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eem essey - 내 귀는 소화불량

내 귀는 소화불량

얼마 전 예상도 못한 난처한 일을 당했다. 늘 명랑하게 지내는 줄 알았던 사람으로부터 정색을 한 얼굴에 차분한 어조로 하는 말에 대꾸를 하자니 말이 길어지고 점점 궁색해 지는 것 같아 애써 마음을 눌렀다. 그리고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 헤어졌는데 무언가 못 먹을 것을 삼킨 기분이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얘기하던 카카오스토리를 열어 자세히 보니 나는 이미 거짓말쟁이가 되어 있었다.

자초지종은 이랬다. 운동을 끝내면 친한 회원들끼리 티타임을 가져 왔었는데 다른 회원들에게 불편을 준다고 하여 그만 두기로 했으나 그냥 집으로 가기가 너무 아쉽다고 해서 가까운 공원에서 커피나 간단한 간식으로 대신했다. 그러다 그 중 연세 있으신 왕언니 집으로 장소가 바뀌었다. 그 분은 음식 솜씨도 좋으시고 혼자 사시지만 남들을 불러 먹는 것을 즐기셨다. 그 덕에 우리는 아침마다 모여서 깔깔거리며 즐거운 아침을 만들었다.

생각을 해 보니 아무리 왕언니가 마음 좋고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한다고 해도 귀찮고 피곤할 때도 있으니 오늘은 그냥 가자고 했던 것 까지는 좋았다. 그러나 일이 그렇게 되려면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누가 좋은 파 모종이 있는데 부모님이 고령에 편찮으셔서 이제 더 이상 일을 하시기 힘들어 그냥 없어지게 생겼으니 종자를 보존하기 위해 주위에 나누어 주고 있다는 말에 나도 달라고 부탁을 한 적이 있었다.

탈의실을 나서는데 출입문 곁에 파란 비닐봉지가 있었다. 예의 그 파 모종이었다. 셋이 나가면서 한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가고 둘만 남은 우리는 봉지를 들고 걸어가면서 왕언니도 드리고 가기로 하면서 오늘은 그냥 집으로 가기로 했던 말을 까맣게 잊었다. 막상 왕언니를 보니 벌써 간식을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식탁에 앉아 전을 떼어 먹으면서 우리는 누구랄 것도 없이 소리를 내며 웃었다. 내용을 들으신 왕언니도 함께 웃으시며 어이없어 하셨다.

다음 날에도 나는 웃으며 하루를 시작하려던 생각은 무너졌다. 수영장에 들어가는 순간 왕언니께서 손짓을 하신다. 다가가 보니 어제 자전거로 먼저 간 친구가 우리가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는 말을 해서 내가 붙들어서 그렇게 됐다고 했으니 알고 있으라고 하신다. 그 말씀이 먹구름이 되어 마음을 덮는다. 그리고 그 친구가 느낄 야속함 또한 무게도 나를 누른다.

집에 오자마자 가게로 가서 영업 준비를 하면서 스마트폰을 열어보니 카카오스토리가 있었다. 열어보니 아까 혼자 자전거를 타고 먼저 갔던 친구였다. 그냥 인터넷에 떠도는 내용인 것 같아 자세히 보지도 않고 바로 덮었다. 그리고 다음날 내 딴에는 먼저 말을 한다는 것이 오히려 변명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카카오스토리까지 확인해서 이미 알고 답도 안 했던 사람이 이제 와서 무슨 변명이냐는 듯이, 그것도 나는 삐치지 않는다. 그러니 거짓말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느냐는 식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끼리도 생각이 다르고 느낌이 다를 수가 있다. 그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변명이라는 말은 나를 참 궁색하게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에는 주홍 글씨가 달렸고 늦은 답을 보냈다.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거짓말 안할게요.”

그러나 거짓말을 했다는 말 보다 변명이라는 말을 아직 삭이지 못하고 모래알처럼 지금거리며 내 안을 떠돈다.
이 또한 수양이 부족한 탓이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