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을 이겨내는 덩굴손의 지혜-순간을 영원으로(#45)

태풍이 온다고 합니다. 태풍은 대부분의 생명들한테는 공포 그 자체입니다. 하여 생명들마다 생존을 위한 비장의 무기를 나름대로 갖고 있습니다. 특히나 태풍 온다고 어디로 피할 수조차 없는 식물들은 더 특별합니다. 덕분에 이런 식물한테 사람은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요즘 한창 잘 자라는 오이나 호박 같은 덩굴 식물은 어떻게 태풍을 이겨낼까요? 이들이 가진 덩굴손(tendril)은 금손보다 더 귀한, 그야말로 생명손입니다. 덩굴손은 줄기를 고정하고, 비바람에 흔들림 없이 지탱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까요?

덩굴손은 그 식물의 감각이 아주 민감한 부분입니다.

사람 손가락을 덩굴손 가까이 두고 있으면 스르르 움직이면서 손을 감아옵니다. 사람으로 치면 육감이라고 할까요? 눈이 없지만 그들만의 특별 감각으로 알아냅니다. 처음 덩굴손이 가지에서 나왔을 때 돌돌 말린 모습에서 어디로 뻗어갈지 끊임없이 탐색하며 길을 갑니다. 길을 포기하거나 잃는 법이 없습니다.

그 다음 쉼 없이 움직입니다.

돌돌 말린 덩굴손이 감고자하는 대상물을 정했으면 천천히 움직입니다. 대상물을 한 바퀴 감는 데 한 시간 이상 걸립니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움직임입니다. 쉼 없이 움직이니 가능하다고 하겠습니다.

덩굴손이 대상물을 꼭 잡은 다음에는 이제부터 본격적인 ‘일’을 합니다.

다름 아닌 탄성을 갖기 위한 일입니다. 태풍과 같은 비바람이 몰아쳐도 살아남기 위한 일이 됩니다.

덩굴손을 자세히 본 적이 있나요? 사진에서처럼 용수철모양입니다. 근데 더 자세히 보면 나선 모양이 서로 반대입니다.

한쪽은 시계 방향이고 중간 지대를 거친 다음에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바꿉니다.

그리고도 덩굴 길이에 여유가 있다면 다시 중간지대를 거친 다음, 다시 시계방향으로 틉니다. 사진에서는 조금 특별나게 세 번에 걸친 비틀림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물리학적으로 말하자면 비틀림 에너지가 상쇄되어 비바람을 견딜 수 있다고 합니다. 한쪽으로만 집착하지 않고, 좌우 균형을 맞추어가는 모습이 놀랍습니다.

이 덩굴손 하나가 무게를 얼마나 지탱할 수 있을까요? 호박 같은 경우 저렇게 가는 덩굴손 하나가 자그마치 500그램을 견딜 수 있답니다. 그래서 재미난 게 호박의 경우 마디마다 덩굴손의 수는 3개나 4개인데 3개인 덩굴손 마디에 피는 건 수꽃이고, 덩굴손이 4개인 마디에 피는 건 암꽃입니다. 암꽃은 수정이 되고 나면 나중에 커다란 호박으로 자라기 때문이지요. 손이 하나일 때는 500그램을 견디지만 둘 그리고 넷일 때는 그 힘은 크게 더 늘어납니다. 실제 호박이 다 익으면 10키로그램 가량 하는 것도 많거든요. 암꽃한테 더 많은 능력을 부여한 셈입니다.

끝으로 잡을 수 있는 건 다 잡습니다.

덩굴손은 가리지 않습니다. 잡을 수 있는 건 다 잡습니다. 땅바닥을 기다가 나무를 타고 높이 올라가는 것도 좋아합니다. 정 둘레 잡을 게 없으면 바로 가까이 풀을 잡기도 하고, 하다못해 저희끼리 서로 잡으면서 버티기도 합니다. 땅 바닥을 길 때 정 잡을 게 없으면 심지어 돌멩이까지 잡습니다. 자기 둘레 그 어떤 인연이든 허투루 하지 않습니다.

하여, 생명손은 거룩합니다.

여러분도 기회가 되면 덩굴손을 가만히 만져보는 행운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무엇을 어떻게 잡을 것인가?
손의 탄성, 손의 생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