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평전
부제 : 오천원권 지폐의 비밀
1. 들어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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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 이이(1536~1584)는 퇴계 이황과 함께 16세기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하여 16세기를 대표하게 되었던 것일까? 그 동안 한반도를 살다간 인물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으며, 조선의 최고 권력자는 왕이었고 이이와 이황은 어찌 보면 일개 학자이자 신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은 500여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을 빛낸 무수히 많은 위인과 권력자들을 제치고 천원과 오천원권 지폐에 각각 새겨져 한국을 대표하는 얼굴이자 위인이 되었으니, 이는 어떻게 보면 하나의 미스터리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율곡 이이가 오늘날 오천원권 지폐에 새겨진 이유. 오늘은 그 미스테리를 한 번 파헤쳐보고자 한다.
2.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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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역사학자가 “모든 역사는 현대사”라고 그랬던가. 우리는 역사를 연구함에 있어서 과거의 사실들을 그대로 연구하지는 않는다. 수없이 많이 들어왔듯 우리는 과거의 수많은 사실(事實)중에서 역사적 사실(史實)을 발굴하여 조사를 하는 것이고, 여기에서 불가피하게 가치판단이 이루어지며, 따라서 모든 연구는 현재적인 맥락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실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현재적 맥락만을 강조할 경우에 과거의 역사는 역사 그 자체로서의 본연의 의미를 상실하게 되므로, 결국 현재와 대상 사이의 긴장을 어떻게 유지하느냐가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인물사의 경우도 마찬가지. 어느 인물을 연구한다고 했을 때, 그 인물을 조명하는 현재적 맥락은 물론 중요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그 인물이 살았던 당대적 맥락의 뒷받침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율곡 이이(李珥)는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는 천재였다. 여덟 살에 화석정(花石亭)에 올라 지은 시에는 그의 광기(光氣)가 잘 드러나 있다.
林亭秋已晩 임정추이만
騷客意無窮 소객의무궁
遠水連天碧 원수연천벽
霜楓向日紅 상풍향일홍
山吐孤輪月 산토고륜월
江含萬里風 강함만리풍
塞鴻何處去 새홍하처거
聲斷暮雲中 성단모운중
숲 속 정자에 가을이 깊으니 시인의 생각은 끝이 없구나.
먼 곳에 흐르는 물줄기는 하늘에 잇닿아 푸르고,
서리 맞은 단풍은 하늘을 향하여 붉어가네.
산은 외로운 둥근 달을 토해내고,
강은 만 리의 바람을 머금었도다.
변방의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가.
소리만 끊어져 저녁 구름 속에 잠기네.
-화석정-
나는 여덟 살 때 무엇을 하고 있었나. 이러한 천재성에 노력까지 더하여 그는 한 번도 하기 힘든 장원을 9번이나 하며 과거에 급제, 구도장원공이라 불리게 되었다. 조정에 들어서는 정언, 홍문관 부교리, 사간원 대사간, 사헌부 대사헌 등을 두루 지내었다. 그는 자신의 시대를 개혁이 필요한 중쇠기로 이해하였으며, 이러한 현실 인식에 기초하여 사회 제반 제도들의 개혁을 끊임없이 요구하였다. 그는 진정한 사대부로서의 사명을 서둘러 다하고 1584년 49세로서 고단한 생을 마감한다.
삶의 복잡다단함을 무시하고 한 인간의 일생을 몇 줄 글에 담아내는 일이 조금 꺼림칙하긴 하지만, 율곡의 삶은 대체로 위와 같았다. 그는 가난했고, 조선 성리학의 대가였으며, 어머니가 그 유명한 사임당 신씨였다는 사실이 조금 특별하다면 특별하다고 하겠다. 또한 우리가 생각하듯 그렇게 인자하고 온화한 선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천재들이 보통 그러하듯 자기 자신의 학문적 깨달음에 자부심이 대단히 강했으며, 그로 인해 때론 잘난 척을 하기도 하고 남을 논박하는 데에도 거침이 없었다. 유성룡이 중국 사신을 대하는 데에서 실책을 범하자 남들 다 듣는 곳에서 그에게 큰 소리로 면박을 준 사람이 바로 율곡이었다. 그는 또한 조정에서도 일 만들기 좋아하고 독선적이라는 비난을 받기 일쑤였다. 물론 이는 그의 적극적 개혁 의지를 못마땅하게 여긴 일부 신하들의 비방이었으나, 그가 모든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아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또한 그의 사후에도 좋은 평가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이의 문묘종사를 둘러싸고 서인과 남인 사이에 격렬한 대립이 일어났던 것인데, 이이의 입산 경력 혹은 그의 사상이 이단이라는 주장 등으로 그는 죽어서도 곤혹을 겪었으며 문묘에 배향되었다가 사상 초유로 출향되고, 다시 복향되는 수난을 겪었다.
