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대한 글쓰기] 에세이에 대하여

in kr •  6 years ago  (edited)

kyslmate.jpg


 어느 아버지가 외국에 출장을 갔다가 두 아이를 위해 두 종류의 초콜릿을 사왔다. 8살 난 첫째 아들은 6살 여동생이 받은 초콜릿을 가지고 싶었다. 오빠는 여동생과 초콜릿을 바꾸고 싶다고 투정을 부렸다. 그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초콜릿을 가지고 오게 한 다음, 초콜릿의 포장을 뜯고 그 안에 있는 얇은 내지에 그려진 그림을 보여주며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너 혹시 모차르트 아니?”
 “응, 지난주부터 피아노 학원에서 모차르트 연습을 시작했어.”
 “이 초콜릿은 모차르트가 나고 자란 도시 잘츠부르크에서 만들어진 거야. 그 도시 곳곳엔 모차르트를 기념하기 위한 장소가 있지. 너도 알다시피 모차르트는 위대한 음악가잖아. 그가 어렸을 적에 살았던 집이 바로 이 도시에 있어. 이 초콜릿은 그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모차르트 초콜릿’이야. 아주 역사가 오래 됐지.”
 “모차르트라니, 대단한 초콜릿이구나!”


 이 이야기를 통해 말 하려는 건,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사줄 땐, 똑같은 걸로 사라는 조언이 아니다. 이 이야기는 삶과 에세이에 대해 말하고 싶은 은유다. 초콜릿은 모든 이들이 손에 쥔 자신의 삶이고, 초콜릿 포장 속 얇은 내지는 에세이다.

 에세이는 삶에 대한 기록이다. 그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삶의 과거일수도 있고, 오늘을 토대로 미래를 예측하는 내용일수도 있으며, 아침에 일어난 사소한 사건에 관한 이야기일수도 있다. 무엇을 이야기하든지간에 에세이는, 그저 남들도 다 가지고 있는 초콜릿 같은 삶을 이전과는 다른 초콜릿으로 만들어준다.

 삶이 이야기로 표현될 때, 그 삶은 붙잡고 싶은 가치를 내포하게 된다. 그저 흘러가버릴 수도 있었던 일상이 신선한 이야기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에세이는 삶을 특별한 것, 즉 ‘모차르트 초콜릿’으로 만들어 준다. 포장 속 얇은 내지를 들추어 보는 순간, 손 안의 초콜릿은 특별해지는 것이다. 특별하게 만든다고 해서, 다른 초콜릿으로 속이는 것이 아니다. 유심히 보지 않았다면 그저 스쳐지나갔을 또 다른 진실을 드러냄으로써, 삶을 ‘이야기할 만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모차르트초콜릿1.jpg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명물, 모차르트 초콜릿. 이 초콜릿이 특별한 건, '맛'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 모두는 일상을 마법 같은 순간으로 만들어주는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에세이를 쓴다는 것은 삶을 둘러싸고 있는 이야기를 끌어내어 정제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다. 있었던 일을 극적으로 재조합하고, 작가의 통찰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일상을 기술하는 일기와는 조금 구별된다. 일기는 재료에 가깝다면, 에세이는 좀 더 가공된 제품에 가깝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기록하면 픽션이 된다. 에세이는 어디까지나 논픽션이다. 일어난 일의 경계 속에서 그 일을 최대한 극적으로 구성하여 쓰는 것이다. 하지만 거짓의 영역으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만일 거짓이 섞일 경우엔 읽는 이들이 알아차릴 수 있게 해야 한다. 에세이는 일어난 일이라는 요소를 재구성하고, 사소한 부분은 가공하여 독자가 그 이야기에 최대한 빠져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난 스위스에서 활동하는 작가 수전 티베르기앵이 에세이의 특징에 대해 들려준 이야기를 좋아한다. 수전은 자신의 책에서 도리스 레싱의 말을 인용하여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각각의 개인을 하나의 소우주로 바라보고 개인적인 경험을 그보다 큰 무언가로 바꾸어, 개인적인 것을 일반화하는 것”


 그리고, 에세이의 형식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한다.

