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장 장기공연중인 작품이다. (참고로 첫 번째는 The Fantasticks, 이것도 별도 포스팅으로 추후 소개) 1980년 파리에서 첫 공연을 했으니, 벌써 36년째. 처음 레 미제라블을 본 건 2014년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공연 오픈 후. 나중에 한 번 더 봤고, 당분간은 계속 브로드웨이에 둥지를 틀고 있을 줄 알았으나 아쉽게도 2016년 9월 4일이 마지막 공연이란다. 그렇지만 몇 년 후 또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올 걸 생각하니 기대가 크다.
2014년 봄, 레 미제라블이 브로드웨이로 컴백할 즈음, 브로드웨이에서는 너도나도 '프로젝션 매핑(projection mapping/프로젝터처럼 이미지를 빛으로 바꿔 그림을 만드는..)'을 무대에 본격적으로 활용한다고 바빴다. 그맘때쯤 본 작품 중에서는 2013년 가을 오픈한 '빅 피시(Big Fish/이것도 나중에 포스팅)'라는 작품이 단연코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웬걸, 레 미제라블에서 프로젝션 매핑과 배우들의 동선, 조명, 세트 등을 아주 잘 어우러지게 만들어서 매우 놀랐던 기억이 난다. (프로젝션 관련 이야기는 뒤에서 더 함) 그저 올드한 작품일거라고 예상했었는데, 나의 편견이었다는 걸 제대로 보여줬다.
4대 뮤지컬이 바로 캣츠, 미스 사이공, 오페라의 유령, 그리고 이 작품, 레 미제라블이 아니던가. 그만큼 노래도 익숙하고 내용도 익숙하기에 더욱 잘 해야하고 시대에 흐름에도 부응해 현대화도 해야한다는 숙제가 항상 놓여있다. 그런 의미에서 2014년 리바이벌은 나같은 편견을 가진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는 데 성공했다고 본다.
무엇보다 라민 카림루/Ramin Karimloo의 브로드웨이 등장을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웨스트엔드에서 장발장을 연기하다가 브로드웨이 리바이벌로 넘어왔는데, 오페라의 유령에서도 팬텀과 라울을 모두 다 연기한 바 있는 무서운 실력자. 라민이 연기하는 장발장은... 노래만으로도 모든 연기를 다 한다. 베스트 영상은 아니지만, 직접 보길.
지금이야 뮤지컬과 영화가 더 익숙하지만 사실 원작은 빅토르 위고가 1862년 쓴 소설이다. 캐릭터들을 통해 민중, 봉기, 가난, 죄, 구원, 등 다소 무거운 사회적 주제를 작품 전반에 걸쳐 보여준다.
빵 한 조각을 훔치고 감옥으로 끌려간 장발장은 마리엘 주교의 용서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나 법과 원칙에 엄격한 자베르 경감에게 끊임 없이 추격당한다. 원치 않게 임신해 얻은 딸 코제트를 기르기 위해 돈을 벌고 성매매까지 하게 되어 결국 병에 걸려 죽는 팡틴,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을 얻지 못하는 에포닌 등 각 캐릭터의 사연이 이 이야기를 지배한다.
지난 2006년 리바이벌 이후 다시 브로드웨이로 돌아온 이번 레 미제라블에서는 다인종 캐스팅, 미국식 발음 등 곳곳에 '미국화' 손길이 닿은 점이 돋보인다. 미국 관객들에게 조금 더 익숙하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또한 영화에서 아쉬운 부분이 '노래'였다면 뮤지컬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가슴이 뻥 뚫릴 듯한 가창력을 뿜어내 관객들의 기대를 200% 충족시킨다.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끌어 가는 인물은 바로 장발장. 그래서 장발장 역할이 그 누구보다 중요한데, 장발장 역을 연기하는 라민 카림루는 최고의 장발장 중 하나라는 평을 받는다. 웨스트엔드에서 장발장은 물론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 라울을 연기했고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러브 네어 다이즈'에서는 팬텀을 연기했다. 이번(2014) 브로드웨이 리바이벌 주연을 맡아 토니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카림루의 비결은 누가 뭐래도 '노래'다. '후 앰 아이(Who Am I)'를 부를 땐 웅장함으로, 늙은 장발장이 부르는 '브링 힘 홈(Bring Him Home)'에서는 마음을 울리는 가성으로 공연 내내 다양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전체 배우가 목소리를 합해 부르는 '원 데이 모어(One Day More)'는 좌중을 압도한다. 감초 역할을 하는 테나르디에 부부는 자칫 너무 무거워질 수 있는 분위기에 웃음을 선사한다.
무대 기술 부문 또한 주목할만 하다. 이전 레 미제라블에서는 기술적 한계로 다 보여줄 수 없었던 장면들이 살아난 점이 눈에 띈다. 비록 그 유명한 '회전 무대'는 이번 브로드웨이 공연에서 볼 순 없지만 프로젝션 기술을 도입해 더욱 업그레이드했다. 지난해 막을 내린 뮤지컬 '빅 피시'에서 기존 공식을 깬 프로젝션 기술로 흥미를 끌었던 '59프로덕션즈' 측이 이번에도 프로젝션을 맡아 사실감을 더했다.
프로젝션을 통해 입체감을 더한 장면으로는 자베르 경감이 다리 위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장면,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업고 긴 터널을 걸어가는 장면 등이다. 모두 무대 위에서는 시공간적 한계가 뚜렷한 장면인데 이 한계를 뛰어넘어 무대 위에서 새롭게 실현시킨다.
2012년 히트친 영화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영화는 전세계적으로 흥행했으나 '노래'가 아쉬웠다는 지적을 피해갈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기를 끌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생생한 감정 전달과 아름다운 화면이 아니었을 지.
우선 각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을 살펴보자. 장발장 역의 휴 잭맨, 자베르 경감 역의 러셀 크로우, 팡틴 역의 앤 해서웨이, 코제트 역의 아만다 사이프리드, 테나르디에 부인 역에 헬레나 본햄 카터, 에포닌 역의 사만다 바크스, 엥골라스 역의 애런 트바이트 등. 이 목록만 보아도 알 수 있듯 그야말로 초호화 캐스팅이다. 앤 해서웨이는 팡틴 역을 통해 아카데미상까지 얻으며 연기파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졌다. 이미 뮤지컬 무대가 익숙한 휴 잭맨과 애런 트바이트는 노래와 연기 모두 완벽히 소화해냈다.
영화의 가장 큰 하이라이트를 꼽자면 기존 뮤지컬영화의 전철을 밟지 않았다는 점. 기존에는 노래 녹음 따로, 연기 따로 촬영해 둘을 모아 편집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톰 후퍼의 레 미제라블은 촬영 중 화면과 사운드를 같이 따내 현장감을 살렸다.
배우들은 연기에 집중하며 노래 감정을 그대로 실을 수 있어 좋았다는 반응이었다. 관객들 또한 그 감정을 그대로 전달받은 것일까. 영화는 전세계적으로 흥행하며 박스오피스 수익만 4억5000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였다. (제작비는 6100만 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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