그런데 위와 같은 이이의 삶의 모습을 보아도, 그가 오천원 권에서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유를 유추해내기 어렵다. 이제부터는 평가의 문제다.
3.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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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불빛 아래에서 자신의 빼어난 용모에 스스로 감탄해본 경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그러한 자신감은 오래지않아 평범한 백열등 아래에서 여지없이 무너지곤 하지만, 조명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새삼 느끼게 한다. 조명이란 그런 것이다. 한 인물을 조명한다는 것은 그의 삶의 굴곡들을 때론 환하게, 때론 어둡게 비추어 그의 전체적인 상을 그려내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 조명에 따라 원빈이 되기도, 옥동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동안 율곡 이이를 비추던 빛은 어땠을까?
영화 ‘살인의 추억’을 보면 계속되는 강간살인사건 현장에서 그 어떤 증거도 발견할 수 없자, 송강호의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한다. ‘증거가 안 나오는 거, 이게 힌뜨가 될 수 있을 거 같은데요, 힌뜨!’ 보통 성폭행 사건 현장에선 털이 나오기 마련인데 증거가 없다는 것은 곧 범인이 무모증일 것이라는 추리. 그는 그 때부터 동네 목욕탕을 전전하기 시작한다. 나를 비롯한 대다수 한국인들의 인식 속에 율곡 이이(李珥)는 이미 흠이 없는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천재성과 십만양병설에서 보이는 예지력은 이미 신격화되었으며 어렸을 적부터 학문에 정진하여 성리학의 대가가 되었고, 언제나 청렴하여 가난함을 면치 못하였으며 효성 또한 지극하였다는 점은 그를 성인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인간이 생래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온갖 단점과 나약한 모습(그의 과격하고 독선적 이미지 등)은 어느새 사라졌으며, 과거의 위인들이 으레 그래왔듯 그는 온갖 장점을 모아놓은, 그리하여 국민의 존숭을 받는 영웅이 되었다. 전국에 율곡을 이름으로 하는 단체, 행사는 율곡부대, 율곡기념관, 율곡서당, 율곡이이선생제. 율곡선생기념사업회 등등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으며, 부모님의 태몽도 알지 못하는 우리는 율곡 이이의 태몽을 꾀고 있다. 그런데 어쩌면 이거, 힌뜨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한 사람에 대한 평가가 이리도 완벽하고 일관될 수 있는 것인가? 그는 어떻게 하여 완벽한 한국의 얼굴이 될 수 있었을까? 혹시 누군가의 의도적 띄우기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황의동氏의 ‘율곡학 연구의 어제와 오늘’을 보면 시대별 연구 현황을 알 수 있다. 율곡에 대한 연구는 20년대에는 논문 3편, 30년대에는 논문 5편에 그쳤다. 40년대에는 논문 3편에 책이 한 권 나왔으며, 50년대에는 두 권의 책과 6편의 논문이 발간되었다. 이러던 것이 70년대에 이르러 3편의 박사논문과 저서 4권, 역서 및 편저 2권, 석사논문 15편, 일반논문이 88편으로 양적인 성장을 볼 수 있으며 80년대로 넘어오면 저서 8권, 역서 및 편저 7권, 박사논문 8편, 석사논문 79편, 일반논문 192편이 쏟아져 나와 급격한 증가추세를 보인다. 그리고 90년대에 들어오면 저서가 23권, 역서 및 편저가 11권, 박사 논문 18편, 일반 논문 237편이 집계된다. 이를 통해 볼 때 율곡학의 연구는 70년대부터 증가추세를 보이면서 8,90년대에 와서는 급격한 증가추세를 보여 양적, 질적인 성장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황의동, 「율곡학 연구의 어제와 오늘」『오늘의 동양사상』제6호, 2002. 3. pp.251-267.)
