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지 않는 사람보다 한 권의 책만 읽는 사람이 더 위험하다
사람들은 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책을 꽤 읽는다는 사람들도 '한 권의 책'을 읽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면 과학 분야, 특히 생물학이나 진화심리학 같은 종류가 그렇다. 비슷비슷한 종류의 이론만 새겨들을 뿐이다.
더욱이 한국처럼 최재천이라는 걸출한 생물학자가 자리를 잡고 나면 그쪽으로 지나치게 쏠리는 경향이 있다.
진화심리학의 거대 이론들은 인간에게 평균적인 성향이 있다는 것을 밝힌다. 그러나 그 이론들은 개개인의 행동을 예측하는 데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 그만큼 평균치와 실제 행동의 이유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 게다가 진화심리학이 말하는 평균적인 인간의 성향이 정말 평균적인지도 의심스럽다.
진화심리학은 매우 '그럴 듯하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그 점을 꼬집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그럴 듯한 이야기'를 만들어내고(또는 고정관념을 드러내고) 그 이야기를 증명하기보다는 또다른 고정관념을 논리의 근거로 삼는 다는 것이다. 사실 '그럴 듯한 이야기'는 대개 과학에 의해 부정되어 오지 않았던가. 그런데 진화심리학은 그럴 듯한 고정관념을 마치 진실인 것처럼 설명한다.
예를 들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현대 남성들에게도 원시시대의 단순한 행동방식이 내면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권력을 쟁취하고 그것으로 여성을 유혹하라'라거나 '부를 얻어서 혼외자식을 낳는 데 사용하라' 또는 '남의 여자와 관계를 맺는 데 사용하라'는 심리가 마치 '유전인자'처럼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매우 그럴 듯하지만 저 논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단히 '현대적'이며 가부장적인 사고 방식의 깊은 뿌리가 보인다. 특히 '부를 얻어서 혼외자식을 낳는 데 사용하라'는 논리는 가부장적인(능동적인 남자와 수동적인 여자의 역할을 '정상'이라고 보는) 결혼 제도가 과연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를 따져보아야 한다.
진화심리학자들은 거기에 더해서 한층 더 재미있는 드라마를 펼친다. 그런 '남성성'에 저항하는 대응 방식이 현대의 여성에게 깊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돌보아 줄 부양자 남편을 확보하려고 노력하고, 그런 다음에는 1등급 유전자를 제공할 수 있는 애인을 찾아라. 정말 재미있지 않은가. 이런 스토리 구조는 현대에 들어서나 시작된 것임을 생각해 보면 정말 더 '재미있지 않은가.'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마음'이 10만년이나 15만 년 전에 시작되었다고 하면 과연 그 당시의 적응 모듈이 현대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예를 들면 인류는 모계사회를 거쳐 지나왔다. 그 모계사회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역할이 지금과 많이 달랐으 것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저런 마음만 지속되었는지도 설명해야 한다. 그뿐만 아니다. 동성애나 자살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특히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핵심적인 특징인 의식, 자유의지, 그리고 추상적 사고는 진화심리학으로 설명할 길이 없다. 그리고 진화심리학이 제시한 증거들 가운데 상당수가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는 것은 학계에서도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불행하게도 학계 안에서만 그런 것 같지만.
과연 여성을 유혹하는 것이 '권력'과 '부가 전부였던가? 현대의 경우에도 꼭 그렇게 볼 수는 없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하나의 원칙만을 따르는 기계가 아니다. 다 비슷한 것 같지만 또 다 다르다. 진화심리학은 지나치게 환원주의적인 논리를 펼친다. 재미있고 그럴 듯하다고 그대로 수긍할 일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티븐 제이 굴드(어떤 책이었더라??)나 제리 포더(<마음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주디스 리치 해리스(<개성의 탄생>)의 논리적 근거를 검토해 보기 바란다.
데이비드 버스의 <진화심리학>에서도 그런 억지 논리가 간간히 보인다. 대단히 재미있는 책이지만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만일 그런 책을 읽었다면 다시 찬찬히, 케빈 랠런드, 길리언 브라운의 <센스 앤 넌센스> 같은 책을, 그리고 제레미 리프킨의 <바이오 테크의 시대>, 스티븐 로우즈와 리처드 르원틴의 <우리 유전자 안에 없다>와 같은 책도 읽어보길 권한다.
한 권의 책이나 다를 바 없는 한 종류의 책이 아니라 말 그대로 여러 권의 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다른 의견을 보여주는' 책을 읽기를 바란다. 그리고 제발, '재미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진실과 거리가 먼 주장들을 '학술적인 가면'을 씌워 '영향력 있는 언론의 지면을 채우는 일'이 줄어 들었으면 좋겠다.
이 내용에 대해서는 내가 쓴 책 <책의 정신: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에서 "네 번째 이야기 : 객관성의 칼날에 상처 입은 인간에 대한 오해"를 참고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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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공감하는 글이네요. 참고하라고 일러주신 책도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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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합니다. 여러권을 읽는쪽이 되어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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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책의정신 ㅎㅎ 저자분이셨군요. 몇해전에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외국책 그거 프랑스 혁명에 대한 내용 읽으려다가 찾아 읽었지 싶은데 재밌었어요 고마습니다 재밌는 책 써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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