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명 보도 관행

in kr •  7 years ago 

우리나라가 현재 가진 문제 중 가장 큰 문제가 언론 문제라는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당사자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 실제로 언론 문제는 심각하다.

실력도 없고, 양심도 없는데 자신들은 실력도 양심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기사를 쓸 능력도 갖추지 못한 주제에 지들 입맛에 맞는 기사만 쓰려고 들다 망하는 기사가 한둘이 아닌데도 그 문제점을 지적하면 지적당하는 것에만 핏대를 올린다. 언론의 자유가 비판할 자유이지 비판으로부터의 자유가 아니라는 기초적인 사실조차 이해할 실력이 없기 때문에 벌어지는 비극이다.

이 비극은 기레기라 불리는 언론인들의 비극일 뿐만 아니라 국민 전체의 비극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이란 신경체계와 같다. 나라에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언론이 제대로 작동을 하지 못하면 통증을 제대로 느끼지 못해 결국 썩어 문드러진다. 4대강 사업이나 최순실 국정농단 같은 것이 신경이 마비된 국가에서 어떤 일까지 벌어질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하지만 이런 일에 대해 반성하는 언론인들은 별로 없다. 반성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은 뼈아프게 반성하고 있는데 정작 반성해야 할 인간들은 반성하지 않는다. 대부분 '딴 인간들은 그랬는지 모르지만 난 아니야'라고 생각한다. 스스로의 양심과 그에 따른 행동을 과대평가한다.

구성원들이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으니 생기는 우리나라 언론들의 수많은 문제 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오보를 오타 정도로 취급한다는 것이다. 얼마전 YTN 김경수 의원실 압색오보처럼 터무니 없는 오보를 내도 으레 있는 그런 일이 되버린다. 그나마 YTN 정도나 되니까 그 정도 반성이라도 한다.

조중동(요샌 조동중으로 뒤집혔다며?)같은데는 실수에 가까운 오보를 넘어서 의도적이고 악의적인 오보를 '제작'하기도 한다. 중앙일보 이정재 기레기의 '한달 후 대한민국'같은 언론사에 길이남을 오보는 '오피니언' 기사란 이유를 들어 눙치고 넘어간다. 아무리 오피니언이나 칼럼이라고 해도 '한달 후 대한민국'정도 되면 본인의 입으로 반성 한마디는 해야한다. 하지만 그런거 없다.

박근혜 앞에서는 탄핵 당하고 나서도 손 한번을 못들던 것들이 정권이 바뀌자마자 '질문은 기자의 의무죠' 같은 후안무치한 소리를 한다. 이런 식이니 자정같은건 기대할 수가 없다. 결국 시스템으로 바꿔나가는 수 밖에 없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익명 보도 관행을 제도적으로 개혁해야 하는데서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 익명보도는 필요하다. 기사가 나감으로써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는 내부 제보자나 범죄 피해자의 경우 반드시 익명으로 보호해줘야 한다.

하지만 그 외의 경우는 실명보도를 원칙으로 해야한다. 우리나라 기자들은 조자룡 헌 칼 쓰듯 핵심 관계자니 내부 관계자의 증언이라면서 기사를 쓴다.

이게 뭐가 문제냐면

  1. 기자 혹은 언론사가 실제 없었던 말을 자신이 쓰고 싶은 기사를 만들어 내기 위해 만들 수 있다.

  2. 핵심 관계자라는 인간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기사가 나가도록 만들기 위해 실제 있지도 않은 일을 있었던 것처럼 거짓말 할 수 있다. 자기 이름도 안나갈껀데 알게나 뭔가.

익명보도란 오보 혹은 조작의 가능성이 한없이 높으며, 그걸 검증하는 것도 쉽지 않다. 논두렁 시계가 좋은 예다. 기자가 없는 말을 만들어 낸건지 검찰인지 국정원 관계자가 기자에게 거짓말을 한건지 실제로 그 관계자가 있기는 한건지 알게나 뭔가. 그 결과 초대형 오보가 나갔다.

기자는 청와대나 검찰의 핵심 관계자-기자들은 빨대라고 부르는-에게 증언을 듣고 싶을 수 있고,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걸 핵심 관계자 운운하며 기사를 쓰는건 전혀 다른 문제다. 오보 가능성이 무한대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기자의 양식을 믿자고? 좋다. 기자의 양식은 믿는다 치자. 그럼 누군지도 모르는 핵심관계자의 양식을 어떻게 믿나? 익명 뒤에 숨어 자기 하고싶은 말을 하는 사람의 말에 왜 공신력이 실려야 하나? 왜 그런 오보 가능성을 허용해야 하는가?

한 두번은 그 익명의 핵심 관계자 덕에 좋은 기사가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놓고 보면 해악이 훨씬 크다. 여태까지 우리나라 언론들이 그걸 증명해왔다.

라면 만들 때도 자기 이름을 걸고 만든다. 왜 나라나 사회의 방향을 결정지을 수도 있는 중요한 보도를 하는데 이름도 걸지 못하는 이의 말을 들어야 하나? 그가 내부고발자인가? 범죄 피해자인가? 아니다. 그냥 그는 '빨대'일 뿐이다. 빨대는 빨대로써 취급하면 된다. '핵심'이라는 말로 빨대를 치장해서는 안된다.

더 이상 조작의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하는 익명보도 관행을 허용해서는 안된다. 필요하다면 법으로라도 익명보도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정해야한다. 이것이 우리나라 언론 개혁의 시작이며, 기자들이 기레기라는 욕을 들을 필요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한 첫 걸음이며 보다 나은 민주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효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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