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
<정의>
조선 선조(宣祖) 때 유성룡(柳成龍:1542~1607)이 쓴 임진왜란 야사(野史)
<발달과정/역사>
징비록은 현재 4종이 전하는데 저자 자신의 필사원본인 『초본징비록(初本懲毖錄)』(국보 132)과 16권으로 된 『징비록』, 2권으로 된 간본(刊本), 필사본이 있다. 1592(선조 25)-98년까지 7년에 걸쳤던 임진왜란의 원인?전황 등을 기록한 책으로, 전란이 끝난 뒤 저자가 벼슬에서 물러나 여유가 있을 때 저술한 것이다.
‘징비(懲毖)’란 『시경(詩經)』의 소비편(小毖篇)의 “미리 징계하여 후환을 경계한다(豫其懲而毖役患)”는 구절에서 딴 것이다. 이 책의 체재 내용을 보면, 권1~2는 제목이 없고, 권3~5는 근포집(芹曝集:箚?啓辭), 권6~14는 진사록(辰巳錄:狀啓), 권15~16은 군문등록(軍門謄錄:文移)?난후잡록(亂後雜錄) 등으로 되어 있다. 이는 임진왜란의 중요한 사료로서, 저자의 빼어난 문장에도 힘입어 널리 읽히고 있다. 군문등록 중의 잡록은 당시의 정세를 부기한 것인데, 소설에 해당하는 부분으로서 일종의 군담소설류라 할 수 있다.
초간은 유성룡의 아들 진(珍)이 1633년(인조 11) 『서애집(西厓集)』을 낼 때 함께 수록하였고, 필사본 징비록은 조수익(趙壽益)공이 경상도관찰사로 재임 시 필자 손자의 요청으로 인조25년(1647) 16권 7책으로 간행하였다. 1695년(숙종 21) 일본 교토[京都] 야마토야[大和屋]에서 중간하였으나, 숙종은 『징비록』의 일본 수출을 엄금하였다는 1712년의 기록도 있다.
1936년 조선사편수회에서 경북 안동(安東)의 종가 소장인 저자 친필의 필사본을 30부 한정판으로 영인?간행하였고, 1958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에서 영인?간행한 『서애집』에도 수록되어 있다. 또한 담정(潭庭) 김려(金려)의 『광사(廣史)』 제3집에도 전 4책으로 필사되어 실려 있다. 본 유물은 『서애집』에 함께 수록된 징비록의 제1권이다.
<일반적 형태 및 특징>
활자본(活字本)이다.
출처
제공처 정보
e뮤지엄 http://www.emuseum.go.kr/
한국의 문화유산을 수집·보관하여 일반인에게 전시하고, 유적·유물 등을 조사·연구하기 위하여 설립된 박물관
저자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로고 http://www.museum.go.kr/ 제공처의 다른 책 보기
[네이버 지식백과] 징비록 제1권 [懲毖錄(第一卷)] (e뮤지엄)
예전 지도를 보면 대마도는 우리나라땅이다.
언제부터인가 일본놈들땅이 되었는가?
파헤쳐 보자
그리고 널리 알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