율곡이 오천원권 지폐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은 1972년 7월. 공교롭게도 율곡에 대한 연구가 급격한 증가추세를 보이기 시작한 때와 그 시점이 일치한다. 한국은행에서 발간한 “화폐이야기” 책자에서는 화폐 도안 인물선정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현재 우리은행이 발행하고 있는 화폐의 도안은 국민여론과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수렴하여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각 분야별로 국가와 민족을 대표하는 선현 또는 상징물을 채택한 것입니다.” 즉 1970년대 화폐 도안의 인물 선정 당시에 율곡 이이(李珥)가 한국을 대표하는 선현 또는 상징물이었다는 것이며, 여기에는 그 당시 ‘급증’하고 있었던 율곡에 대한 연구 및 연구단체가 한 몫 단단히 했으리라는 점은 자명해 보인다. 오천원권 화폐에 같이 등장하는 오죽헌도 70년대 초에는 한가한 시골이었으나 지금은 전국적 관광지가 되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훨씬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질문을 던져본다. 율곡이 과연 무슨 이유로 인하여 1970년대에 들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을까? 그 때까지 잠자고 있었던 율곡의 어떠한 면이 현재적 맥락 속에서 다시 평가되어 그토록 부상하고 화폐에까지 그 얼굴을 드높이게 된 것일까? 율곡의 현재와 대상 사이의 긴장은 어떻게 형성되어 왔는가?
황의동氏는 위 논문에서 율곡학 연구가 7,80년대에 들어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인 것은 율곡사상연구원이나 율곡학회 등이 주도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라고 하고 있다. 거기에 그 동안 꾸준히 진행되어 온 율곡전서에 대한 번역작업이 대충 마무리된 것 또한 연구를 한층 가속화시켰으며, 학계 내지 문화계의 여건이 개선된 것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원인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율곡학 증가의 계기가 아니라, 그 근본 원인일 것이다. 율곡사상연구원 등은 어떻게 태어나 율곡학을 장려했으며 율곡은 어찌하여 7,80년대 시대의 조명을 받게 되었는가? 몇 가지 요인으로 나누어 ‘추론’ 해보고자 한다.
첫째. 율곡의 대학자(大學子)적 이미지가 그 시대와 부합하였다. 본래 유교사회로서 문(文)을 무(務)보다 숭상하는 풍토가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거기다가 종전 후, 자원이 풍족하지 못한 우리나라에서는 뛰어난 인재가 곧 경쟁력이었으며 우리나라 사람들은 교육을 신분상승의 지름길로 여겼다. 우골탑이라는 말처럼 돈이 없는 부모들은 소를 팔아가면서까지 자식을 대학에 보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천재였고, 학문에 힘썼으며, 그리하여 위대한 대학자의 반열에 오른 이이(李珥)는 부각될만한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었을까?
둘째. 이이의 시무육계와 같은 국방사상은 7․80년대 군부독재의 정당성을 강화해주는 측면이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율곡은 48세의 나이에 병조 판서로 임명되어 몇 가지 국방 대책을 올린다. 10년이 되지 않아 토붕(土崩:흙이 무너짐)의 화가 있을 것이니 미리 10만의 병력을 양성하라는 10만양병설, 변방을 튼튼히 하고 말[馬]을 갖출 것, 국방 강화를 위해 국가 재정을 풍부히 할 것 등을 건의하는데 실현되지 못하였다. 그리고 10년 뒤, 임진왜란이 일어나 ‘토붕의 화’가 미치었으므로 후세 사람들은 율곡의 선견지명에 놀라고 또 그의 말이 실현되지 않은 것을 안타까워하였다. 이러한 율곡의 국방 사상은 군부가 정권을 유지․ 강화하고 또한 군전력 증강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역설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1973년 “자주국방을 위한 독자적인 군사전략을 수립하고 전력증강계획을 발전시키도록 하라”는 박정희 대통령 지시에 따라 국방부는 국방 8개년계획(1974~1981)을 수립하여 1974년 대통령의 재가를 받음으로써 최초의 자주적 전력증강계획이 시작되었는데, 이 사업의 명칭을 다름 아닌 “율곡 사업”으로 하였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명칭에는 율곡의 유비무환(有備無患) 사상을 본받자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한다.
