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예술, 가치없는 저급 예술인가? (2/3)

in kr •  7 years ago  (edited)

3. 이해의 필요성   

수많은 계층들이 사회를 이루고 살아가는 대중사회에서 예술은 나와는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예를들면 회사에 출근하는 일상의 한 과정만 보더라도 대중예술은 우리의 오감을 자극한다. 지하철을 타기위해 지하철역을 가는 동안 길거리에는 다양한 예술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 피카소, 칸딘스키 같은 유명한 화가의 작품은 아니지만, 이름 모를 누군가의 그림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어딘가에서 우리에게 익숙하거나 아니면, 새로운 음악이 흘러나온다. 물론 베토벤, 모차르트 같은 유명한 음악가의 음악은 아니다. 

그리고 지하철을 타면서 기내의 스크린을 통해 수많은 영상광고, 게임화면, 영화 예고편 등을 자연스럽게 보고 접하게 된다. 이처럼 대중 예술은 만화, 소설, 그림, 영화, 게임, 음악 등으로 우리에게 밀접하게 다가와 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우리의 생활 주변을 차지하고 있어, 마치 공기와 같이 우리는 필요성과 의미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이들을 접하고 받아들이며 즐거움과 행복한 감정을 느낀다면 그것으로 만족할 수도 있겠지만, 좀 더 대중예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영위하고 있는 것에 대한 기본적 이해와 사고의 중심을 가지고 있을 때 사물과 세상은 더욱 더 새롭게 발견된다.

4. 대중예술은 저급인가?

영국의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산업사회가 도래하고 대중사회가 형성되었다. 산업화를 통한 기술의 발달과 생산체제의 변화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인간관계의 창출과 새로운 사회 유형을 경험하고 된다. 고급 문화를 갖춘 소위 말하는 교양층과 일반 계층의 구분이 불명확해지면서 교양층의 지배는 도전을 받기도 했다. 과거 비평가 매슈 아널드(Matthew arnold)는 인간의 사고와 표현의 뛰어난 정수라는 의미로 문화를 정신적인 개념으로 해석하였다. 여기에서 완성이라는 관념, 즉 위대한 문학, 미술, 음악 등에 대한 지식과 실천을 통한 정신적 완성의 추구라는 열망이 담겨있다. 문화를 수준 높고 교양 있는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때의 개념이 바로 이런 관념에 근거한 것이다. 

이러한 개념에는 고도의 개인주의적 철학과 일종의 엘리트 의식을 바닥에 깔고 있다. 이러한 의식 때문인지 비평가들과 특권층은 ‘최고의 작품’을 찾는데 몰두하고, 가장 뛰어난 것을 찾고 그것을 감상하는 능력을 키우기에 급급했다. 그리고 소수의 특권층의 문화를 문화적이라고 칭하고, 다수의 문화를 비문화적이라고 단정 지었다. 이러한 문화 옹호자들은 시대가 급변함에도 방어적으로 물질문명과 과학기술, 정치, 경제와 동떨어진 독립적인 존재의 문화 예술의 개념을 고수하려고 한다. 마치 물질문명에 대항해 문화 예술의 정신적 광채를 보호하고 무지몽매한 대중에서 전파하는 전사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아직도 사회적으로 막강한 영향을 미치며 지식인, 언론, 정부의 문화행정담당자, 비평가 등으로 존재하고 있다. 대중예술인들에게 세종문화회관의 공연을 허락할 수 없다는 소위 문화 엘리트 인들의 완강한 거부는 정당한 것일까?


5. 피에르 부르디외의 미적관점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프랑스 사회에서 사회문화적 위치와 예술적 취향 사이에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밝히면서, 문화적, 미적 판단의 기준에 절대적인 타당성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즉 문화예술의 가치나 미적 기준에 대해 본질적, 절대적 지표가 있는게 아니라, 사회적으로 형성된 관습적 체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급문화의 미적 기준은 보편타당한 것처럼 인식되면서 왔다. 아래의 국내에서 일어난 웃지 못할 사례는 미적 가치 판단의 중요성과 타당성에 의문과 논란을 가져왔다.

서울 서대문 경찰서는 13일 대학 캠퍼스 안의 조형미술 작품을 고철 덩어리로 잘못 알고 고물상에 팔아넘긴 혐의로 인부 조 모(39,무직)씨 등 2명을 구속. 조씨는 11일 오후 6시 10분쯤 상명여대 운동장에서 철제 조각품 5점(학교 측 시가 3,000만원 주장)을 타이탄 트럭에 싣고 나가 인근 고물상에 2만 1,500원을 받고 팔았다는 것. 조 씨는 13일 오전에도 용접기를 준비해 “고철을 주우러 가자”며 친구 도 모(39)씨와 상명여대에 들어가 전날 미처 가져가지 못한 다른 대형 철제 조각품 2점을 절단하다 미술학과 대학원생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조 씨는 경찰에서 “학교측이 귀찮아 처리하지 않은 줄 알았다”며 “고철 덩어리가 미술작품이라니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훼손된 조각품들은 이 학교 예술대 미술학과 김종호(48) 교수의 작품. 김교수는 “다음 달 김포의 야외작업실로 옮기려던 차에 어처구니없는 일이 생겼다”며 “5점은 되찾았으나 절단한 2점은 3,000만원에서 4,000만원의 피해가 예상된다. 무지로 인해 저질러진 일이니만큼 보상을 원하지는 않지만 조 씨등을 보수 작업 등에 참여시켜 작품 활동의 의미를 일깨워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중앙일보, 1995.4.13일자)

이처럼 고급 문화 예술론자들의 미적 가치와 평범한 대중의 미적 가치는 ‘조각품’과 ‘고철 덩어리’의 차이만큼 크다. 하지만 이것을 조각품인지 고철인지 구분짓는 경계는 누가 만들었을까? 누구라도 이러한 조각품을 예술 작품으로 인정했다면 반론의 여지가 없겠지만, 어떤 사람은 예술 작품으로 어떤 사람은 고철 쓰레기로 인식하는 상황을 보면 이러한 의미는 매우 자의적임을 알 수 있다. 대중예술을 상징성이 낮은 것, 경제적인 이익에 맞춰진 무가치한 예술, 세련되고 상징성만을 유일한 미적 가치로 주장하는 고급문화론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고급 예술과 대중 예술은 각각의 가치 판단 기준과 수용 방식, 그리고 대중이 받아들이는 즐거움의 정도가 다르다. 그것을 가지고 누가 더 우위에 있다고 판단하기 보다는 각각의 영역을 인정하고 좀 더 특유의 가치를 파악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더욱 더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계속)

  • <참고문헌>
  • 대중문화의 이해, 김창남, 한울아카데미, 2010
  • 대중문화 심리로 본 한국사회, 김헌식, 북코리아, 2007
  • 대중예술과 미학, 박성봉, 일빛, 2006
  • 대중문화와 고급문화, 하버트 갠스, 나남, 1998

[대중예술, 가치없는 저급 예술인가?(3/3)](https://steemit.com/kr/@kangsukin/3-3)

[대중예술, 가치없는 저급 예술인가?(2/3)](https://steemit.com/kr/@kangsukin/2-3)

[대중예술, 가치없는 저급 예술인가?(1/3)](https://steemit.com/kr/@kangsukin/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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