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외한 씨의 연재소설] 하얀방-1

in kr •  7 years ago  (edited)

안녕하세요. 문외한 씨입니다. 오늘은 학창시절 습작으로 썼던 단편 소설을 소개합니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운 마음에 꽁꽁 감춰두고 있었는데, 스팀잇을 시작한 기념으로 용기내 공개하려고 합니다. 다소 조악하고 치기어림이 느끼지는 글이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소설의 제목은 '하얀 방'입니다. 단편 소설이지만 한 번에 게시하기에는 분량이 길어 연재 형식으로 나누어 올리려고 합니다. 그럼 재밌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복도.jpg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사방이 막힌 하얀 방만이 침묵으로 그를 반기고 있었다.

잠에서 깼을 때 처음으로 그의 눈이 전해준 것은 그를 둘러싼 풍경이 아닌 날카로운 고통이었다. 눈을 뜨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한 쪽 눈이 떠지지 않았다. 눈을 뜨려 할 수록 생살을 찢는 듯한 고통이 눈언저리를 짓눌렀다. 입에서 절로 신음이 새어 나왔다. 그는 곧바로 손을 들어 왼쪽 눈가로 가져갔다. 손끝으로 딱딱하고 까끌까끌한 느낌이 전해졌다. 정상적인 사람의 눈에서는 느낄 수 없는 기묘한 감촉이 손끝을 자극했다. 아프지만 계속 만지고 싶어지는, 그런 감촉이었다. 그는 조금 더 천천히 정성을 들여 만져보기로 했다. 나무에 박는 잔못 굵기의 실들이 피와 고름이 범벅된 채 그의 눈에 꿰매져 있었다. 점점 더 고통이 심해지는 것 같아 눈에서 손을 떼었다. 손에 피고름이 묻어났다.

눈가의 고통에 익숙해질 때쯤 그는 머리에서 허전함을 느꼈다. 머리 위로 손을 올렸으나 머리카락이 만져지지 않았다. 그의 머리는 삭발되어 있었다. 양손으로 머리 이곳저곳을 더듬어 보았다. 깔끔하게 면도된 머리의 표면에서 그가 알지 못하는 않는 흉터 자국이 만져졌다.

그는 황급히 자신의 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옷을 들춰 바지 속도 보고 팬티 속도 보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몸에는 별다른 흔적이 없었다.

-다행이다.

대체 뭐가 다행이라는 걸까. 그는 다행이라는 단어를 혼자서 되뇌기 시작했다.

-다행. 다행. 다행.

그는 계속 읊조렸다.

-다행다행다행다행다...행다행..다행다행...댕됭됑댕횡댕......

읊조릴수록 음성은 뭉뚱그려지고 뜻은 모호해졌다. 잠시 뒤 그는 자신이 중얼거리던 단어가 무엇이었는지조차 잊어버렸다. 어차피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었다.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는 얼굴과 머리의 상태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침대에서 몸을 반쯤 일으킨 채 한쪽밖에 볼 수 없는 눈으로 방 구석구석을 이리저리 훑어보았다. 그러나 방 안 어디에도 얼굴을 들여다볼 수 있는 물건 따위는 없었다. 침대와 서랍장, 벽시계, 테이블만이 방 안에 있는 가구 전부였다.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테이블 위에는 빵과 우유와 빵을 썰 수 있는 칼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 흔한 거울 하나조차 없었다. 윤곽을 비춰볼 만한 유리창도 없었다. 그 방에는 창문이 없었다.

그는 일단 밖으로 나가기로 결심했다. 천천히 몸을 추스르며 침대에서 내려와 문으로 향해 걸어갔다. 문 앞에 서서 오른손으로 손잡이를 잡았다. 심장이 얼어붙을 듯 차가운 냉기가 손바닥으로 스며들었다. 그는 손잡이를 더욱 꽉 잡았다. 천천히 그러나 힘 있게 손잡이를 돌렸다.

-철컥

문은 열리지 않았다. 허리를 숙여 손잡이를 살펴보았다. 열쇠를 꽂는 쪽이 방 안을 향해 달려 있었다. 불길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는 다시 손잡이를 돌렸다.

-철컥

역시 열리지 않았다. 또다시 돌려보았다.

-철컥, 철컥, 철커철커철커-철-커억

굳게 잠긴 문은 도무지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급한 마음에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저기요, 문 좀 열어주세요! 거기 아무도 없어요?

그러나 그의 외침은 문틈으로조차 새어나가지 못했다. 수차례 문을 두드리며 소리를 질러봤지만 아무 소용없었다. 그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둘러보았다. 빵과 우유 옆에 있던 칼이 눈에 들어왔다. 재빠르게 테이블로 다가가 칼을 집었다. 빵을 잘라내는 칼치고는 날이 제법 날카롭게 갈린 상태였다. 문 앞으로 되돌아와 문과 문틀 사이의 공간에 칼의 끄트머리를 쑤셔 넣었다. 하지만 문은 생각처럼 쉽게 열리지 않았다. 여러 번을 반복해 봤지만 헛수고였다. 그는 칼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그는 그렇게 문 앞에서 한참을 목석처럼 서 있었다. 이윽고 칼을 주워서 다시 침대로 되돌아왔다. 침대에 털썩 앉아 칼의 단면에 얼굴을 비춰보았다. 흐릿하게 왜곡된 실루엣이 보였다. 그는 칼을 들어 자신의 왼쪽 눈으로 가져갔다. 칼의 끝으로 실밥을 잘라볼 심산이었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눈이 다칠까 봐 겁도 났다. 금세 칼을 내려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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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타이밍에 다음편으로 이어지네요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팔로우 하고 가도 될까요?
(참지 못하고 이미 팔로우 해버렸어요...^^)
맞팔은 환영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활동 기대할께요!

좋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유익한 교류가 있기를 바랍니다.^^

눈은 왜 봉인(?) 되었고 왜 감금되었는지 궁금하네요. 다음 편을 바로 읽어봐야겠어요.

원인보다는 과정에 중점을 둔 내용이라 기대하시는 바에 못 미칠 수도 있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편을 보고 1편도 보러 왔습니다. 글이 다음 편을 궁금하게 하면서 정말 재미있네요. 전혀 조악하지 않은 글입니다. 앞으로 연재 기대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 흥미진진해요~ 다음편 보러 가야겠어요^^

감사합니다. ^^

2018년에는 두루 평안하시길!

감사합니다. 올해 하시는 일 모두 잘 되시길 바랍니다. ^^