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소설]회귀의사 2화 - OT

in kr •  7 years ago 

“성찬아 일어나!”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야 이 자식아 어제 술을 얼마나 마신 거야!?”
“으음… 소리 지르지마…… 머리가 울려……”
“야 집합 시간 이미 지났다고 빨리 일어나!”
집합 시간? 무슨 소리지?
“이제 병원 돌아간다고!!”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눈을 떠보니 낯선 콘도 방이 보인다. 여기서 잠이 들었던 건가?
나의 머리를 울리던 사람의 정체는 동건이 형이었다. 근데 참 젊은 모습이네.. 마치 어제 꿈에서 봤던 모습처럼…

“형. 오랜만에 보네. 어제 꿈에서 형이 나왔었는데 형은 정말 하나도 안 늙었다.”
“얘가 아직 술이 덜 깼나. 정신차려!”
동건이 형은 내 등을 가볍게 치면서 빨리 가자고 말했다.
“근데 어디가?”
나는 아직 잠긴 목소리로 형에게 물었다.
“오티 끝났으니까 병원으로 돌아가야지. 정신차려 너 오늘도 6시부터 응급실 봐야 되잖아”
오티..? 응급실...?!?!
주위를 둘러보니 젊은 의사들이 오티의 여파인지 술이 덜 깬 모습으로 버스를 타려고 모여있다.
이게…어떻게 된 거지? 아직 꿈이 덜 깬건가???

“야 성찬아 너 어제 술 취해서 잠들었을 때 인턴장 뽑았었거든? 그때 너가 하임리히 해서 현아씨 목에 걸린 거 빼주고 했었잖아. 어쩌다 보니 너가 인턴장 하기로 했어.”
동건이 형이 뭐라고 말을 하는데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 대충 알겠다고 대답하고 버스에 탑승했다. 동건이형은 한번 더 괜찮지? 하고 확인을 했다. 어차피 꿈인데 무슨 상관이랴.
인턴장이란 인턴 의사들의 대표로 인턴과 병원간의 문제가 있거나 인턴 전체에게 전달사항이 있을 때 나서는 사람이다. 아무래도 150명의 인턴들의 대표로서 의견을 취합하고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귀찮은 직책이다. 인턴장을 할 경우 추후 전문 과를 고를 때 이득이 있다는 말도 있으나 정확히 어느 정도의 이득이 있는지도 불확실하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턴장을 안하고 싶어하고 대대로 우리 청운대학교 출신 중 한 명이 총대를 메곤 했다.
내 기억엔 당시 동건이 형이 인턴장을 했었는데… 나는 그런 완장 차는 것이 부담스럽고 내 취향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아무래도 당시 부러운 마음이 조금 있었나 보다. 그게 무의식에 반영되어서 지금 나의 꿈으로 발현된 거겠지.

버스는 1시간 가량 고속도로를 탄 후 병원 기숙사 앞에 우리를 내려줬다. 이놈의 꿈은 쓸데없는 데까지 디테일 해서 어째 이런 숙취도 리얼한지…

일단 기숙사로 올라가서 좀 자야지…

기숙사는 3인 1실로 사용한다. 아마 나머지 사람들은 바로 병원으로 근무 하러 갔을 거다. 나는 응급실 저녁 당번이라 저녁때까지 시간이 남는다.

뭐 어차피 꿈인데 무슨 상관이랴.

일단 한숨 자야겠다.

[휘오오오~ 휘오오오~ 휘오오오~ 오오 휘오오오오~]

웬 휘파람 소리지….

[니가 나를 잊지 못하게 자꾸 니 앞에서 또]

무슨소리야….

[Trou a a a ble! Trouble! Trou! Trouble Maker!]

이게 몇 년 만에 듣는 트러블 메이커냐…. 으… 내 핸드폰 벨소리구나… 일단 핸드폰 배터리를 뽑아서 꺼버린다. 다시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본 후 기숙사 방인 것을 깨닫는다.

