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와 관련된 논란이 끊이질 않는다. 나는 블록체인이 제시하는 탈중앙화 비전에 무척 공감하고, 과연 암호화폐가 미래에 기존 화폐의 대안이 될지, 된다면 어떤 방식으로 화폐의 기능을 구현할지 몹시 궁금한 사람 중 하나다. 모든 기술에는 빛과 어둠이 있게 마련인데,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가져올 번영의 그림자는 유독 짙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암호화폐 열풍은,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 지닌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필연적으로 사회의 불행을 증폭시키는 대량 불행 생성기다.
#1: 희망 고문
행복의 방정식을 간단히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행복 = 현실 - 기대
즉, 본인이 처한 현실보다 기대가 크면 사람은 불행해지기 쉽다. 가령, 50평 주상복합에 살던 사업가 A가, 일이 안 풀려 30평 빌라로 이사 갈 경우, A는 불행을 느끼기 쉽다. 반면에, 5평 반지하 원룸에 살던 취준생 B가, 취업해서 15평 빌라로 이사 갈 경우, B는 아마 큰 행복을 느낄 것이다. 이것은 아주 일부의 예일뿐, 일상의 수많은 크고 작은 행복은 이 방정식으로 쉽게 설명이 가능하다. 현실보다는 기대를 바꾸는 것이 훨씬 쉽기 때문에, 수많은 힐링 전도사들은 행복해지기 위해 이 "기대"를 조절하라고 조언한다.
그렇다면, 암호화폐 열풍은 어떻게 사회의 불행을 증폭시키는가? 암호화폐는 이 기대를 너무 급속도로 높이 올려놨다. 현실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먹고사는 문제는 언제나 어려운 삶의 문제였고, 장기화된 저성장과 취업난은 서서히 사회의 행복을 갉아먹고 있었을 뿐이다. 하지만 암호화폐의 등장으로 인한 신흥 부자들과, 단기간에 큰돈을 번 소수의 이야기는 다수에게 '할 수 있다'라는 기대를 갖게 했다. 수저론이 유행하며,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서서히 사회에 스며들며 기대가 낮아질 때, 암호화폐로 인생을 바꾼 극소수의 이야기는 다시금 사람들의 기대를 높이는 촉매제가 됐다.
이것은 과연 합당한 기대인가? 나는 이것이 희망고문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암호화폐의 가격이 꾸준히 상승해 높은 기대를 상쇄해줄 만큼, 다수가 현실에서 높은 경제적 이득을 얻었다면 모두가 행복한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큰돈을 잃는 사람들이 속출했고, 어떤 이들은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수준의 높은 리스크를 지는 듯하다. 예전 포스팅에서도 언급했듯, 암호화폐 매매가 무서운 점은 중독인데, 가즈아!를 외치는 사람들은 자신의 뇌 보상회로가 어떻게 바뀌는지 인지할 필요가 있다.
암호화폐로 돈을 버는 승자는 소수일 수 있는데, 코인을 만들거나 관련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 이와 연관된 곳에 투자한 주체, 이 기회를 영리하게 이용한 소수의 개인들이다. 이들은 암호화폐의 가격 등락에 상대적으로 덜 취약하며, 거래소와 같은 중개업체 같은 경우 전혀 리스크를 지지 않는다.
반면, 다수의 개인들은 암호화폐의 극심한 가격 변동성에 고스란히 노출된 채, 큰 손실을 입을 경우 즉시 생계에 타격이 갈 수 있다.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박살나고 이들이 불행해지는 것은 불과 몇 분이면 충분하다. 즉, 큰 가격 등락 없이 장기적으로 암호화폐가 꾸준히 성장할 경우에만, 모두가 돈을 벌어 높아진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데, 이는 불가능하기에 불행의 총량이 늘어나는 것은 피할 수 없어 보인다.
#2: 근로의욕 저하 및 박탈감
일은 개인의 삶에 목적의식을 부여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고, 일에서 얻는 성취감과 적정 수준의 소득은 행복의 조건 중 하나다. 하지만, 암호화폐 매매로 인한 기대소득이 근로소득보다 훨씬 높다면, 게다가 큰 소득을 올리는 주체가 내 주변 사람이라면 이것은 불행의 총량을 늘린다.
암호화폐로 인생을 바꾼 소수의 이야기는 근로의욕을 심각히 훼손한다. 사람이 일을 하는 동기는 경제적인 이유가 큰데, 만약 누군가가 암호화폐 매매만으로 자신의 월급을 (심지어 연봉을) 하루 만에 벌어들이는 것을 목격한다면, 커다란 박탈감을 느끼기 쉽다. 심지어 암호화폐로 큰돈을 벌고 퇴사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직장인들 사이 전설처럼 회자되고 이는 남겨진 자들을 허탈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암호화폐로 인생 역전한 이야기는 자극적인 내용을 좋아하는 미디어와, 투기심리를 부추기는 세력에 의해 자주 인용된다.
