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엉부엉_#2] 비 오는 날의 추억 ...

in kr •  7 years ago  (edi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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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오는 날에 기억나는 일들...

비 지나간 날, 청승맞게 집에서 바느질을 하다가 잠깐 머리 식히러 들어왔더니 모모꼬님께서 재미있는 이벤트를 열어주셔서 덥썩 참여해봅니다!

#1_여고시절

대학부속 여고를 다녔던지라, 넓디넓은 캠퍼스를 지나 교문을 나가야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수다꽃을 피우기 일쑤였던 우리 친구들은 평소처럼 조잘조절 떠들면서 하교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중간쯤부터 갑자기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비를 비할 곳은 아무데도 없었고, 교복을 입은 우리는 모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젖었어요. 지금 같으면 난처하고 짜증을 냈겠지만, 그때는 모든 것이 재미나기만 했습니다.

처음에는 가방을 머리에 쓰려고 시도하다가 곧 포기하고, 깔깔 웃으면서 교문앞까지 걸어갔어요. 그러고나서 비는 거짓말같이 그쳤습니다.

학교 밖에 있던 사람들은 잠깐의 비를 피해서 상점 처마밑에 서있다가 나왔고, 오로지 우리들만 완전히 흠뻑 젖어있는 모습이 어찌나 급 민망해지던지... 뭉쳐서 있으면 부끄럽지 않지만, 각자 헤어지고나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정말 멀었어요. ㅎㅎㅎ

그때 그 친구들은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손주를 보고 있을지... 그리워집니다.
설마 이 안에서 스티밋을 하다가 저를 알아보는 것은 아니겠지요? ㅎ

#2_첫사랑

친구가 아는 동생이라고 하면서, 외국 사는데, 부모님 교통사고 나서 잠깐 다니러왔다며 불러냈어요. 딱 보는 순간, "아 왜 저런 사람은 나와 연결이 되지 않을까?" 했는데 우리 테이블로 오더라고요. 헐! 그리고 그 사람도 그렇게 잠깐 인사하고 난 이후에 제가 계속 눈 앞에 떠다녔다고 하니, 서로 한 눈에 꽂힌거였죠.

결국 그 사람이 제 친구를 졸라서 "그 누나랑 술 한잔 하자"며 자리를 만들었고, 제 친구는 아무 의도 없이, 그날 두통이 너무 심해서 자리를 피해줬어요. 혹시 연하는 생각이 없느냐는 그의 말에 "아래로 5년 위로 10년은 무방하다"고 간 크게 말했었네요. ㅎㅎ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이었는데, 12시 술집에서 나와 (그 당시에는 영업을 12시까지만 해야했어요) 그냥 무작정 걸었어요. 헤어지기 싫어서... 그래서 한강 변에 자기가 잘 가는 자리가 있다며 저를 데려갔고, 결국 거기서 우산 쓰고 앉아서 밤을 새웠네요. 집에는 친구를 팔았는데, ㅎㅎ 잘 들어갔느냐고 안부전화를 집으로 날려주는 덕분에 엄마한테 들켜 혼 나고.. ㅎ

그 사람은, 외국으로 돌아가는 날까지 일주일 남았는데, 가기 전에 한 번 더 보자며 그날 저녁때 헤어졌는데, 결국 가기 전날까지 매일 만났고, 연애 편지도 그 이후에 꽤 썼어요. 국제적 연애를... 사실 나이가 제법 들어서 만난 사이었는데, 그 전까지는 다 무효고 이 때가 진짜 첫사랑으로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그 이후는 생략...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발견했는데, 머리 살짝 벗겨진 아저씨가 되었더군요. 친구신청은 물론 하지 않았죠! ㅎ 추억은 그냥 추억으로... ^^

#3_아이를 키우며

이거는 그닥 재미있지 않아요. 아이를 데리고 잠시 캐나다에 있던 시절, 눈이 많이 오는 지역이어서 겨울 부츠를 사줘야했어요. 금요일 학교 끝나고, 신발 상설 할인매장이 있다는 쇼핑몰에 데려가는데, 비가 추적추적 오고 있었어요. 빈자리가 멀어서 제법 걸어야했기에 입구에 아이를 내려주고 먼저 들어가라고 했어요. 해가 일찍 지는 그 나라에 맞게 3시반이었는데도 사방은 벌써 밤처럼 어두웠어요.