“아직도… 꿈속인 건가…”
이제 슬슬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꿈이 이렇게나 리얼한 적이 있었던가? 꿈이 이렇게나 오래 지속된 적이 있었던가?

[찰싹]
[찰싹]

내 스스로 뺨을 때려보지만 뺨만 아플 뿐이다. 꿈에서 깨지는 않는다.
어제 마셨던 술기운이 다 달아나고 나니 남는 것은 더욱 큰 위화감뿐이다.
꿈이 이럴 수가 있나?
꿈이 아니라면 뭐지? 누가 장난치는 건가?

일단 세수를 하기 위해 화장실에 들어갔다.
화장실에서 들어가자 익숙하면서도 낯선 20대 중반의 나의 얼굴이 거울 속에서 기다린다.

“당연히 꿈이라면 나도 젊어져 있겠지.”

일단 바깥 공기를 좀 쐬야겠다.

기숙사 정문을 나서는 순간
“야 강성찬! 너 왜 전화기 꺼져 있어?!”
젊은 남자 한 명이 나를 불렀다.
자세히 얼굴을 보니 어디선가 봤던 얼굴이다. 분명 나보다 한 학년 위 선배로 응급의학과 였었는데.

“얌마, 늦잠 잤으면 빨리빨리 뛰어올 것이지 느긋하게 걸어오고 말이야, 아직 술 덜 깼냐?”

아 생각났다. 내가 인턴 첫 달 응급실 돌 때 나를 미리 불러서 일 시켰던 선배다. 그 선배가 나를 왜 찾지?

“빨리 안 뛰어와? 김현아 선생도 이제 출근했으니까 여태까지처럼 힘들진 않을 거야. 그나저나 너 인턴장 하기로 했다며? 그런 거 별로 안 좋아하는 놈인 줄 알았는데 웬일이냐..”

“아…네…”
아직 상황이 정확히 파악 되지 않는다.

“어제 너희 인턴들 오티 가는 바람에 응급실이 얼마나 바빴는지 알아? 어제 신나게 놀았으니 오늘은 두 배로 열심히 일 하면 되겠네?”

아마도 인턴 오티로 인해 미리 불려 나와서 일하던 예비 인턴들이 빠지게 됨으로써 말턴들을 다시 불러서 일을 시킨 모양이다. 게다가 저 선배의 경우 3월부터 응급의학과에서 근무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몸이니 빼도 박도 못하고 불려 나와서 일했던 듯 하다.

일단 나는 이 꿈이 흘러가는 대로 따라 가보기로 한다. 어차피 당장 무슨 목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또 현아씨는 괜찮은지 안부도 묻고 싶기도 하고.

선배와 함께 응급실에 들어가자 환자가 바글바글 하다.
선배는 의자에 대충 걸어 놓았던 가운을 집어 들며 마치 망토를 두르듯 멋들어진 동작과 함께 입는다. 가운의 왼쪽 가슴팍에 의사 박상민 이라는 글귀와 함께 선배의 사진이 명찰에 인쇄되어 있다.

맞아 박상민. 그게 선배 이름이었지. 까먹고 있었는데 김종국을 진짜 많이 닮았네. 팔뚝도 굵고…

“성찬아 어제 오티 갔다가 피곤한 건 이해 하겠는데 앞으로는 폰 안 꺼트리게 신경 좀 써.”
“넵”
적당히 맞춰준 후 나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응급실에서 진료를 어떻게 보는 거였더라…