위와 같은 이유 등으로 인하여 현재와 율곡 이이(李珥)간의 긴장이 형성되었고, 율곡에 대한 연구도 증가했으며,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오천원권 지폐에까지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물론 율곡 이이는 매우 뛰어난 대학자이자 경세가이자 스승으로서 마땅히 존경받을만한 인물이기에 부각이 된 것이겠으나, 위에서 제시한 이유가 그가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내는 데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으리라고 생각한다.
4.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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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의 율곡에 대한 연구는 성리학에 대한 연구가 가장 많았고, 교육사상과 경세사상이 그 다음 관심사로 연구되어왔다. 나는 여기서 그를 조금은 다르게 조명해보고자 한다. 내가 초점을 새로이 맞추고 싶은 부분은 바로 그의 삶의 일관된 자세라고 생각되는 ‘위민(愛民)정신’이다. 성리학이나 그가 주장했던 경세론들은 오늘날의 현실과는 부합하지 않는 면이 있으나, 관리로서 또한 학자로서 그 시대의 지식인으로서 율곡이 가졌던 ‘위민정신’은 오늘날 계승 ․ 발전시켜야 하는 소중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성리학, 경세사상, 그리고 교육사상 일반을 관통하는 원리 또한 어쩌면 ‘위민(爲民)’이고 ‘애민(愛民)’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실려 있는 이이(李珥)의 기록을 조금만 살펴보아도 그의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삼가 생각하건대 오늘날 기강이 무너진 것과 민생이 곤궁한 것은 상께서도 이미 다 알고 계실 것이므로 더 진달할 것이 없습니다마는,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성상께서는 이미 마음을 미루어 위임하시려는 뜻이 적으시고 조정 신하들은 또한 담당하여 힘을 다해보려는 뜻이 모자라는 것입니다.” “생민의 곤궁은 날로 더 심해지고 조정의 정령은 모두 문구(文具)뿐이니, 반드시 경장(更張)한 뒤에야 백성을 구제할 수 있는 형세입니다.” “지금의 천재(天災)와 시변(時變)은 근고에 없던 바로서 신민들은 두려워 떨며 다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고 있습니다. 전하를 위해 헤아려보건대 널리 선책을 구하여 시대를 구제하는 데에 급급하셔야지 깊숙이 팔짱만 끼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셔서는 안 됩니다.”
위에서 보이듯 이이(李珥)는 왕에게 민생의 곤궁을 이야기하며 적극적으로 경장론을 펼친다. 그는 지배 계층 내부의 모순을 누구보다도 적실히 인식하고 있었다. 그 당시 농민들은 방납의 폐단과 잔인한 환곡제 등으로 인하여 황폐해져갔으며 도적의 무리가 생겨났다. 이이가 23세인 1559년에 일어난 임꺽정의 난은 그러한 온갖 사회 모순의 폭발이었다. 이이는 가난했고 관직에 나가지 않을 때에는 배를 굶주리는 날이 많았으므로 민중들의 피폐한 생활을 누구보다 절감했고, 그리하여 그가 주장하였던 말과 행동에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가득 담길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 동안 이이에 대하여 이루어진 평가에 다소의 과장이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그가 위대한 인물이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선조실록 1584년 1월 1일자 율곡 이이의 졸기(卒記)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이는 타고난 기품이 매우 고상한데다가 수양을 잘하여 더욱 높은 경지에 나아갔는데, 청명한 기운에 온화한 분위기가 배어나오고 활달하면서도 과감하였다. 어떤 사람이든 어떤 상황이든 한결같이 정성되고 신실하게 대하였으며, 은총과 사랑을 받거나 오해나 미움을 받거나 털끝만큼도 개의치 않았으므로 어리석거나 지혜 있는 자를 막론하고 마음으로 그에게 귀의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또한 궁벽한 마을의 일반 백성들도 그의 죽음에 더러는 서로 위로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우리 백성들은 복이 없기도 하다’고 하였으니 그는 정녕 위인(偉人: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이었다.
