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친구와 나눈 대화의 주제다. 대학원을 진학해서 박사 학위를 앞두고 있는 친구는 유학이라는 카테고리를 삶에 들여놓음으로써 열린 ‘이민자’ 또는 ‘학생’의 새로운 지평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겉으론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던 친구는 만나서 내게 허무함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허무하다. 청춘이란 이름하에 앞만 보고 계속해서 달려왔는데 막상 그 성취가 이루어진 후에는 비전을 ‘제시’해주는 대상이 없어지기 때문이란다. 학생 시절엔 그토록 넘쳤던 동기부여 또한 줄어드는 것이다. 박사 학위만 따면 어떻게든 먹고 사는 선배들을 보며 어떻게든 올라왔는데, 막상 졸업하고 직장인이 되니 길이 사라진 기분이라고. 뚜렷한 틀이 없어도 계속 달려가다 보면 그 근처까진 가겠지, 중간은 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계속하고는 있지만 사실 허무함에 몸서리를 친다는 그.
우리는 늘 질문한다.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건가? 왜 우린 멘토가 없을까? 스스로가 멘토가 돼라!라는 말을 받아들여야 하는 거야? 긴 대화의 속에서 각자만의 자그마한 점들을 찍었다. 내가 개척하는 것은 어렵고,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이 상대적으로 쉬운 건 불변의 법칙. 하지만 왜 우리는 확신이 없을까 (남들이 보기에 잘만 하고 있더라도 말이지) 왜 이렇게 심각하냐고, 진지하냐고 야유하는 상대방에게 되묻는다. 아마도... 나 스스로가 만족할만한 기준을 못 정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내 진정한 자아를 충분히 행복하게 만들어나가야 하는데, 그런 여유 따위 (없어) 던져버리고 성공, 돈 등을 바라보며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도록 달려만 왔으니까. 알리가 없지. ‘나’를 돌보는 현명함 따위, 사치일 때가 대부분이었다.
물어보니, 그의 궁극적 꿈(?) 또는 목표는 공부하는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는 것이다. 그래, 허무맹랑한 꿈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 김에 나도 해보자. 난 노벨평화상! 을 외쳤다. 음악과 글로 세계평화에 기여를 하는 거야! 크하하. 진지하게 시작한 대화는 한바탕 웃고 사그라들었지만 조각들은 내 마음 언저리에 조용히 남았다. 나는 무엇을 보고 살아야 하나, 이런 고민을 아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가 같이 고민하는 사회는 가능한 걸까, 그리고 조언을 건네주는 현명한 어른은 왜 없는 걸까 (내 주위에만 없는 걸 수도). 그들도 먹고살기 바쁜 걸까.
학위가 사람의 성숙도를 정해주진 않는다. 와인 숙성하듯이 시간이 지나갈수록 맛이 드는 게 아니기 때문에, 성찰과 공감과 공부로 다져지면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된다고 믿는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선 안일한 사람들이 도드라지게 많다는 공통적 결론에 다다랐다. 자기 일 아니니까 다들 쉽게 말하고 판단하며 삿대질하는 경우를 자주 만나왔기 때문이다. 상처 받지 않으려 의연한 척을 해도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나를 지키기란 쉽지 않다.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이 소수자를 차별하고, 대통령이 여성 혐오 발언을 공식성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해대고, 국회의원들이 서로를 헐뜯는 욕을 발산하는 장면은 말 그대로 드라마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일은 와 닿지 않으며 쉽게 잊히기 까지 한다. 정작 당사자는 트라우마와 고통 속에서 간신히 살아가고 있는데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남이 오히려 그 아픔을 왜곡하고 폄하한다. 어쩌다 타인의 고통에 이렇게 무감각해진 사회가 되어버렸나. 생각해보면 나 또한 누군가에게 모르게 상처를 주었을 수 있다는 것, 그 일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심히 부끄러워진다. 어딘가로 숨고만 싶고, 부정하려 애를 써본다. (그래도 나는 아닐 거야.. 라며) 그리고 나에게 주문을 건다, 나 자신이 길이 되면 된다고. 뭐, 실제로 글처럼 쉬우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누군가가 닦아놓은 길이 없더라도 내가 만들면 된다.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는 것,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평화로운 삶을 모색하는 것. 내 뒤로 후배들이 나보다는 더 좋은 날들을 꿈꿀 수 있도록, 열심히 파면....되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불안하다고 징징대는 것도 이제 지친 우리들, 일상이 두려움인 매일. 이를 어떻게 혼자 오롯 이겨내나 싶지만 또 하루를 멋지게 살면 언젠간 날이 온다는 말에 전부를 건다. 사실 이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물론 하루를 멋지게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기에 서로를 위해주고 자극해줄 좋은 친구가 있다는 것, 걸어볼 내일이 있다는 것에 그저 감사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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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하고 있느냐고 이건 어떠냐고 물어 볼, 주변에 어른이 없는 건.... 아마도 어른들도 자기 길에 확신 없이 흔들리며 의심하며 살아가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야기라도 들어주는 어른이 되려고 노력은 해 보려구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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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끊임없이 흔들리며 살아가는 건가봐요. 하지만 어린이에게도 배울점은 분명 있으니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다보면 언젠간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현재 제게 가장 큰 배움을 주는 존재는 제 학생들이에요. ㅎㅎ 이런 고민을 하시는 dozam 님은 분명 좋은 분일거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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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을 건네주는 건 가끔 있지만
현명한 어른- 의외로 별로 없더라고요. 어른사람들 별 고민없이 대충 살지요
오늘하루 멋지게 살았다면 장담합니다. 멋진 인생입니다.
life is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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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언도 애정이 있어야 주는 거겠지요. 주위를 둘러보면, 타인에게 애정을 갖고 이끌어줄 어른이 별로 없는것 같아요. 먹고사니즘때문에 그런걸까요? raah님의 응원에 좋은 하루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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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도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가 있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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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그런가요. 코인봇님을 통해 그분과 커피한잔 하고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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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걸 이루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도 삶의 일부인 것 같아요. 그러다보면 오히려 작은 것들을 성취하면서 보람도 느끼고 또 운이 닿으면 더 큰 것도 성취하게 되는 것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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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 것도 공감되네요. 어떤 맥락에서 하신 말씀인지도 이해가 가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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