그때 멀리서 가운을 여의사 한 명이 이쪽으로 다가오더니 내 자리 옆에 앉았다.
“성찬씨 안녕하세요, 속은 좀 괜찮으세요?”
현아씨는 가운 속에 녹색 수술복을 입고 있었다. 병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우리 병원에서는 당직복이랑 수술복을 구분하지 않는다. 즉 깨끗한 수술복을 수술 할 때도 입지만 병원에서 근무 하거나 당직 설 때도 입는다는 것이다. 응급실에서는 응급실 의사들이 따로 입는 옷이 있기는 하지만 인턴들의 경우 수술복을 입고 근무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 수술복 이라는 놈이 수술 할 때 입기 위해 만들어지다 보니 심미성 보다는 기능성 위주의 옷이다. 기능적으로는 통풍도 잘되고 편하긴 하지만 사이즈가 일단 S, M, L 로 세 종류밖에 없고 옷 자체도 펑퍼짐 하다 보니 입은 사람의 핏을 살리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성으로서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옷이라고 이해하면 편할 듯 하다. 자매품으로 간호사복이 있다. 병원 간호사들이 사복만 입으면 어찌나 멋쟁이 들이던지 조금 전까지 같이 일하던 간호사라도 퇴근할 때 마주치면 못 알아 보는 일이 부지기수다. 근데 김현아 이 아가씨는 수술복을 입었는데도 핏이 사는 걸 보니…. 의대 시절에 남자들 꽤나 울렸을 것 같다. 보통 의대는 남초 현상이 매우 심각하기 때문에 조금만 예뻐도 남자들이 벌떼같이 달려든다.

“아 네 그럭저럭이요. 현아 씨는 괜찮으세요?”

“네 덕분에요. 저는 술은 얼마 안 먹어서 많이 힘들지는 않아요. 요 며칠 제가 없어서 고생하셨다면서요? 제가 유럽 여행 갔다가 오티 일정 맞춰서 돌아오는 바람에 죄송해요.”
아무래도 며칠 내가 고생한 거가 자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나 보다. 사실 내 꿈은 어제부터 시작된 거기 때문에 고생하진 않았지만 맞는 말이긴 하지…

“죄송하긴요, 아직 정식 근무도 아닌데 먼저 부른 사람이 잘못한 거죠. 정 미안하면 다음에 술 한잔 해요”
말하면서 박상민 선배 쪽 책상을 흘겨봤다. 다행히 못 들었나 보다.

“박상민 선생님은 성찬씨 선배죠?”
“네, 하나 위 선배죠”
“그렇구나. 조금 깐깐하신 거 같아요. 인상도 조금 신경질 적이시고..”

정확하다. 저 선배가 깐깐하긴 하지. 하지만 생과 사가 오가는 응급실에서 그 깐깐함은 오히려 의사로서의 장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네. 조금요”

“저 없는 동안 고생하신 거도 있고 어제 일도 있고 해서 제가 밥 한번 살게요. 저희 나이트(밤 근무) 끝나고 데이(낮 근무)로 바뀌면 저녁 한번 먹어요.”
“그럴까요?”
아까 분명히 내가 술 사달라고 했는데…. 이 여자, 철벽녀인가?.
그래도 이런 미인이 먼저 밥을 사준다고 하는데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으랴.

“자 자, 잡담들 그만하고 환자 보자고”
박상민 선배의 말이 신호라도 된 듯 응급실에 환자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휴우 오늘 환자 진짜 많이 봤네”
밤에만 110명, 의사 세 명이 진료 본 것을 생각하면 적은 숫자는 아니다. 게다가 모든 환자의 예진은 인턴들 몫이라 나와 현아씨 둘이서 110명을 다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배는 조금 도와주긴 했지만 중환이 아니면 신경 안 썼기 때문이다.
“그러게요, 저 없을 때 성찬씨 혼자 이 환자들을 다 봤었으면 정말 힘드셨겠어요”

“그때는…정말 너무 힘들었죠.”
문득 12년전 첫 달 인턴 돌 때가 생각난다.

