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귀난치성 질환자로서 첫 병원 방문

in kr •  7 years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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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야기한 적 있었지만, 저는 희귀난치성 질환자임에도 산정특례 신청이 너무 불편하여 이를 미루고 있었습니다. 병원을 1년에 1번 갈까 말까 하여 의료비 지원이 특별히 필요하지도 않고, 보건복지제도의 헛점을 지적할 때, "어쨌든 너도 수혜자가 아니냐?"는 말을 듣고 싶지 않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언제 어떤 사고가 있을지 모르고 큰 사고를 당한다면 치료비를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 결국 산정특례 신청을 했습니다.

산정특례 절차를 마친 이후 처음으로 병원에 가보았습니다. 아주 사소한 문제라 평소라면 병원에 가지 않았을 일인데, 그냥 갔습니다. 그렇게 방문한 병원에서 접수를 하고 진료실에 들어갑니다. 이상하게도 진료가 끝나고서야 의사가 묻습니다. 어떤 질환이고 어떤 치료를 받고 있냐고. 의사에게 내가 산정특례 대상자라는 사실만 전달되었는지, 아니면 질환이 명시되어있음에도 그리 물은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묻는 것에 대답했습니다. 어떤 질환이고, 증상이 경미하여 특별히 치료를 받고 있지는 않다고. 아무 문제 없다고 여러번 강조하였음에도 주사는 안 되겠다며 진료를 마칩니다. 처방전을 받아 약국으로 갑니다. 나는 이부프로펜 계열에 알러지가 있습니다. 내 질환과는 관계 없는 알러지입니다. 약국에서는 다시 병원에 전화를 겁니다. 그러더니 약도 됐다며 그냥 다음 날에 다시 방문하라고 합니다.

참 이상한 일입니다. 내 질환이 무서워 주사도 안되고 약도 안 된다는 것인데 무얼 하려고 다음 날에 다시 오라는걸까요. 물론 정말로 아무 문제가 아니라서 주사도 약도 필요가 없긴 했지만, 그냥 절차를 보고 싶어서 끝까지 절차를 밟았습니다. 지갑을 꺼내니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며 진료비가 없다는 것도 신선한 경험이었습니다.

이렇게 한번 하고 나니 산정특례 제도의 문제가 더욱 확연히 보입니다. 우선, 이번에 병원을 방문한 이유는 내 질환과는 무관하게 귀 안에 상처가 났는데, 상처가 있으면 이어폰을 착용하기가 불편하니 빨리 낫기 위해 연고라도 바르려고 갔습니다. 이 경우는 질환과는 무관하기에 특별히 산정특례를 적용할 이유가 없습니다. 내 생각에는 진단료를 내야했습니다. 이렇게 완전히 무관한 일에도 산정특례가 적용되니 의료쇼핑 등의 오남용 문제가 따릅니다.

그리고 접수 시에 산정특례 대상자라는 사실만 전달할게 아니라, 질환과 증상의 정도, 가능한 치료와 불가능한 치료 등을 상세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희귀난치성 질환자 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알러지는 많은데 이러한 알러지들을 기록해놓고 의사에게 전달해야 사고 없이 치료가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매번 매번, 환자가 모든걸 기억하고 의사에게 전달하는건 너무 불편합니다. 아마 제도적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었다면, 증상이 경미한 나에게까지 의사가 주사와 처방을 두려워 할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산정특례 신청 전에는 아무 문제 없이 받았던 치료들인데 지금은 어려워졌습니다.

산정특례 대상자 중에 적은 자기부담금조차도 부담하기가 힘들어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와 가족들이 있습니다. 치료를 포기하지 않고 이어가다 가족이 경제적으로 완전히 무너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부유한 집안에서도 시간적인 문제로 쪼들리다 경제력까지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전문가들이 부족하여 제대로 치료 받을 수가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지간한 장애에는 낙태를 허가하지 않는 한국에서는, 분명 나라가 책임져야 할 문제입니다. 차라리 낙태를 허가했다면, 그럼에도 낳은 부모의 책임이라며 회피할 여지라도 있었겠지요.

아무쪼록 제도가 개선되어 도움이 필요한 곳에 필요한 정도의 도움이 제대로 향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불편한 이야기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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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from Clean STEEM activity supporter

저도 중증질환자 등록이 되어 5년의 해택을 받았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적어보겠습니다.

  1. 의료기록은 지극히 사적인 것이어서 병원간에도 공유가 되지 않는 것같습니다.
  2. 방문시 진료전 의사에게 자신의 질병이력과 부작용등을 알리는 것은 환자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3. 병증과 처방약의 호환여부는 자세히 살펴야 합니다. 약이 해당 부위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에 퍼지기 때문입니다.
  4. 의사들은 의료사고를 피하려고 합니다. (경험상) 그렇기에 정확한 판단이 필요했을수 있습니다. 아마 처음 겪어보는 질환일수도 있지요. 의사의 진료도 결국 경험치를 통해 성장하니까요. 그래서 다음날 오라고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오늘밤 공부 하지 않을까요. ^^)

저도 열심히 병원다니던 때가 생각나 몇자 적어봅니다. 아직 미흡한 의료제도가 많습니다.

아무 문제 없다고 몇번이나 강조했기에 조금 아쉬웠습니다. 동의라도 받고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 좋을거 같네요.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의료체계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 하는 것이 '건강보험공단' 에서 굴리고 (?) 있는 약간 공공재와 같은 느낌을 주는 건강보험료 이다 보니, 비용을 줄이고 더 효율적으로 가동시키고자 하는 노력이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입니다. 답답함을 많이 느낀 하루셨겠군요 ㅠㅠ

사실 치료가 필요하진 않아서 별 필요는 없었습니다. 다행이지요 ㅎㅎ

오늘 병원 다시 가셔야겠네요. 번거로우시겠어요.
귀 안의 상처가 얼른 나아지길 바랍니다.
의료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몰랐던 내용 올려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잘 다녀오세요!

별 필요가 없어서 그냥 안 갔어요 ㅎㅎ...

별 필요가 없어서 그냥 안 갔어요 ㅎㅎ...

조금 다른 얘기일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의사를 만나서 진료받는 시간이 너무 짧은 것 같습니다. 환자 대기시간은 무척 길고요. 뒤로도 진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의사도 형식적으로 질문하게 되고, 환자는 더 궁금한 게 있어도 물어보기가 미안해집니다. 혼자 의사를 독차지하는 거 같아서요. 의사도 환자의 차트를 꼼꼼히 살펴보지 못하고요.
사실 알러지나 기존 질환 등은 모두 환자 차트에 써 있어야 하고, 의사는 진료 전에 차트를 꼼꼼히 읽어봐야하지요. 환자에게는 확인차, 혹은 더 궁금한 걸 해결하기 위한 용도로 물어봐야지, 환자에게 기본적인 정보를 직접 물어보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병원에서 의사가 환자를 상대하는 시간이 선진국에 비해 너무 짧다는 것을 예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양평에 와서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보면 서울과는 달리 의사와 10분간 면담을 하기도 합니다. ;;;

환자가 하는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의사가 하는 이야기도 다양해서 듣기만 해도 서로를 이해하는데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물론 환자가 계속해서 밀리는 상황이라면 조금 힘들 수도 있겠지만. 이런 식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제도적인 부분은 가장 관리가 편한대로 행정적으로 처리하는데서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의료와 관련해서도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되게 되면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오픈은 아니더라도 체계적으로 안전하게 관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됩니다.

제가 몰랐던 산정특례도 알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맞습니다. 진료시간이 너무 짧긴 해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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