 에세이는 소설과 시의 경계 위에 존재한다. 에세이에서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소설 형식을 빌려 말하고, 시를 다듬을 때처럼 다듬는다. 소설 형식은 진술을 너무 야단스럽지 않게 유지해준다. 시 형식은 그 안에 담긴 의미를 확장해준다. 소설 형식과 시 형식의 이런 균형이 바로 에세이를 창의적으로 만들어 주는 요소다. 그로 인해 에세이는 민첩하면서도 날카롭다.    -수전 티베르기앵, <글쓰는 삶을 위한 일 년>


 어떤 에세이는 시에 가깝다. 또 어떤 에세이는 소설처럼 느껴진다. 수전의 말처럼 이건 에세이의 형식적 특성에 기인한다. 에세이는 소설과 시의 경계 위에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 수필 공모전에서 수상한 작품들이나, 1~2세기 정도만 거슬러 올라가 유명 작가들의 수필을 보면, 산문시인지, 산문인지 구별하기가 힘든 작품들이 많았다.

 요즘 에세이의 트렌드라고 할까. 오늘 날의 에세이는 ‘시적 상징과 의미’보다 서사의 비중이 높은 형식이 많아졌다. 나 역시 에세이는, 이야기(서사성)가 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바탕이 되고, 그 속에서 삶의 진실 내지 본질을 건져 올려야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야기만 있어서는, 또 에세이라고 봐줄 수 없다. 이야기만 있는 건 소설이고, 통찰과 언어만 남으면 시가 된다. 하지만 에세이는 이야기와 성찰이 모두 담겨 있어야 한다.

 나는 에세이를 써왔고, 삶의 이야기를 건져 올려 정제하고 다듬는 이 작업을 사랑한다. 소설이나 동화 같은 픽션을 쓰는 일도 흥미롭지만, 에세이만큼은 아니다. 픽션은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지만, 에세이는 내 삶을 새롭게 만들어준다.

 오늘도 난 손에 쥔 내 초콜릿을 이리저리 살펴본다. 그러다 초콜릿 포장지의 한 귀퉁이에서 작은 글씨를 발견한다. 가슴이 뛰기 시작한다. 그 글씨는 삶의 이면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진실’이며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의미’이다. 그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내 삶도 마법 같은 일상으로 바꾸어줄 것이다.

영감5.jpg

Authors get paid when people like you upvote their post.
If you enjoyed what you read here, create your account today and start earning FREE STEEM!
Sort Order:  

li-li님이 kyslmate님을 멘션하셨습니당.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연결되용~ ^^
li-li님의 평론가들의 도서리뷰 # 58 (181122)

... himapan 2 kyslmate/td> 4 kyunga 6 ...

초콜렛의 비유가 너무 달콤해서 머리에 쏘오옥~~ ^^
이렇게 감동으로 적어 주셨는데 자꾸자꾸 잊어버리지 말고 어려워도 꾸준히 써보는 습관을 들여야 겠어요.

해피써클님의 마음의 미각을 자극한 건가요ㅎㅎ
매일 매일 내 삶을 이야기로 특별하게 만들어보아요. ^^

초콜릿은 모든 이들이 손에 쥔 자신의 삶이고, 초콜릿 포장 속 얇은 내지는 에세이다.

초콜릿 비유가 와닿아요. 에세이.. 에세이를 생각하면 막연하고 어렵게 느껴져서 그저 일기로 만족하고 마는 날이 많아요.
평범한 삶 속에서 모두에게 공감이 될 만큼 건져올린 멋진 서사와 깊은 통찰 자신만의 시각으로 담아 낸 잘 정제된 이야기.
그것이 에세이군요. 이런 말 이미 많이 들으셨겠지만 솔메님 에세이를 정말 좋아합니다.