한달 내내 혼자서 근무하느라 고생했었다. 일은 어설픈데 환자들은 밀려들고 위에서는 쪼아대고. 기숙사에서 잠들면 못 일어날 까봐 응급실 뒤에 당직 실에서 거의 한 달간 생활했었다. 게다가 첫 주엔 박상민 선배가 기분이 별로 안 좋아서 맞춰주느라 힘들었다. 이틀에 한번씩 저녁 근무가 끝나면 24시간 해장국 집에서 소주를 각 일병은 마셔야 보내줬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새로 들어올 인턴들 입사 사진을 보고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미리 불러도 전화도 안받더니만 오티 끝나고 퇴사 하는 바람에 자기한테 인턴 일이 많이 올라와서 기분이 별로 였다고 한다. 나중에야 나도 일이 익숙해지고 요령이 생기면서 괜찮았었지만.

현아씨와 같이 기숙사로 걸어오면서 새벽의 찬 공기를 피부로 맞는다. 뭔가 보람차긴 한데 꿈이 이렇게 리얼해도 되는 건가? 꿈인데 왜 이렇게 힘들지?

“성찬씨 그럼 저녁에 다시 뵐게요~ 혹시 50분에 기숙사 앞에서 만나서 같이 가실래요?”

나는 아무리 꿈이래도 더 이상 응급실 근무를 할 생각은 없다

“아 네 그러죠.”

그런 내 생각과는 무관하게 대답은 반사적으로 나왔다.

일단 기숙사 가서 조금 잠을 자야겠다. 잠에서 깨면 꿈도 같이 깰지도.

기숙사 방에 들어오자 룸메이트 두 명은 아직 자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깨지 않게 조심 하면서 내 침대 위에 몸을 눕혔다. 잠깐 눈을 감았다고 생각했는데…

[굳 모닝~ 뚜두~ 빱빱빠 빠빠 빱 빱빱빠 빠]

“으… 무슨 소리야…”

“아 성찬아 미안. 내 알람 소리다.”

으으…. 룸메이트인가…

“그럼 더 자리~ 불 꺼 놓는다~”

철컥

룸메이트가 출근 시간에 알람을 맞춰 놨었나 보다.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다
2012년 2월 25일 8시 20분
잠깐 눈을 감았다 생각했는데 벌써 8시네… 한 두시간 잤나…

더 잘까 싶기도 했지만 일단 아직도 꿈에서 깨지 않았다는 사실에 약간 오싹해지며 잠이 달아난다.

“으…이놈의 꿈은 깨질 않네…”

내가 진짜 인턴이라면 저녁 근무를 위해 어떻게든 다시 잠을 청하겠지만 나는 일단 세수를 하고 병원 밖을 나섰다.

“인턴 할 땐 차도 없었는데…”

택시를 타기로 한다.

중년에 택시 아저씨가 나를 반긴다.
“어디로 모실까요?”
“롯데 타워로 가주세요?”
“잠실 역이요? 네~ 알겠습니다.”
택시 안에서 나는 생각에 잠긴다.
진작부터 머리에 떠올랐지만 애써 부정하려고 했던 생각…
이게 꿈이 아니라면 어쩌지?
생각해보면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 생생하다.
그렇다면 꿈이 아니라면 뭘까?
잠실 역에 도착하자 아직 공사중인 롯데월드 타워가 보인다.
아… 아직 완공이 되기 전이구나.

일단 꿈이라기엔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특별히 날라 다닌다거나 갑자기 느려진다거나 하는 비일상적인 부분이 전혀 없다. 주변 환경 하나하나도 너무나도 디테일 하다. 그리고 꿈에서 숙취가 있는 경우도 있나?

예전 디카프리오가 나왔던 영화에선 분명 꿈에서 깨는 방법은…
잠실 타워를 바라본다. 아직 미완성이지만 꼭대기에서 떨어지면 확실히 죽겠지.
주위를 둘러본다. 아직 아침 일과는 시작하지 않았는지 공사장 주변에 인부들은 보이지 않는다.
공사장 안으로 들어가는 나를 제지하는 사람은 의외로 없었다.

“하긴. 누가 자살하러 올 거라고 생각하긴 쉽지 않겠지.”