흥미롭네요; 이쪽분야는 문외한이라 "모든 역사는 현대사" 라는 구절은 처음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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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크로체라는 역사가의 말이라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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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민정신.
정치인이 가져야할 덕목 중 1순위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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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정말 잘쓰셔서 .. 음 뭐랄까.. 별 것 아닌 제 댓글이 글의 가치를 깎아내릴 것 같아 댓글쓰기가 겁이나네요.ㅋㅋ
저는 율곡 이이를 그냥 역사속 수많은 위인 중 한 사람으로만 생각했는데 그가 다소 독선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불완전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새롭습니다. 어쩌면 당연한 사실이었을 텐데.. 그런식으로는 생각조차 안해봤거든요.
그리고 율곡 이이의 현재 이미지가 누군가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것일 수 있으며 시대적 상황을 잘 타고 우상화 되었을 수 있다는 분석이 굉장히 흥미롭네요. 물론 그가 위대한 인물이었음에는 변함이 없지만요.
글 잘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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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과찬이십니다. 이렇게 읽고 정성들여 댓글 달아주셔서 정말 정말 감사한걸요!
저도 자료를 조사하면서 율곡의 그런 면모에 대해 알고 처음엔 조금 놀랐다가, 나중에는 율곡이라는 인물이 더 인간적으로 다가오더라고요. ㅎㅎ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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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입 벌린채로 읽었네요....ㅋㅋ
한 편의 교양수업 듣는 것 같았습니다!
특히 '조명' 부분을 읽을 땐 율곡 이이가 과대평가 된 듯 싶었으나
'재조명'파트에서 조금 수긍이 가네요. 시대가 낳았고 시대가 해석하는 위인이 아닐까 합니다.
+) 5만원의 심사임당에 대해서도 조금 궁금해지네요. 여성 위인을 지폐에 넣자는 인식과 '교육'이라는 가치가 더해져 발탁되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현모양처의 모습만 부각되는 것이 조금 안타깝다고 생각되네요. 율곡을 키워낸 것 말고도 신사임당 자체로의 업적도 재조명받았으면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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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저도 신사임당에 대해 현모양처나 율곡 이이의 어머니로서의 모습만 부각되는 것이 상당히 아쉽고, 잘못된 접근방식이라고 생각해요. 그녀는 누군가의 어머니이기 이전에 뛰어난 지식인이자 예술가였는데 말이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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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 공감합니다. 70년 들어 이순신과 이율곡이 집중 조명 받은데는 당시 국가적 필요가 크게 작용한 결과이죠.
음.. 저도 얼마전 읽은 책 리뷰 한번 올려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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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ㅎ @tsjoe님의 글 항상 잘 읽고 있어요. 책 리뷰도 올려주시면 감사히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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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사실들에 비유까지 이해하기 좋아 긴 글임에도 재밌게 읽었습니다!! 율곡이 어떤 상황에서 조명받게 됐는지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정말 당시 시대 상황에 부합해서였을 거 같네요~ 그런 학자적, 경세가적 '이미지'가 부각되어 정작 어떤 생각과 사상을 가졌던 사람인지는 덜 알려진 거 같아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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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인물의 현재 모습은 이런 저런 목적으로 가공된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좋은 말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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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역사에 대해서 새로 배운것 같네요 :)
좋은 글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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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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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잘 읽었습니다.
율곡 이이가 지폐에 있다는 게 그냥 당연하게 여겨졌고, 위인전에 나와 있는 대로 막연히 위인이구나..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뒷배경과 이이 부각의 시대적 변화까지.. 참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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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긴 글이었는데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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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객관적으로 잘쓰시는 거 같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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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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