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백수 남편의 일기 (2) ] 퇴직인사

in kr •  7 years ago  (edited)

제목 : [전체메일] 퇴직인사

수신 : 경영지원본부 전 직원

발신 : 유정호 대리

내용 : 


어느 거대한 낯선 도시에 

들어서게 되면 

나는 낯선 방에서의 잠 

낯선 곳에서의 식사를 사랑합니다   


이름모를 거리를 거늘며 

스쳐가는 모르는 이들을 

바라보는 것을 사랑합니다   


나는 즐겨 

외로운 나그네이고자 합니다.   



- 칼릴지브란 -    



안녕하십니까, 

인사팀 유정호 퇴직인사 올립니다.   


설레는 나그네의 마음으로 회사에 발을 들이고  

수년의 시간이 꿈결같이 흘렀습니다.  

낯선 도시 같기만 했던,  

그래서 기대감과 두근거림으로 가득했던 이곳이  

이제는 제 방처럼 익숙하고 편안한 장소가 되었습니다.    


연이라는 것이 참 오묘해서,  

털어버리려 해도 털어낼 수 없고,  

당기려고 해도 당겨지지 않는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하지 못하는  

거대한 조류같이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늘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자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아쉬움이 참 많이 남습니다.  

어떤 분은 제 얼굴에서 웃음을 떠올리실 테지만,  

또 어떤 분은 씁쓸함을 남기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갑작스럽지 않은 만남과 이별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짧은 인연에 깊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또 언젠가 인연이 닿아  

다시 뵐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신입으로 들어와 그간 실수도 많이 하고, 또 민폐도 많이 끼쳤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따듯하게 받아주셨던 선배님들과 후배님들께  

일일이 찾아뵙고 인사를 드려야 마땅하지만,  

주어진 시간의 한계로 이렇게 메일로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비록 많이 부족했지만, 흠은 덮어주시고 예뻤던 기억만 남겨주시는  

아량을 베풀어주시길 바랍니다.    


언제고 생각이 나실 때면  

편안하게 연락을 주실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이 곳에 머물었던 시간이 참 행복했습니다.  

그 행복을 나누고 싶었기에 늘 주고받는 메일 말미에 

 ‘행복한 하루’가 되시라 전했습니다.  

진심을 담아 마지막 메일을 올립니다.  

늘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Kyle Lee 입니다.


이 글은 제가 백수 시절 겪었던 경험을 각색하여 쓴 소설에 가까운 에세이입니다.

하지만 위의 퇴직인사는 실제로 제가 이전 회사를 퇴사할 때 보냈던 전체메일입니다.


[어느 백수 남편의 일기]는 한 편 한 편 모두 독립된 에피소드로 따로 읽으셔도 좋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연결된 이야기로 읽으셨을 때 더 맛이 있는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에세이와 소설을 지속적으로 연재할 예정입니다. 


많은 스티미안 분들과 소통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
Sort Order:  

퇴사를 경험한 사람으로^^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지금은 스타트업을 공동창업해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ㅎㅎㅎ

내일자로 퇴사합니다. 대학 졸업후 처음으로 백수가 되는데, 공감할 수 있는 포인트가 많을 것 같네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어려운 선택을 하셨네요! 첫 퇴사시라면 감정 기복이 심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더 나은 삶으로 가기 위한 발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응원합니다!^^

와 정말 어렵게 퇴직을 결정하셨을 텐데요,
당시의 감정과 회한이 고스란히 묻어나네요.
스타트업 창업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텐데요.
백수남편의 멋진 삶 응원합니다.^^

응원해주는 가족 덕분에 크게 엇나감 없이 길을 잘 잡고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삶이 힘들지만 보람차고 행복하네요. 응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