차를 세우고 왔더니, 아이가 몰 입구에서 있는데 떨면서 우는 것 같았어요. 깜짝 놀라서 물으니, 넘어졌다고...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다독이며 들어가자고 했더니 아이가 움직이질 않더라고요. 아이 상태가 이상해 보여서 "집에 갈까?" 그랬더니 말 없이 끄덕끄덕... 일단 집으로 데려왔어요. 아이는 놀란 게 가라앉지 않았어요.

엄마가 차에서 내려주니까 후다닥 몰 안쪽으로 달려가려 했는데, 앞에 커다랗게 서있던 입간판 쇠기둥을 못 본 거예요. 아이는 정통으로 머리를 부딪치고 쓰러졌고, 짧게 기절을 했다더라고요. 그 부분이 생각이 안 난대요. 눈을 떠보니 몇몇 사람이 주변에서 자기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괜찮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하면서 일어났는데 몸이 덜덜덜 떨리더라는 거예요.

넘어지면서도 머리를 바닥에 다시 한번 심하게 부딪쳤더라고요. 혹은 앞쪽에 살짝, 그리고 뒤에 크게 났어요. 외국에선 아프면 병원 가기도 힘들고, 사실 이런 상태에 가 봐야 응급실에서 고생만 할테니 정말 난감하더라고요. 아이는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 제일 힘들었던거 같아요.

그깟 비 좀 맞으면 어떻다고 애를 그렇게 혼자 내려놨는지 정말 후회가 되었어요. 따뜻한 차를 마시게 하고, 등도 쓸어주고, 놀랐을때 뚫어주면 좋은 곳도 사혈해주고.... 안아주고... 속이 울렁거리지는 않느냐며 계속 물었고, 정말 끔찍한 밤을 보냈어요. 정말 그 순간에는 얼마나 많은 불길한 생각을 하게 되던지... ㅠㅠ

다행히 그 다음날 아이는 좀 진정된 상태로 깨어났고, 혹이 생긴 것 이외에는 큰 이상이 없었지요. 집에서 하루 더 쉬고, 마지막 날인 일요일에 다시 쇼핑몰에 나갔는데, 환하게 웃는 아이의 얼굴을 보니, 정말! 사람을 보면서 저절로 음악소리가 들리는 경험을 처음으로 했습니다.

아이의 주변으로 찬란한 음악소리가 들리면서, 지금 가진 현실에 대한 감사와 행복감과.. 세상 더 이상 바랄 것이 하나도 없는 벅차오르는 기분이 뭔지, 그 가슴떨림이 뭔지를 실감했네요. 당시에 맨날 중고상점에서 옷 사입히고 그랬는데, 그날은 결국 새 신발 사줬어요.


다시 돌아보니...


추억이라는 것들이 돌이켜보면 대부분 사소한 일들인데, 참 크게 남아있는 것 같아요. 지금도 이 글을 쓰는데, 혼자서 장난스레 웃다가, 막 설레다가, 그리고 마지막에는 다시 감사로 마무리 되네요.

이제 두 밤만 더 자면 딸 만나러 갑니다.
비에 얽힌 추억 말고, 맑은 날의 추억을 더 많이 만들고 오고싶네요.
많이 많이 잘 해주고요!

다시금 딸 만날 생각에 벅차오르면서 마무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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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대한 추억이 엄청 많으시네요 보면서 저까지 감정이입이 되는 기분이네요~ ! 좋은 글 너무 감사합니다~!!:D

모모꼬님 덕분에 잠시 생각에 잠겨봤어요! 보팅도 일케 많이 해주시고, 찾아와서 응원해주시고 너무 감사드려요. 저도 얼른 열심히 해서 다른 분들께 용기를 드리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이런이런... 추억을 소환하는 모모꼬님의 이벤트에 참여하셨군요! 덕분에 저도 라슈에뜨님의 기억 속으로 들어가 봅니다.

따님이 다쳤을때 얼마나 놀라셨을지.. 그래도 그만하기 천만 다행이에요 +_+
비에 관한 추억을 잘 읽고 갑니다 ;D

그땐 정말 놀랐어요. ㅠㅠ 지나고나니 에피소드이지만....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그 음악소리가 들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