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사] 유비는 서번트 리더십의 힘을 알고 있었다!

in kr •  7 years ago 

목차

  1. 무한 경쟁의 서막, 후한 말
  2. 무한 경쟁 시대에 서번트 리더십은 위험하다
  3. 유비가 무한 경쟁에서 이름을 알리다
  4. 유비의 필살기는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
  5. 서번트 리더십의 대가, 유비

무한 경쟁의 서막, 후한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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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말이란, 중국 역사에서 기원후 189년~220년입니다. 한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의 재위와 대략 일치합니다. 이 시기 한나라의 제도는 군벌 동탁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수많은 군벌들이 난립하는 지방정권들로 분열되었습니다. 삼국지 관련 도서, 게임으로 모두가 알고 있는 조조, 유비, 원소, 원술, 손책, 유표 등 많은 군벌들이 중국 땅을 통일하기 위하 첨예하게 대립하는 무한 경쟁과 혼돈의 시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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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복잡한 시대와 운명을 함께한 유비는(161~223) 어린 시절 아버지를 여의고 신발, 돗자리를 팔아 생계를 잇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15세 때 스승 노식에게 가르침을 받고, 동문인 공손찬과 친분이 두터웠습니다. 하지만, 공부보다는 사람 만나기를 좋아 했으며, 이때 관우, 장비와 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유비, 관우, 장비는 황건적의 난이 일어나자 사람을 모아 토벌군을 형성하여 전공을 세웠습니다.

그 당시 무한 경쟁의 시기에 두각을 나타낸 것은 빠른 상황 판단과 뛰어난 능력을 가진 조조와 하북 지역의 명문가 출신으로 화려한 인맥과 재물을 가진 원소, 강동의 호랑이라 불리며 세력을 확장하고 있던
손책, '마중적토 인중여포'로도 유명한 무력의 신 여포 등이 있었습니다. 이들 사이에서 유비는 어느 하나 특출한 구석 없이, 알 수 없는 뜻만 품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무한 경쟁 시대에 서번트 리더십은 위험하다

"리더가 부하를 섬기고 그들의 성장 및 발전을 통해 조직의 목표를 달성한다."

서번트 리더십이란, 부하에게 목표를 공유하고 부하들의 성장을 도모하면서 리더와 부하 간의 신뢰를 형성시켜 궁극적으로 조직성과를 달성하는 리더십입니다. 서번트 리더십은 리더가 부하를 섬기는 자세로 그들의 성장 및 발전을 돕고 조직 목표 달성에 부하 스스로 기여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Schwartz(1991)는 서번티 리더십을 조직과 구성원의 목표가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구성원 각자를 팀 리더의 일부로 봄으로써 자율성과 공동체 의식, 주인의식을 갖도록 내제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지시보다는 조언과 대화를 중요한 관리 도구로 사용하고, 구성원의 일체화와 공감대 형성을 통하여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는 리더십이라 정의하였습니다.

서번트 리더십만 놓고 본다면 너무 이상적이고 따뜻한 리더십입니다. 모든 전략과 전술을 상황에 맞게 사용해야 합니다. 권모술수가 횡횡하는 후한 말에 서번트 리더십으로 빠르게 목표를 달성하기는커녕 강력한 적들에게 먹잇감밖에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인의를 중시하는 유비는 당시 시대와 동떨어진 서번트 리더습으로 역사에 이름을 알리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며 언젠간 큰 뜻을 펼치기 위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유비가 무한 경쟁에서 이름을 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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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가 공손찬을 공격하는 시기에 유비는 공손찬의 도움으로 평원태수를 맡고 있었습니다. 이떄 조조는 아버지 원수를 갚기 위해 서주를 공격(194년)합니다. 이에 서주목 도겸은 사자를 보내 공손찬의 전해에게 지원군을 요청했고, 유비는 전해와 함께 서주를 도와주러 갑니다. 그 전투에서 조조에게 승리한 유비는 공손찬 휘하에서 도겸 휘하로 넘어가 단양병 4천 명을 지원받고 우여곡절 끝에 예주 자사로 소패에 머물게 됩니다.

유비는 권모술수에 능하지는 않았지만, 인의로 사람들의 신뢰를 조금씩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이 시기 도겸이 병으로 죽기 전에 유비를 후계자로 지목하고 죽게 됩니다. 유비는 한사코 거절했지만 미축, 진등, 공융 등의 설득에 의해 서주를 다스리게 되면서 무한 경쟁 시대에 이름을 알리게 됩니다.

유비의 필살기는 사람을 얻는 방법

이름을 알리게 된 유비는 얼마 되지 않아 원술, 여포, 조조 공격에 세력이 다시 약해지고 원소와 유포에게 의탁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세력 확장과 축소를 반복하는 중 신야에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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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는 당시에 사마휘를 만나 와룡과 봉추에 대해 듣게 됩니다. 유비는 서서에게 제갈량(와룡)을 데리고 오라고 하지만 서서는 유비에게 말했습니다. "와룡은 가서 만나볼 수는 있으나 몸을 굽혀 오게 할 수는 없습니다. 장군께서 의당 몸을 낮추시고 방문하셔야 합니다."

유비는 서서의 말대로 직접 관우와 장비를 데리고 제갈량이 있는 융중으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제갈량은 집에 없어 허탕을 치고 며칠 후에 제갈량이 집으로 왔다는 소식에 추운 겨울 눈보라를 무릅쓰고 두 번째 방문을 했더니 또 집에 없었습니다. 이제 유비는 인재를 갈구하는 심정을 담은 글을 남겨놓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시 한 번 제갈량이 집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유비는 잠자고 있는 제갈량을 깨우지 않고 공손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유비의 성심에 감동한 제갈량은 유비와 함께 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이처럼 유비는 사람을 얻기 위해 직책(군주)으로 찍어 누르듯이 다가가지 않고, 아랫사람에게 예의를 갖추어 신뢰를 형성하여 관계를 쌓고 조직의 큰일을 도모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서번트 리더십의 대가, 유비

유비는 앞서 설명한 것처럼 북방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가진 것이 없어 큰 대업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나라를 구하고자 하는 충성심의 명분과 스스로를 낮추려는 겸손함의 성품과 인화로 뭉치게 하는 힘의 실력으로 인해 능력 있는 부하 장수를 거느릴 수 있었고 그들을 성장하게 하여 목표를 달성하여 목적을 향해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유비는 중국을 통하지 못하고 촉나라는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후대는 유비를 기억하고 있고 아직도 그의 역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지금은 당시 후한 말보다 더 심각한 글로벌 무한 경쟁시대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하고 경쟁하는 시대에 유비와 같은 서번트 리더십은 어떠신가요? 항상 겸손하고 부하 직원들을 믿고 일을 맡기며 직원들의 성장을 통해 조직의 목표를 달성해보면 더 강력한 조직이 될 거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앞으로 법고창신의 뜻처럼(옛것을 통해 새로운 것으 만들다) 옛 역사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에 도움될 수 있는 정보들로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저 또한 steemit을 통해 많은 공부를 하길 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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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