외부에 임시로 설치해 놓은 공사장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다행히 전기가 들어온다. 가장 위에 층으로 올라가봤다. 마지막에 완성될 건물의 높이에 비교하면 아직은 초라하지만 그래도 상당히 높다. 50m는 족히 되어 보인다. 올라가는 동안 지상을 바라보았으나 의외로 그다지 무섭지 않다. 사람이 가장 공포감을 느끼는 높이가 11m라는데 너무 높아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대략 40층 정도 올라왔을까? 가장 꼭대기 층은 콘크리트와 철골로 이루어진 뼈대 뿐이다. 뛰어 내리려면 얼마든지 뛰어 내릴 수 있는 상황이다.

높은 곳에 올라오니 공기가 더 차가운 것 같다. 추워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다리가 부들부들 떨린다.

자 그럼 뛰어 내려 볼까.

아까 11m 어쩌고 한 건 허세였다. 너무 무섭다.
나는 다시 공사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다.

내가 자살 시도를 했던 것과는 별개로 세상은 마치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아무런 변화도 없이 돌아가고 있다.

정리가 되지 않은 머리를 좀 식히려고 근처 맥도날드에 들어가서 맥모닝 세트를 시켰다. 부실해 보이는 머핀빵 안에는 베이컨이 들어있고, 해쉬 포테이토와 아메리카노가 나왔다. 해쉬 포테이토를 한입 물며 다시 생각을 정리해 본다.

아까 느꼈던 롯데 타워에서의 떨림이 아직 가시지 않는다.
나의 모든 감각이 지금 이 상황이 단순한 꿈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창문을 통해 비추는 햇살의 눈부심이, 아직은 쌀쌀한 아침 공기를 막기 위해 켜놓은 히터에서 나오는 열기가, 입안에 느껴지는 해쉬 포테이토의 짠맛이, 콧구멍을 통해 들어오는 아메리카노의 향기가, 옆 테이블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커플의 목소리가 이것이 현실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꿈이 아니다.

꿈이 아니라면 뭘까? Sf 소설에서나 나올법한 다중 차원? 평행우주? 타임 슬립?
스마트폰을 꺼내 셀카모드로 자기 얼굴을 다시 한번 들여다 본다.
10년 이상 젊어져 있는 내 얼굴이 낯설면서도 다시 젊어졌다는 생각에 기분이 나쁘진 않다.

생각해보면 어차피 현실에서의 나는 법원에서 징역을 판결 받았었다. 사업가로서의 강성찬은 이제 끝이라고 볼 수 있었지. 그런 상황에서 굳이 그 상황으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혹시 신께서 다시 한번 시작할 수 있게 기회를 주신 것이 아닐까?

지금 이 현상을 어떻게 인식 해야 할지 모르겠다. 꿈이든 아니든 중요하지 않은 거 같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우리가 인식하는 현실이 사실은 이데아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차피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것이 그림자가 전부라면 내가 인식하고 있는 것이 그림자인지 실체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거 아닐까?

“이게 현실이라면… 난 두 번째 기회를 받은 것이 되나.”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을 현실로 인지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지.
게다가 이 세계는 내가 알고 있던 원래 세계의 과거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인턴 오티때만 봐도 내가 알던 데로 흘러갔잖아?
지금 시간은 2012년. 2024년에서 온 나로서는 미래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정도라고.
한마디로 미래에서 과거로 왔다고 생각해도 된다는 것이다.
뭔가 한가지 놓치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일단 시동이 걸린 나의 뇌는 곧바로 다음 생각으로 넘어갔다.

“일단 돈을 벌어야 되겠는데…”

먼저 인턴을 그만둬야겠다. 이제 와서 인턴생활을 하는 것은 힘들기도 힘들거니와 돈을 번다는 측면에선 너무나 비효율적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로또 번호라도 하나 외우고 있을걸 그랬다. 하긴… 로또는 매주 하니 과거 언제로 돌아갈지 모르는 상황에서 외우고 있는 것은 너무 비현실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돈 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 더 손쉬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나는 일단 가장 가까운 은행으로 들어갔다.

