나라라,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최근에 먹은 것 중에는 삼겹살 튀김인데, 태국식 소스에 찍어 먹으면
정말 맛있다. 여기에 맛 들려서 주말이면 늘 아내를 조르곤 한다.
이태원이나, 다른 태국 음식점들에서도 아마 팔거다.

쟈니: 점심은 내가 떡갈비를 샀으니, 저녁은 당신이 그걸 쏴라…

싸미: 싸우자…나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