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4주기...유민이가 뭍으로 올라온 날 아버지를 봤던 때가 생각난다

in kr •  7 years ago  (edited)

오늘이 세월호 참사 4주기가 되는 날이다. 그때 난 막 사건팀 바이스(경찰청 본청에 출입하는 기자를 일컫는 말)으로 발령이 나서 처음 경찰청 기자실에 인사를 돌리고 있었다. 갑자기 뉴스에 세월호 사고 소식이 전해졌고, 곧바로 현장 책임자로 진도로 내려갔다

전원구조 오보와 각종 자극적인 보도로 언론에 대한 불신이 유가족들 사이에 팽배해 있었다. 우리 언론사의 경우는 그나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가족들에게 '기자'는 '기레기'로 치부됐다.

사고 초반 가족들을 취재하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틈틈이 얼굴을 비추면서 '유가족들의 심정과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는' 보도를 하겠다는 약속을 하면서 어느 정도 거리감을 좁혀나가려고 했다.

그 와중에 '유민아빠' 김영오씨와도 꽤 가까워졌다. 다른 가족들에게 "얘네는 제대로 써 준다"며 긍정적인 말을 해주기도 했었다. 이 분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광화문에서 긴 시간 동안 단식농성을 했던 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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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9일째인가 10일째 점심 무렵이었던거 같다. 나와 눈이 마주친 유민 아버지는 "속상해서 술을 한잔 하고 왔다"며 말을 건넸다. "딸을 보고 왔다"고 했다. 내가 그때 바로 한 이야기는 "정말 잘 됐다"는 말이었다. 정말 아이러니한 말이었다. 딸이 시신으로 올라왔는데 '잘 됐다'는 말을 하는 상황이 정말 얄궂었다. 가족들 분위기가 그땐 그랬다...

김영오씨는 딸의 얼굴과 손, 발을 차례로 어루만지면서 "살아나라 살아나라"고 말했다고 했다...

"손을 만지니깐 손가락 마디마디 하나가 살아있을 때랑 똑같더라. 그래서 주물러줬다. '살아나'라고..." 그렇게 말하는 김영오씨의 손도 섬세하게 움직였다...

"부검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던 기억이 난다. "대체 얼어 죽었던 것인지 질식해서 죽었던 건지 알고싶다"는 것이었다.

그때 유민 아버지가 괴로워하던 모습이 생생하다...딸의 죽음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한 부검을 차마 결정하지 못했던 그 아버지는 진상조사위원회의 수사권 기소권이 보장된 특별법을 만들어 그 궁금증을 풀려고 했고, 대통령의 잘못된 생각과 정치권의 불필요한 소모전이 이를 가로막았다.

그랬다. 그때부터 가족들은 줄곧 원하는 건 한가지였다. 사고의 진실을 규명해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직도 진실은 묻혀 있다. 그래서 가족들은 아직도 거리에 있다. 하루 빨리 그들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5주기에는 그럴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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