문제는 이러한 박탈감이 준거집단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도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준거집단과의 비교다. 가령, 보통 사람들은 제프 베조스의 재산이 아마존 주식 가격 상승으로 인해, 하루에 수 조가 불어났다고 해도 별 감흥이 없다. 이들의 행복도에 영향을 미치는 타인은 친구, 직장 동료, 동창, 친척 등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처럼 인간의 시기심과 불행은, 내 주변 사람의 상황에 의해 좌지우지된다. 암호화폐로 큰돈을 번 소수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는, 다수의 근로의욕을 저하하고 불행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3: 사회 분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신기술이기 때문에 아직 과도기적 상태며, 이에 대한 부작용으로 규제에 대한 찬반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암호화폐와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은, 자신의 이해와 신념에 따라 다양한 의견을 내놓는데, 각자의 주장에 나름의 명분이 있기에 답을 내리기가 무척 어렵다. 가령, 중앙정부는 암호화폐를 통제하려 하지만, 암호화폐 관련 기업이나, 투자자, 친기술론자 들은 이러한 규제에 강력히 반대를 한다.
찬성론자는 반대론자를 기술에 무지하고, 구시대적이라 격하하는 반면, 반대론자는 암호화폐를 사기라 치부하고 종국에는 비극을 야기할 것이기에 정부의 통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암호화폐 규제에 관한 극명한 입장차는 심각한 사회분열을 낳는다. 만약 암호화폐 버블이 꺼질경우, 사회분열은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
내가 관찰한 바에 의하면 암호화폐 열풍 속 가장 불행한 주체인 돈을 잃은 개미들은, 자신들의 분노를 해소할 대상을 찾는 과정에서 갈등과 혐오를 생성한다. 혐오의 대상은 정부, 미디어, 혹은 다른 개인이 될 수도 있는데 (어쩌면 이 글을 쓰는 본인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본인의 과실로 인한 불행을 "이게 다 xx 때문이야"라고 남 탓하며 책임을 전가한다. '잘되면 제 탓, 못되면 조상 탓'이라는 속담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원망할 대상을 찾는 것이 순간의 위안을 줄 수는 있다만, 이것은 참으로 자신에게 창피한 일이다. 게다가 남 탓하는 것이 극심한 사회 분열과 혐오를 낳는다는 것은 이미 역사적으로 증명됐고, 어떤 정치인은 권력을 잡기 위해 이를 교묘히 이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나치는 패전으로 고통받던 독일인의 분노를 유대인에 대한 혐오로 전환했고 홀로코스트라는 비극을 낳았다. 또한 트럼프는 세계화의 수혜에서 소외된 미국 중하층 백인들의 혐오를 자극해, 국수주의를 내세우며 집권에 성공했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처럼 사회의 불행을 낳는 암호화폐를 규제해야만 하는가? 나는 쇄국정책과 같은 국내 규제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지구는 민족주의 하에 효과적으로 쪼개졌지만, 경제는 세계화 속 단일된 시스템을 형성한다. 미국 경제가 기침을 하면 다른 나라들이 감기에 걸리는 시대다. 암호화폐는 이미 범세계적 경제 이슈이기 때문에, 전 지구적인 합의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고서 국내에만 무조건적인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정치인들은 최대한 표를 많이 확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무슨 명분이든 만들어내서 규제의 수준을 조정하겠지만.
암호화폐에 관한 뜨거운 관심 속, 최근에 JTBC에서 열린 정재승 vs 유시민 암호화폐 토론은 많은 파장을 낳았다. 누가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것은 저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어쨌든 암호화폐 열풍에 대해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고 토론하는 것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찬성론자와 반대론자들은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으며, 활발한 토론은 사회적 합의와 접점을 찾아나가는 과정이다.
이미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로 미래를 바꾸기 위한 거대한 움직임은 시작됐고, 이는 전 지구적 규제가 있지 않는 한 멈출 수 없어 보인다. 다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암호화폐 매매의 수익률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본인한테 있다는 점을 유념하고 남 탓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것이 암호화폐 열풍으로 인해 증가할 불행의 총량을 그나마 줄이는 방법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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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다른 플랫폼에 썼던 글인데, 스팀잇은 창작자와 플랫폼이 공생하는 블록체인 SNS의 방향성을 제시해줬다고 생각합니다. 스팀잇 커뮤니티의 활성화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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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개인적으로 스팀잇 더욱 더 활성화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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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스팀잇이든 다른 플랫폼이든, 창작자에게 정당한 보상을 해주는 구조로 바뀌지 않을까 희망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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