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스토리: 위키드 (Wicked)

in kr •  7 years ago 

나의 '뉴욕앓이'가 시작된 게 바로 이 작품 때문이다. 2007년쯤, 대학생 때.

뉴욕앓이와 함께 뮤지컬을 본격적으로 탐구하게 된 것도 바로 위키드라는 소프트웨어(?)와 이맘때쯤 이용이 활발해진 하드웨어, 유투브 덕분.

뉴욕에서 몇달 지내던 중 공연 로터리에 당첨돼 저렴한 가격에 공연을 봤다고 자랑하는 B모 군과 가까이 지내다보니, 귀로 들어오는 이야기는 죄다 뉴욕 이야기였다. 가뜩이나 (한국 여성들이 대부분 그랬겠지만) '섹스 앤 더 시티'랑 '가십걸'로 뉴욕 로망 게이지가 바짝 올라간 나에게 B군의 생생한 일인칭 경험담은 치명적이었다. 위키드 로터리에 당첨된 사람들에게만 준다는 '초록 뱃지'를 항상 달고 다니는 B군을 보면서 내심 나도 갖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

그렇게 뉴욕을 향한 갈망을 키우며 위키드 전체 트랙을 계속 계속 들었다. 얼마 후 노래를 달달 외울 지경에까지 이르렀고 노래를 들으면서 나 혼자 무대를 상상해보고 스토리를 상상해보며 즐거워했다. '이디나 멘젤'이라는 이름을 알게되고 '크리스틴 체노웨스'를 검색하며 유투브 파도타기를 즐겼더랬다.

2010년 초, 그렇게 바라고 바랐던 뉴욕에 도착해서 제일 처음 찾아간 곳이 바로 타임스스퀘어. 너무 기대가 컸던 건지, 대낮처럼 밝게 빛나는 거리에 서서 '아, 밝네' 말고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로터리 도전 두 번 만에 "쥬쏴뢍~리"하고 내 이름이 불리던 순간은 잊을 수 없다. 현금 24.50불을 건네고 따낸 초록 뱃지를 받아드는 순간, 숨이 멎었던 게 생생하다. 로터리 좌석인 맨 앞 두 줄 중에서 두 번째 줄 왼편쪽에 앉아서 상상 속 세계가 눈 앞에 펼쳐지는 장면 장면 내내 벅차서 울었던 기억도 또렷하다.

결국 뉴욕에서 사는 동안 위키드만 개인적으로/관광객 때문에/일 때문에 네 번인가 다섯 번을 본 것 같은데, 점점 그 감각들이 무뎌지는 게 싫어 어느 순간부터는 안 보게 됐다. 그래도 첫사랑 같은 뮤지컬이라 애정이 계속 가는 건 어쩔 수 없나보다.

2013년으로 10주년을 맞은 뮤지컬 '위키드(Wicked)'는 브로드웨이 역사상 11번 째 장수 작품이다(1위는 25년 이상 이어오고 있는 '오페라의 유령'). 위키드가 브로드웨이에 공식 오픈한 것은 2003년 10월 30일. 오리지널 캐스트는 이디나 멘젤(엘파바) 크리스틴 체노웨스(글린다)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지금까지 위키드가 벌어들인 수입은 브로드웨이만 쳐도 5억 달러가 넘는다.

비결이 뭘까. 비평가들의 좋은 평가였을까. 위키드가 처음 공개될 당시 비평가들은 냉정했다. 실례로 뉴욕타임스의 벤 브랜틀리는 당시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미래를 보여주지 못한다"고 평했다. 호평으로 시작된 공연은 아니었다.

그럼 스타 배우들의 힘이었을까. 최근 뮤지컬계의 수퍼스타 노버트 레오 버츠를 등장시킨 '빅 피시'도 인기 배우 올란도 블룸이 열연한 '로미오와 줄리엣'도 폐막을 앞둬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위키드 개막 당시는 어땠을까. 뮤지컬 '렌트' 등으로 이름을 조금씩 알리기 시작했던 이디나 멘젤은 이 작품으로 토니상을 거머쥐며 일약 뮤지컬 스타로 떠올랐다. 크리스틴 체노웨스 또한 이 작품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결국 처음부터 수퍼 스타를 등장시켰다기보다 위키드는 수퍼스타를 '탄생'시킨 작품이었던 것. 작품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자.

대중성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으로 눈을 돌린다.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가 워낙 유명한 탓에 이런 접근은 성공 또는 실패가 확연히 갈린다. 그러나 작품 내용을 들여다보면 오즈의 마법사 이야기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반전'이 있어 관객들을 흡인한다. 모두가 '나쁜 마녀'로 알고 있는 서쪽 마녀 엘파바가 알고보니 도리어 착한 사람이었다는 것, 거대 정치 구조의 피해자였다는 것, 그에게도 인간적인 삶이 있었다는 것 등의 이야기가 펼쳐지면서 관객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경험한다. 이야기 자체가 관객을 작품 속으로 끌어들여 참여시키는 힘이 핵심 비결이다.

캐릭터 또한 관객들의 마음을 얻어낸다. 태어날 때부터 초록빛 피부 때문에 가족과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는 엘파바, 유쾌하고 인기 있는 '드라마 퀸' 글린다. 또한 '오즈의 마법사'로 이미 관객과 익숙한 도로시, 양철인간, 사자 등 캐릭터의 깜짝 등장이 감칠맛을 더한다. 그 누가 연기해도 엘파바는 엘파바, 글린다는 글린다로 남아 있다는 점이 캐릭터가 가진 파워를 증명한다.
위키드라는 작품이 가진 이런 대중성은 브로드웨이를 넘어 전국 각 도시 영국 웨스트엔드 일본.독일.호주.싱가포르.한국.핀란드 등 전세계에서도 증명돼 '흥행 보증 수표'로 통한다.

화려함

화려한 무대가 눈을 잡아끈다. 특히 '마법'을 주제로 다룬 만큼, 세트가 무대 여기저기를 미끌어지듯 흐르고 공중을 채운다. 원숭이들, 오즈 시민들, 그리고 글린다의 첫 등장부터 예사롭지 않으며, 다리(bridge) 세트는 무게만 1톤에 이르는 초대형 규모다. 1막 마지막에서 엘파바가 공중으로 떠오르는 장면은 주제곡 'Defying Gravity'와 어우러져 하이라이트를 장식한다. 의상 또한 동양적인 분위기를 살짝 가미한 독특하고 화려한 디자인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분장도 빼놓을 수 없다. 엘파바의 초록 분장은 물론, 염소 인간인 닥터 딜러먼드, 날개 달린 원숭이 등 특수 분장이 뛰어나다.

앞서 이야기 한 'Defying Gravity'라는 곡 외에도 오즈 마법사에 대한 기대감을 담은 엘파바의 첫 노래 'The Wizard and I'도 있다. 군무와 노래가 잘 어우러진 'What is this Feeling?' 'Dancing Through Life' 'One Short Day' 또한 귀를 사로잡는 곡. 글린다와 엘파바가 처음 친해지는 대목에서 부르는 'Popular'은 미소를 절로 자아낸다. 끝으로 가면서 글린다와 엘파바가 서로의 우정을 확인하는 'For Good'라는 곡은 감동적인 마무리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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