“어떤 일로 오셨나요?”
4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 은행원이 나를 맞아주었다.
“마이너스 통장 만들려고요. 제가 의사이고 청운대병원에서 인턴을 하고 있는데요.”

은행 업무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연이율 3.15퍼센트로 3000만원 짜리를 만들었다. 일단 더 만들고 싶었지만 당장에 만들 수 있는 정도로만 만들었다.

나는 노트북을 하나 구입한 후 기숙사로 돌아왔다.
노트북을 와이파이에 연결한 후 인터넷을 뒤지기 시작한다. 대략 10분정도 검색 후 나는 난감해 할 수 밖에 없었다.
“2012년이면 아직 우리나라엔 비트코인 거래소가 없을 때군”

구글에 들어가서 외국 거래소를 검색한다. 1시간 가량의 씨름 끝에 외국 거래소에 가입을 성공한다.
1비트당 5달러.
바로 이거다. 나는 내 신용카드 한도의 최대치만큼 구매하기를 누른다. 띠링 소리와 함께 구매가 완료 되었다는 창이 떴다. 이제부터 펼쳐질 장밋빛 미래를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진다.

아… 맞다… 이 현상이 있었지…

[굳 모닝~ 뚜두~ 빱빱빠 빠빠 빱 빱빱빠 빠]

“으… 무슨 소리야…”

“아 성찬아 미안. 내 알람 소리다.”

어떻게 된거지?

“그럼 더 자리~ 불 꺼놓는다~”

철컥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한다
2012년 2월 25일 8시 20분

뭐지… 방금 전까지 난 비트코인을 구매하고 있었는데…

정확히 어떤 일이 벌어진 건지 파악이 되지 않는다. 역시 이 모든 건 꿈이고 난 아직 꿈속 에 있는 건가?
찬물로 세수를 하며 꿈이 깨길 바랐지만 정신만 더 멀쩡해질 뿐이다.

은행 문 여는 시간은 9시. 아직 시간은 좀 남았다.

“일단은 다시 해 봐야겠지”

기숙사 밖을 나서서 택시를 탄다.

나에게 있어선 몇 시간 전에 봤던 아저씨가 한번 더 나를 반겨준다
“어디로 모실까요?”
“잠실 역으로 가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맥도날드는 건너뛰고 9시가 되자마자 바로 은행으로 향한다

“어떤 일로 오셨나요?”
조금 전 만났던 40대 정도로 보이는 여성 은행원이 나를 다시 맞아주었다.
“마이너스 통장 만들려는 데요.”
절차를 알고 있으니 더욱 빠르게 일이 진행이 된다.

이번엔 노트북은 사지 않고 건물 2층에 있는 PC방으로 향한다.

아까 검색 했었던 비트코인 거래소에 접속하여 바로 거래를 시작하려는데.

“다시 아침으로 돌아가는 건 아니겠지…”

일단 시험 삼아 1비트코인만 구매를 눌러본다.

[띠링]

알람음과 함께 구매가 완료되었다는 팝업 창이 뜬다.

“좋아 풀매수다!”

내 신용카드 한도만큼 최대한의 매수 수량을 기입한 후 매수 버튼을 누른다.

띠링 소리와 함께 구매가 완료 되었다는 창이 뜨는 순간

갑자기 눈앞이 깜깜해진다.

[굳 모닝~ 뚜두~ 빱빱빠 빠빠 빱 빱빱빠 빠]

음…

“아 성찬아 미안. 내 알람 소리다.”

내 뒤척거리는 소리에 내가 잠에서 깼다고 생각했나 보다.

“그럼 더 자리~ 불 꺼놓는다~”

철컥

아무래도 몇 가지 확인이 필요하겠군

스마트폰을 켜자 2012년 2월 25일 8시 20분 라는 글자가 나를 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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