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옷 01; 첫번째 수요일

in kr •  7 years ago 

별 걸 다 좋아한다는 말은 어디선가 들어봤다. 그 말은 때로는 따뜻했지만 때로는 서늘했다. 다행히 나는 그에 신경 쓸 만큼 섬세하고 이타적인 사람이 아닌지라 "덕후의 멋짐을 모르는 당신이 불쌍해.." 라며 가볍게 넘겼다. 물론 그 말이 아예 기억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컨버스임.jpg

옷. 그 시시한 게 뭐라고 대체 이렇게까지 하는지 모르겠다. 잘 입어도 못 입어도 안되고, 신경 안 쓴 것 같으면서도 적당히 멋이 나야 한다는 그놈의 옷. 사실 이 컨버스 사진을 찍으면서도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다른 사람이 신었을 때 - 이것이프로젝트에도 컨버스만 신는 그런 멋쟁이가 있다 - 는 그렇게 멋지던 신발이 내게 와서 감길 때는 묘한 이질감을 풍기고 있었다. 나는 그 이질감을 떨쳐내지 못하고 더 완벽한 신발이 있을 거라며 또 다른 구매 버튼을 누르기를 반복했고, 그 결과는 비어버린 지갑과 허무함이었다. 사람은 옷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라, 옷이 사람으로 완성된다는 결론은 꽤 나중에야 내렸다. 그걸 알았다고 해서 술과 치킨을 줄이고 운동을 했던 건 아니지만.

청바지즈.jpg

어떤 사람과 관계를 이어나가려면 이유가 필요하다. 그 이유를 모르는지 아는지는 개개인의 영역이지만 항상 어떠한 이유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다. 옷도 마찬가지다. 내가 관계를 이어나갈 이유가 필요하다. 그저 예쁘다고 해서 모두 가지기엔 인생은 짧고 지갑은 얇다. 무의미한 관계들에 소비하는 감정을 잘라내듯, 옷장에서 무의미한 옷들을 골라내고 의미를 남기는 과정이 필요했다.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운 뒤 30만 원이 넘어가는 청바지 3벌을 개어 쌓으며 떠오른 작은 생각은 이렇게 글로 이어졌고, 옷의 이유를 찾아나가는 시시한 옷 이야기, 시-옷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P.S 미니멀리스트를 꿈꾸지만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30벌 이내로 정리할 생각입니다.

투자에 관해서는 지금 시장에서 특이점이 별로 안 보여서, 원래의 직업(?)인 패션 컨텐츠에 관련된 사소한 수필들을 연재할 생각입니다. 재밌게 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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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스트로 산다는 건 쉬운 게 아닌 거 같아요ㅠ 저도 옷장에서 무의미한 옷 골라내기를 시도해보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만답니다. 글 재밋게 잘 읽엇어요 :)

조금 늦었죠?
1일 1포스팅해주시면^^ 짱짱맨은 하루에 한번 반드시 찾아온다는걸 약속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