초콜릿 비유가 와닿았다니, 기쁘네요ㅎ 찰진 비유를 떠올린 후엔 신나게 글을 쓸 수 있지요.
이미 고물님은 삶의 한 페이지를 특별한 초콜릿으로 만들고 계시잖아요^^ 소설처럼 박진감 넘치는 이야기 말이에요.
늘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좋은 글 감사해요 :)

감사합니다. 자주 교류해요^^

우와, 글이 쉼 없이 읽히네요. 정말 재밌어요! ;)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기쁩니다ㅎㅎ

에세이와 소설 중간 정도 되는 글을 쓰고 있습니다. 소설보다 인기는 좋지만 에세이보다는 인기가 좋지 않아요. 그래서 느낀 것. 사람들은 소설보다 에세이를 좋아하더군요. 음... 왜일까... 생각중입니다. ㅎㅎㅎ

자전적 소설을 쓰고 계시죠~~^^
직접 자기 이야기를 하는 에세이에서 현실적인 공감을 많이 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ㅎ

어제 올린 글이 너무 맘에 안들어서 머릿속에 아른아른하던찰라 이글을 보니 조금 더 많은것을 생각하게 하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

글을 쓰다보면 성에 안 차는 글들이 있죠. 때론 만족스러운 글도 있구요ㅎ 어떤 것이든 씀으로써 앞으로 한 걸음 나가는 것 같아요^^

쓰고 싶은데 어떻게 풀어야할지 생각이 너무 많아요~ 이러면 꼭 못쓰거나 이상하거나~~ 일단 써보는걸로 한걸음 나가고 있다고 믿어봅니다&&

생각이 많아서 혼란스러울 때는, 꼭 전하고 싶은 한 가지 메시지에 집중하면 도움이 되더라구요. 함께 한 걸음씩 나아가자구요! ㅎㅎ

남들도 다 가지고 있는 초콜릿 같은 삶을 이전과는 다른 초콜릿으로 만들어준다. 이 문장이 특히 좋네요 :)

네 삶의 이야기를 정제하여 에세이로 기록하면 일상도 조금은 특별해지는 기분이 들더라구요. 감사합니다ㅎ

제 삶을 마법처럼 바꿔줄 에세이, 저도 써봐야겠네요.

발레는 비록 손 놓았지만, 그 도전은 기록으로 인해 빛이 났지요ㅎㅎ

아, 그것도 에세이였나요?
이런.. 제가 편견이 있었나봐요. 뭔가 각잡고 좀 깊게 사색해서 쓰는 게 에세이라고. 발레 얘기는 좀 편하게 쓴 거였거든요.
흠, 그것도 에세이가 될 수 있는 거였군요.

에세이의 소재는 그 어떤 것도 될 수 있지요.ㅎ
편하게 써도, 힘들게 써도 일상의 것을 재조명해서 의미를 추출하면 에세이가 되는거죠.^^ 중년 여성의 발레 도전 및 실패기,, 훌륭한 에세이 소재입니다.ㅎㅎ

짱짱맨 호출에 응답하여 보팅하였습니다. 꾸준한 활동을 북이오(@bukio)가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북이오! ㅎㅎ

어쩜 이렇게 글을 잘 쓰시는지 ㅎ
제 삶속의 내지에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좀 더 깊이 있게 들여다 봐야겠습니다.

하나의 평범한 나무가 가구로 변하는 마법의 이야기가 씌여있지 않을까요.ㅎㅎ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실과 본질을 건져올리는 작업.. 에세이란 사색의 결과물이네요. 역시 훈련하지 않으면 쉽지는 않겠어요..

내게 있었던 일을 정리하는 것부터 시작이니 쉽게 생각하면 일기처럼 시작할 수도 있지요^^

잘 배웠습니다~ 가즈앗!!! ㅋ

감사합니다. 조선생님! 가즈앗.ㅎㅎ

글을 잘 쓰고 싶네요
많이 생각하고 꾸준히 써야겠지요~^^;;

재치있고 즐겁게 쓰시는 팥쥐님도 잘 쓰고 계신걸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