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하려다가 아무것도 못하는

in kr •  6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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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려다가 아무것도 못하는


나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완벽하려다가 아무것도 못하는' 인간이지 않을까. 뭐 얼마나 완벽하게 일을 해왔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냐고 물으면 오히려 그 반대다. 완벽한 적은 결코 없었고, 실수투성이에 내가 만든 디자인이든 그림이든 글이든 결과물을 마음에 들어한 적이 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주관적인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분야라서 더 그런 것 같지만, 동시대에 디자인과를 졸업한 친구들도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다. 그간 해왔던 일에 대해서 "그건 진짜 마음에 들었어."라고 할 만한 작업물이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회사 밖의 개인 커리어는 더 주춤하게 된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 속에서 한층 위축되어 뭘 해야 할지 몰라 몸부림친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건지, 졸업한 지 10년이 지나 반성하듯 적어본다.


재능 소외..?


(다른 전공도 동일하겠지만) 미대를 다니게 되면 미적 감각이 뛰어난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이게 된다. 나는 디자인과를 다니면서 주변에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았다. 그림도 한가닥 할 뿐만 아니라 특이한 취미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사실 요새 유행하는 원데이 클래스에 있는 취미들을 주변 사람들이 10년 전에도 각자 알아서 하고 있었다. 천장 배선공사며 빌트인 수납장까지 만들고 있는 친구, 며칠 배우고서는 니트 가방을 뚝딱 만드는 친구, 반려견을 그려서 굿즈를 만드는 친구, 나무를 짜서 스피커를 만드는 선배, 캘리그래피 고수인 선배, 어느 날 실크스크린에 관심이 생겼다며 작품을 뚝딱 만들어내는 친구.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보니 작은 재능을 발견해도 하찮게 여겼던 것 같다. 재능은 작은 거라도 잘 키워내면 생에 도움이 된다. 절대 하찮게 여길게 아니다. 반전인 것은 위에서 언급한 재능 많은 친구들이 자신을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평가받기 위해 만드는 결과물


지금의 10~20대의 미대 입시는 어떠한지 잘 모르겠지만, 현재 30대인 미대 졸업자들은 미대 입시에 대한 비슷한 기억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학교와 병행하면서 경쟁하듯 A+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평가받기를 연속한다. 수능이 끝나면 약 2달간 아침 9시부터 밤 12시까지 그림을 그린다. 매일매일 그림에 대한 평가가 이어지고 점수를 적게 받은 사람은 혼나거나 때론 본보기로 선생님이 점수가 낮은 그림을 찢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나 잔인한 방식의 평가인데 그때는 흔한 일이었다. 대학에 와서는 좀 더 유연한 평가를 받긴 하지만 입시 때와 비교해서 구도가 크게 바뀌지는 않는다. 열심히 밤샘을 해가며 만들어간 과제가 "땔깜으로도 못 쓸"이라는 표현을 듣기도 했다. 외부강사님 한 분만이 칭찬을 자주 해주셨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칭찬을 받고 의아했던 기억이 있다.

진짜 칭찬해주신 건가. 칭찬을 받으니 이상해.

칭찬을 받기 위해 일을 했는데, 칭찬을 받고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다니 아이러니하다. 지금도 그렇게 크게 달라지지는 않은 것 같다. 그 때문인지 그럴싸한 거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부담감에 항상 짓눌려왔던 것 같고 그 근원에는 항상 인정 욕구가 있었다. 스스로 인정하면 되는데 그게 참 안된다. 입시에 세뇌당한 결과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러기엔 많은 시간이 지났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해보고 싶어서 해 본 작업이 있었는지 기억이 전무하다. 어쩌면 회사에서 시키는 일만 하다가 퇴사 이후에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생각인 것 같기도 하다.


완벽하려다가 아무것도 못하는


완벽하려다가 아무것도 못하지 말고 좋아하면 그냥 하면 된다. 너무 간단한 건데 이런 마음을 꾸준히 이어나가기가 참 어렵다. 스스로 창작을 즐기다가 끝내는 놀이처럼 되어야 지속 가능하다는 생각이 든다. 못하면 어때 못할 수도 있지 하는 생각으로 발걸음을 떼는 게 중요하다. 생각은 이렇게 하면서도 실천이 잘 안 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해서이다. 앞으로 일이든 취미든 칭찬을 바라지도 않고 스스로의 동기로 움직이고 싶다. 한 가지 발전이라면 요새는 칭찬이 들리면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작은 재능일지라도 소중한 것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고, 헐렁헐렁하게 좀 못하더라도 꾸준히 길러내고 싶다. 그래서 오늘은 다시 사과로 시작하려고 한다. 오늘은 크레파스로 사과를 그려야겠다. 누구에게도 평가받지 않고 오직 나를 위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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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ck to basic. 왠지 멋진데요. 뭐든 기본이 가장 중요하죠. 즐기면서 그리는 건 또 다른 기분이겠네요. :)

아무도 의식하지 않는다는건 정말 너무 어려워요. 제 자신부터 엄청 의식하게 되거든요ㅋ
백투베이직 해봐야죠~!

반전인 것은 위에서 언급한 재능 많은 친구들이 자신을 뛰어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다들 너무 겸손한건가요? ㅎㅎ
사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나름의 재능을 발휘하며 살지만... 그것이 얼만큼 대단한건지 스스로 느끼지 못하며 사는것 같네요^^

칭찬받지 못하고 자란탓도 있고..요새 어린 아이들은 다르기를 바래봅니다ㅋ
독거님도 스스로 칭찬 많이 해주세요~!!

우리나라 교육 평가 방식이 정말 잘못이 많다고 봐요.
인간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평가를 해야하는데(이런 점은 좋고 이건 좀 고치면 어떠냐?)
상대적인 평가에 중심을 두다보니...

그래서 우리는 아이들이 학교를 조금 다니다 말았다는^^

아 그러셨군요~!
어렸을 때 받는 교육이 많은 영향을 끼치니까, 조금씩 계속 바뀌어나가길 바라는 수밖에요..ㅎㅎ

경아님 글을 읽다가 보면, 글에도 디자인이 살아 숨쉬고 있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뭔가 숨쉬고 있는 글을 읽는 기분이랄까요 :) 아마도 아무도 보지 못할 그 사과 그림이 참 예쁠 것 같네요.

사실 스팀잇 계정을 정리할까 말까 참 고민 많이 했는데요ㅋ 가끔씩 스쳐가는 응원들과 글로소득이 힘이 되서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요샌 별 다른 활동을 하진 않지만ㅎㅎ 감사합니다..!!

완벽하려다가 아무것도 못하는..
오늘 제가 느꼈던 상황과 감정에 딱 들어맞네요.

저도 뭘 그렇게 완벽한걸 만들려고 고통스러워 하는지ㅋ 제가 생각해도 가끔 우스워요ㅠ

평소엔 전혀 고맙지 않다가도, 잃어버리고 나서 소중함을 절감하기도 해요.

재능을 계속 아끼고 물을 줘야 커나가는거 같아요ㅎ 감사합니다~!

  ·  6 years ago (edited)

"땔깜으로도 못 쓸"이라는 표현을 듣기도 했다

갑자기 한때 드라마로 유명했던 똥덩어리 대사가 떠오르네요ㅎ

아 맞아요 딱 그 느낌이에요ㅋ 똥! 덩! 어! 리!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