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중세시대는 대체로 게르만의 유럽정착과 르네상스의 발흥 이전 사이의 기간을 말한다. 서로마제국의 몰락의 혼란과 암흑기에서 서서히 회복해 가던 시기로 전근대적 봉건제하에서 상공업을 바탕으로 부르주아가 힘을 기르고 있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기를 경제적 변화 바탕으로 한 사회의 변화와 제3계급의 등장 과정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귀족과 왕들의 투쟁 과정으로 역사를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보면 놓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바로 중세의 인간과 근대적 인간과의 인식방식의 차이이다. 이를 간과하고 합리주의적인 현대인의 관점으로 중세 시대를 보면 중세인들의 정확한 의도와 역사적 의미를 오해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백년전쟁 막바지에 도팽 샤를은 왜 랭스에서만 대관식을 올려야 했나? 잔다르크가 천사의 계시를 받았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실제 군사적 효과를 올릴 수 있었나? 당시 왕에게 전통에 따른 적법한 절차는 가능하면 따라야 할 규범이 아니라 정통성 그 자체였다. 천사를 만나는 종교적 체험과 예언은 주관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체험이 아니라 현실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보았다.
우리가 생각하고 원하고 행동하는 것은 크게 근대 이후 부르주아와 자본주의적 가치관에 영향을 받고 있다. 우리가 인정하던 안 하던 이건 사실이다. 현재에는 명예를 지키겠다고 싸움을 벌이는 사람이 존중받지 못한다. 근면과 성실, 검소함이 존중받고 부(富)와 의전으로 자신을 돋보이려는 행동은 딱히 존경심이나 경외심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 인간 사이의 사회적 관계는 대체로 경제적 이익을 바탕으로 한 계약이지 신분과 관습에 따라 결정되는 충성 관계는 아니다. 전통은 존중하되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감정은 자제하고 약속은 정확하게 지키는 것이 미덕이다. 우리는 이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만 이런 가치관은 근대 이후에 확립된 것이고 한국인의 전통도 아니었다.
이런 면에서 요한 하위징아의 책 '중세의 가을'은 독창적인 역사서이다. 인물을 따라 서술한 기전체 방식도 아니고 사건에 따른 편년체식 기술도 아니다. 없이 13-4세기 부르고뉴지방의 분위기와 상황,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적절한 에피소드와 함께 서술한다.
중세인에게 뚜렷하게 나타나는 특징은 감정표현과 경험이 훨씬 선명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현대인보다 더 쉽게 감동하고, 더 쉽게 열광하고, 더 쉽게 슬퍼한다. 어린아이처럼 순진하여 잘 속기도 하지만 용서가 없는 잔혹한 복수자이기도 했다. 저자의 말처럼 어린아이의 마음을 한 거인들이었다.
귀족과 왕은 신이 만든 질서의 정점으로 지상에서 신의 영광을 재현하는 존재였다. 따라서 그들의 생활과 의식은 위엄과 위대함을 불러일으키도록 고안된 정교한 연기였다. 왕은 자신 개인의 영광과 복수를 위해 전쟁을 일으키고 결투를 신청하기도 했다. 이해관계를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없어서 최종적으로 사용하는 정치적 수단을 전쟁이라 부르는 현대인에게 이런 면은 이해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의 가치관으로 이는 당연하고 정당한 것이었다. 니체는 근대 이후에도 이런 삶의 형식과 가치관을 지키고 있던 왕족과 귀족을 일컬어 '장엄한 유령'이라고 했다. 재치 있는 말이다. 당시에 이들은 장엄한 유령이 아니라 장엄한 연기자였다.
종교가 생활 모든 면에 스며들어 있음에도 궁정 생활과 결혼풍습, 기사도 문화 모든 면에서 성적 모티프가 풍부했다. 이들에게 기독교적 가치관은 청교도적 금욕주의와는 조금은 다른 것이었다.
제3계급은 아직 존중받지 못했다. 이들을 농민, 노동자와 명확히 구분하지도 않았고, 이들의 기능과 천성을 귀족과는 다른 천한것으로 보았다. 부(富)를 축적한 극소수 부르주아도 독자적인 가치관을 발전시키기보다는 귀족의 생활을 흉내 냈다. 아직 이들에게 자신의 신분과 가치에 대한 자각은 충분치 않았다.
내세에서의 행복을 추구하는 중세인들은 죽음이 앗아갈 삶의 영광을 멀리하고 삶의 고통을 처절하게 인식하는 염세적인 문학에 심취했다.
이들에게 종교는 삶에 깊숙이 침투해 있었다. 이들에게 종교는 신념의 일부가 아니라 생활의 일부였다. 교회는 사교생활의 중심지였다. 중세인의 마음속에 신은 어딘가에 존재하는 절대자가 아니라 교회 안에, 성체 속에 존재하는 실제였다. 성인은 특별한 기능이나 상징을 통해 신의 역할을 대리하는 듯 보였다. 이런 종교의 영향은 너무도 강력하여 내세와 현세, 종교와 속세의 차이가 희미하게 보일 정도였다.
중세의 역사를 이해한 것이 아니라 중세인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한듯한 느낌이다.
참고로 예전 우리 민족의 특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한국의 장례의식에서 보듯 누군가를 잃었을 때 체통을 차리지 않고 슬픔을 표현하는 것, 차례나 의전을 서로 겸양하며 양보하는 것, 서로를 멀리까지 나와 배웅하고 바래다 주는 것... 이런 것이 중세 유럽인에게도 있었던 것은 참으로 재미있었다. 전근대적인 삶은 문화와 상관 없이 서로 닮은 특성이 나타나는가 싶기도 했다.
위 글과 다른 글들은 저의 개인 블로그에도 올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